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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EN:]"모든 게 버겁다" 이힘찬 PD 사망…거듭되는 방송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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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EN:]"모든 게 버겁다" 이힘찬 PD 사망…거듭되는 방송가 비극

    스튜디오S 이힘찬 프로듀서 드라마 제작 도중 극단적 선택
    유가족 "SBS와 스튜디오S 사측에 조사위 요청했지만 거절"
    "과중한 업무 버티다 못해 떠났는데…오히려 유족에 상처"
    언론노조 "'사회적 타살' 혐의 배제 못해…진실규명 필요"

    지난 1월 29일 고 이힘찬 프로듀서가 자기 자신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유가족 제공지난 1월 29일 고 이힘찬 프로듀서가 자기 자신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유가족 제공"12월에 '하고 싶은 대로 살자, 우리 너무 고생하지 말자'고 웃으며 헤어진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고 이힘찬 프로듀서 동생 이모씨)

    2012년 SBS 이력서에 붙였던 증명사진은 10년이 흘러 영정사진이 됐다. 드라마 제작에 전념했던 경력 10년 차 스튜디오S 고(故) 이힘찬(34) 프로듀서(PD)의 이야기다.

    직장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정규직이나 프리랜서 할 것 없이 똑같이 직원들을 대했다. 하나뿐인 동생에게는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형이었다.

    그랬던 그가 SBS 새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촬영이 시작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말수가 없어졌고, 밥을 거르게 됐으며 전보다 더 자주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결국 이 PD는 설연휴를 하루 앞둔 1월 30일 경기도 일산 소재 자취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연휴에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매진했던 'CG 우선 요청 리스트'와 '모든 것이 버겁다'며 자기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 한 통만이 남았다.

    고 이한빛 PD와 이재학 PD의 비극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회사도, 직무도 달랐던 이들 방송 제작 종사자는 왜 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스튜디오S 고 이힘찬 PD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해 언론노조 SBS본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민주노총법률원,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등이 구성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관계자들과 유가족이 참여했다.

    유가족은 지난달 21일 동료들의 증언, 업무 자료 등을 토대로 고인의 사망에 업무로 인한 압박 등 업무 관련성이 있음을 파악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SBS와 스튜디오S에 '노사공동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3일 SBS와 스튜디오S는 조사위 참여 거부 입장을 밝혔다.

    대책위는 사측의 결론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초 제작사 스튜디오S는 SBS 드라마본부가 분사한 자회사라 그 책임을 완전히 별개로 보기도 어렵다.

    정형택 SBS본부장은 "노조가 보낸 공문에 대한 답변으로 SBS는 별도 법인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답변을, 스튜디오S는 유가족과 성실하게 이야기하면 될 뿐 노사 공동 조사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며 "(사측의 입장에) 유가족과 대책위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대응할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사측과의 만남에서도 유가족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위로 대신 상처만 깊어졌다. 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원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측은 고인이 제작비와 촬영 스케줄로 힘들어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 어려움을 해소했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유가족과는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개 대응' 전환을 예고한 개인 메시지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2주 동안 사측에서 유가족에게 취한 연락은 '퇴직금 정산'이 전부였다.

    동생 이씨는 "형은 과중한 업무를 버티지 못해 '모든 것이 버겁다'라는 말을 스스로 남기고 떠나갔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사측은 2월 18일 유족과의 만남 자리에서 10페이지 남짓한 인터뷰 자료를 제시하며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라며 유족에게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공식적이고 책임있는 사과를 해서 회사에 헌신한 형의 명예를 회복해달라. 이 땅에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남아 있는 자의 도리를 다 해 달라"고 강조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스튜디오S 고 이힘찬 프로듀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스튜디오S 고 이힘찬 프로듀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주 52시간 제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재량 근무'는 방송 근로자들의 적절한 휴식 시간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OTT 등 새로운 플랫폼의 활성화는 경쟁을 심화시켜 이미 관행처럼 이어진 과도한 업무 강도를 더욱 높였다. 고 이힘찬 PD의 사망에 '사회적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고인의 사망에 드라마 제작 현장의 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타살의 혐의를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며 "더이상 비공개 대응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을 했다. 진실규명을 통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OTT 서비스 이후 드라마 제작기한부터 제작비에 이르기까지 경쟁과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인이 남긴 업무용 노트북에는 드라마에 배정된 부족한 예산과 추가 인력이 없을 때 어떻게 제작을 진행해야 하는지 등 해결되지 않은 괴로움이 드러난다"며 "스튜디오S와 SBS는 고인의 죽음을 안타깝다고만 하고 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대책위는 SBS와 스튜디오S에 오는 8일까지 노동조합을 통해 공동조사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소식을 접한 SBS 측은 현재 관련 공문을 파악하는 대로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고 이힘찬 PD는 2012년 SBS 제작운영팀에 입사, 2017년 드라마 운영팀으로 전보된 후 드라마 '사의찬미' '초면에 사랑합니다' '아무도모른다' PD를 맡았다. 2020년 드라마본부 분사로 스튜디오S로 전적, 사망 당시까지 '소방서 옆 경찰서'의 PD로 일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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