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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방역 완화 뒤엔 '신장 100일 봉쇄' 피눈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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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호주

    中 방역 완화 뒤엔 '신장 100일 봉쇄' 피눈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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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요약

    방역 완화 이끌어낸 백지시위
    백지시위 도화선 된 우루무치 화재사고
    우루무치 화재사고는 봉쇄 100일이 불러온 비극
    8월부터 코로나 확산되자 소리없이 봉쇄
    10월부터는 외부로 나가는 교통편 다 끊어
    상하이 2달 봉쇄엔 관심 집중하면서도
    변방 지역 100일 봉쇄에는 무감각

    지난달 2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백지를 든 채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당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지난달 2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백지를 든 채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당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중국이 엄격한 방역을 완화한 것은 지난달 마지막 주말 벌어졌던 백지시위 때문이었다. 극단적인 방역에 지친 젊은이들이 백지를 들고 나와 방역 해제를 외쳤고 '시진핑 하야' 같은 위험한 구호도 등장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신장 우루무치시의 한 고층 주택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명이 숨지가 9명이 다친 사건이 봉쇄 완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명문대를 비롯해 중국 주요 대학과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시위도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명분 때문에 가능했다.
     
    SCMP 캡처 SCMP 캡처 
    우루무치 고층 주택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가 봉쇄와 어떤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국이 봉쇄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인정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100일 넘게 봉쇄된 곳이었고 봉쇄를 위해 설치한 구조물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진 점 등을 봤을 때 봉쇄가 화를 키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신장은 언제부터 왜 봉쇄됐을까? 우한 76일 봉쇄나 상하이 2개월 봉쇄보다 훨씬 긴 108일 봉쇄 기록은 왜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신장이 봉쇄되기 시작한 것은 8월초였다.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신장의 2500만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2~4개월 동안 부분적인 봉쇄 조치를 받았다. 일상생활은 중단되었고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SCMP 캡처SCMP 캡처
    도시 전체의 봉쇄 소식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에게 집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저위험 구역과 주거단지도 봉쇄됐다. 식량 공급지 부족해지고 빚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힘겨운 생존 투쟁을 해야 했다.
     
    감염자들과 밀접접촉자들은 저질의 임시 병원과 격리소에 격리되어야 했다. 샤워를 할 수 없었고 음식은 형편없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쉽게 교차 감염이 일어났고 반복적으로 코노나19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한 위구르인은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자신이 경험한 임시병원에 대해 "어떤 치료약도 없었고 간호사들은 체온을 측정하는 법조차 몰랐다"며 "전혀 밖을 나갈 수 없었고 매일 창밖을 내다 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매일 소수의 무증상 사례만 보고 되고 있다며 오히려 신장지역 관광지를 방문할 것을 촉구하는 등 실상을 은폐하다가 10월 들어서야 두 달 동안의 발병 억제 노력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외부로 나가는 교통편을 모두 끊었다.
     
    신장에서 외부로 나오는 방법은 비행기와 열차, 자동차를 이동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당국의 허가증이 있어야 했는데 2주에서 1개월 이상이 소요됐고 가격도 비싸 많은 여행객들도 신장 지역에 발이 묶였다. 
     
    웨이보 캡처웨이보 캡처
    신장을 탈출하는 가장 어려운 방법은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통과하는 지점에서 핵산검사 음성 증명서를 인정하지 않는는 경우도 있었고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베이징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중국인 여성은 10월 6일 카슈가르에서 갇혔다가 20일 만에 신장을 떠나도 좋다는 허가증을 받았고 4명이 한조가 되어 11월 4일 차를 타고 떠나 무려 108시간을 운전해 나흘 뒤인 8일에 산시성 성도 시안에 도착했다.
     
    고향이 쓰촨인 펭이라는 이주 노동자는 9월에 신장을 떠나도 좋다는 허가증을 받았지만 가족 3명의 전세비행기표를 살 여유가 없어 난방 없는 지하실에 살다가 11월 23일에 차편을 구해 탈출을 모색했지만 다시 양성 반응을 보여 또 다시 좌절해야 했다.
     
    그는 "끝없는 기다림은 정말 나를 미치게 한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다면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신장은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위구르족 등 이슬람 소수 민족의 독립 운동 기운이 봉기로 표출된 2009년 이후 통제가 강화됐다. 서방은 신장 지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강제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며 인권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우한봉쇄, 상하이 봉쇄 등에 대해서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이런 봉쇄들이 가져올 세계 경제의 충격에 대해서도 요란하게 전망을 내놓았지만 신장 지역 사람들의 봉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무감각했다.
     
    신장을 바꾼 것은 신장 주민들이었다. 11월 24일 고층 주택 화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더는 참지 못한 현지 주민들이 이튿날인 25일 곳곳에서 시위를 하면서 심각성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그 주 주말 백지시위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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