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슬린 레이튼 박사. 본인 제공"많은 글로벌 정책 입안자들은 넷플릭스를 힘세고 못된 아이(Bully)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자사의 사업적 이익만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시스템을 기업 이윤을 위해 이용한다든지 시장 경제 원리를 뒤엎으려 한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대한 SKB의 소송을 반가워하고 있는 분위기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 지급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 포브스지 시니어 칼럼니스트이자 통신 전문가인 로슬린 레이튼 박사가 넷플릭스의 논리를 전면 반박했다.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에 대한 세계의 시선을 '힘세고 못된 아이'라고 칭하면서 "넷플릭스가 책임감 있고 자발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3일 레이튼 박사는 국내 언론들과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덴마크 올보르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그는 앞서 포브스지에 올린 기고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한국의 인터넷 가입자는 2300만 명 정도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는 500만 명에 불과하다"며 "넷플릭스의 제안에 따르면, 통신사는 콘텐츠의 저장, 처리, 전송비를 넷플릭스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가입자에게 전가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빌앤킵', ISP 사이 적용되는 것…넷플릭스엔 부적절
연합뉴스로슬린 레이튼 박사는 먼저 넷플릭스가 들고 나온 '빌앤킵' 관행이 현 사안에 적용하기 부적절한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넷플릭스는 SKB와 진행 중인 2심에서 '빌앤킵' 원칙을 들고 나왔다. '빌앤킵'은 초창기 음성 통신시장 때 나온 개념이다.
사용자가 통화를 하면 다른 통신사업자 망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데, 통신사간 트래픽 발생량이 비슷하면 서로 정산하지 않는 대신 망을 이용하는 주체인 이용자에게만 사용료를 받는다.이 원칙은 데이터통신 시장이 커진 이후에도 적용됐다. ISP(인터넷 서비스 공급자)들은 타사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자사 서비스 이용자에게만 사용료를 받는다.
레이튼 박사는 이에 대해 "빌앤킵은 ISP 사이에 적용되는 방식이다. ISP와 CP(콘텐츠 제공자)는 서로 다른 방식을 적용하는 게 적합할 수 있다"며 "이는 ISP와 CP의 트래픽 양이 대칭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넷플릭스는 SKB에 많은 트래픽을 전송하지만, 최종이용자는 넷플릭스에 최소한의 트래픽만 다시 전송한다는 것이다.
레이튼 박사는 또 "빌앤킵은 '트래픽 균형과 통신사 간 합의'같은 선행 조건을 요구한다"며 "인터넷 상호 연결에서 빌앤킵을 규정하는 법규는 없고 통신사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OCA가 오히려 트래픽과 비용 증가시킬 수 있어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대신 해결책으로 제시한 데이터 임시 서버 '오픈커넥트'(OCA) 역시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OCA는 넷플릭스의 데이터를 모아놓은 서버를 통신사 망에 연결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통신사와 가까운 거리까지 데이터를 자체 전송해 통신사 트래픽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지난 23일 뉴스룸에서 "OCA의 핵심은 콘텐츠 스트리밍을 위한 전송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라며 "ISP는 중계접속 없이 콘텐츠 전송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OCA를 설치하려는 이유는 ISP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ISP에 지불하는 망 이용대가 부담을 줄이고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4개 통신사업자를 분석한 결과, 인터넷 사업자들은 OCA가 자사의 네트워크에서 트래픽과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용량이 너무 커서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장비와 에너지, 인력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은 '양면시장', 넷플릭스에 과금 요구할 권리 있다
마지막으로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의 '이중과금'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SKB가 이미 이용자에게 망 사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CP에 요금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게 넷플릭스 측의 논리다.
레이튼 박사는 "인터넷은 양면시장"이라며 "인터넷 네트워크를 두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용자 집단이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넷플릭스의 데이터가 SKB의 망에서 엄청난 대역폭을 소비하기 때문에 SKB는 이를 위해 추가 투자를 해야 한다"며 "이런 비용을 SKB 이용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SKB 이용자 중 일부만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레이튼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SKB는 비즈니스 고객인 넷플릭스와 일반 고객을 두고 인터넷 접속, 콘텐츠 전송, 트래픽 처리 등의 중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 고객과 비즈니스 고객인 넷플릭스의 성격은 다르고 받는 서비스도 다르다. 이 때문에 양면시장의 관점에서 SKB가 넷플릭스로부터 이용 대가를 추가로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보다 책임감 있는 인터넷 업계의 사업자로서 네트워크의 사용 비용을 공정하게 부담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넷플릭스로서도 한국에서의 네트워크가 꾸준히 투자되고 제대로 유지 보수되는 게 자사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했다.
SKB-넷플릭스 갈등 고조…넷플 "일방 주장"
넷플릭스 제공·SK브로드밴드 홈페이지 캡처한편 망 사용료를 둔 넷플릭스와 SKB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날도 "SKB는 인터넷 산업이 양면시장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는 SKB의 일방적인 입장이다"라며 " ISP가 독점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최종 이용자는 물론 CP로부터도 통행세를 걷게 될 경우 트래픽 전송료를 지급할 여력이 있는 CP의 콘텐츠만 남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이어 "넷플릭스는 현재 전 세계 7200개가 넘는 ISP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중 어느 ISP에게도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SKB가 망 사용료 지급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엔 1차 변론기일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