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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쌓이는 '앨범' 쓰레기…'친환경' 요구로 K팝 실험 탄력



문화 일반

    [파고들기]쌓이는 '앨범' 쓰레기…'친환경' 요구로 K팝 실험 탄력

    청하, 지난해 3월 첫 번째 정규앨범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주목받아
    빅톤, 음원과 뮤직비디오 등 디지털로 즐기고 포토카드만 실물로 받는 앨범 한정 판매
    트레저-송민호, 저탄소 친환경 용지·콩기름·환경보호 코팅 등 사용
    뉴질랜드 팝 스타 로드, CD 없는 앨범 발매
    '바라던 바다', 버려진 PVC 재활용한 LP 제작해 화제
    케이팝포플래닛 설문조사 결과 '소속사' 변화 시급하다는 답변 나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트레저, 빅톤, 청하. 각 팀 공식 페이스북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트레저, 빅톤, 청하. 각 팀 공식 페이스북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팔린 K팝 가수들의 실물 앨범(톱 400 기준, 이하 동일)은 총 5708만 9160장으로 전년 대비 36.9% 증가했다. 2016년에 연간 판매량 1천만장을 넘긴 후, 2017년 1693만 491장, 2018년 2282만 2245장, 2019년 2509만 5679장, 2020년 4170만 7301장 등 매년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발매 첫 주 판매량만으로 100만장을 넘긴 '밀리언셀러' 가수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장기화로 공연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일어난 '보복 소비'라는 특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이 같은 인플레이션에는 다양한 요소가 녹아 있다. 음악방송과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여전히 실물 앨범 판매량은 중심 지표이며, 팬 사인회 응모 기회와 연결돼 있기도 하고, 팬들의 구매욕을 촉진하는 랜덤 상품 혹은 한정판 상품을 곁들여 팔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단기간에 수십, 수백만장의 앨범이 팔려 새로운 기록이 쏟아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과도한 구매로 인한 쓰레기가 쌓인다. 앨범 구매의 대부분은 포토카드나 팬 사인회 응모권 획득, 앨범 판매량 기여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기에, 목적을 다한 앨범은 쉽게 버려지거나 헐값에 처리된다.

    지구를 망가뜨리는 방식의 덕질을 더 이상 이어가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K팝 팬덤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기후 위기 대응 촉구 단체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지구를 위한 K팝)이 한 예다. 아직 느리고 미약하지만 K팝 산업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K팝 가수들이 '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방향의' 앨범을 고민해 만들어내고 있는 까닭이다.

    '친환경 소재 앨범' 처음 도전한 청하, '포카'만 받는 앨범 낸 빅톤

    청하는 지난해 3월 첫 번째 정규앨범 '케렌시아' 앨범에 재생지를 썼다. 송민호는 같은 해 12월 낸 정규 3집 '투 인피니티'에서 저염소로 표백한 종이를 쓰고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으며 환경보호 코팅 기법을 썼다. MNH, YG엔터테인먼트 제공청하는 지난해 3월 첫 번째 정규앨범 '케렌시아' 앨범에 재생지를 썼다. 송민호는 같은 해 12월 낸 정규 3집 '투 인피니티'에서 저염소로 표백한 종이를 쓰고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으며 환경보호 코팅 기법을 썼다. MNH, YG엔터테인먼트 제공청하는 지난해 2월 낸 첫 번째 정규앨범 '케렌시아'(Querencia)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 포장재부터 화보, 가사집 등에 재생 종이를 썼다. 팬들의 수요가 높은 포토카드만 혹시나 찢어질 위험을 줄이고자 부득이하게 코팅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8월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 소파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블랙핑크 굿즈(기획 상품)를 내놓았고, 그해 발매된 12월 송민호 정규 3집 '투 인피니티'("TO INFINITY.") 제작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친환경 소재를 썼다.

    FSC(국제 산림관리협회)에서 인증받은 용지, 저염소로 표백한 종이를 써서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으며, IPA(이소프로필 알코올)나 벤졸 등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인쇄 화학약품 등을 최소화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겉면 비닐 재질이 아닌 최대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보호 코팅 기법을 쓴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키트 앨범에 쓰이는 플라스틱은 옥수수 전분으로 제작돼 생분해 가능한 성분인 PLA이며, 100% 재활용되는 종이를 썼다는 게 YG 설명이다.

    오는 2월에 나오는 남성 아이돌 그룹 트레저의 새 앨범 '더 세컨드 스텝 : 챕터 원'(THE SECOND STEP : CHAPTER ONE) 역시 저탄소 친환경 용지, 콩기름 잉크, 환경보호 코팅으로 제작됐다. 키트 앨범에 쓰인 포장 비닐 역시 생분해 가능한 PLA 소재다.

    2018년 12월 발매된 '바라던 바다' LP도 친환경 소재로 제작됐다. 환경을 생각하는 가수 10인이 모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바라던 바다'는 LP의 주원료인 PVC와 LP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재생 PVC를 30% 섞어 만들었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해 기타 피크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남성 아이돌 그룹 빅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실물로는 포토카드와 메시지 카드만 받는 '플랫폼 앨범'을 지난 18일 냈다. 노래(앨범 트랙), 뮤직비디오, 비하인드 사진, 감사 영상 메시지 등 주요 콘텐츠는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어 앱으로 구동할 수 있게 해, 실물 앨범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빅톤 멤버 도한세의 첫 번째 솔로 앨범 '블레이즈'(BLAZE)에서 처음 시도한 플랫폼 앨범을 본격화한 것이다.

    친환경 상자로 앨범을 구성한 사례도 있다. 뉴질랜드 출신 가수 로드는 지난해 8월 낸 정규앨범 '솔라 파워'(Solar Power)를 CD 없이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카드와 자필 노트, 사진, 기타 콘텐츠 등으로 꾸려 주목받았다.

    "가능한 한 조금씩이라도 변화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왼쪽부터 빅톤이 지난 18일 낸 세 번째 싱글 앨범 '크로노그래프'와 지난해 8월 출시된 블랙핑크 5주년 굿즈.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 소파다. IST, YG엔터테인먼트 제공왼쪽부터 빅톤이 지난 18일 낸 세 번째 싱글 앨범 '크로노그래프'와 지난해 8월 출시된 블랙핑크 5주년 굿즈.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 소파다. IST, YG엔터테인먼트 제공K팝 가수들의 앨범이 많이 팔리는 만큼 한편으로 많이 버려지고 그 과정에서 쓰레기가 양산되며, 이 때문에 팬들의 불만과 우려가 높다는 사실은 기획사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팬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반영했다고 밝힌 곳도 있었다.

    빅톤 소속사 IST엔터테인먼트 측은 "사인회 이후 처분되거나 반품되는 앨범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는 저희뿐만 아닌 모든 엔터사들의 고민이었던 만큼 (플랫폼 앨범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진행했다"라며 "CD로 음악을 듣는 대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기 때문에 조금 더 쉽고 가볍게 음반을 접하고 소유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라고 설명했다.

    블랙핑크, 송민호, 트레저 등이 속한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소속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팬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고,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경청해 왔다. 그 중 환경 오염은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이자 음반 산업 전반에 걸쳐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저희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고 그 일환으로 환경보호 소재를 앨범에 이용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청하 소속사 MNH엔터테인먼트 이주섭 이사는 "전 세계적으로 이런(환경을 생각하는) 추세가 있다는 건 알았다"라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이걸 꼭 해야겠다 한 건 아니고 전년도부터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기획을 고민하다 '재생 가능한', '친환경적인' 걸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만큼 시행착오도, 한계도 분명하다. 제작 자체가 까다로운 게 첫 번째다. 이주섭 이사는 "앞으로도 계속 시도할 건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이게 참 어려운 부분이긴 하다. 종이에 코팅을 안 하면 내구성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친환경 소재를 쓰면) 다양한 앨범을 기획하더라도 풀어내는 데 제약이 너무 많다 보니 딜레마가 생기는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을 고민하는 기조는 이어간다는 것이, 이번 취재에 응한 기획사들의 공통된 답변이다. IST엔터테인먼트 측은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후 진행에 대해서도 내부 논의하게 될 것 같다"라고 답했다. YG엔터테인먼트 측은 "현재 개척해 나가는 시작점"이라며 "업체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조금이나마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주섭 이사는 "앞으로 나올 앨범을 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가능한 한 조금씩이라도 변화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시도로 물결이 생겨 계속되다 보면 업계 전반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부연했다.

    K팝 팬덤 "다른 엔터사들도 서서히 이 흐름에 동참했으면"

    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에서 활동 중인 10~50대 K팝 팬 367명(해외 265명·한국 1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친환경 K팝 인식도 조사' 결과. 케이팝포플래닛 공식 홈페이지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에서 활동 중인 10~50대 K팝 팬 367명(해외 265명·한국 1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친환경 K팝 인식도 조사' 결과. 케이팝포플래닛 공식 홈페이지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에서 활동 중인 10~50대 K팝 팬 367명(해외 265명·한국 102명)을 대상으로 '친환경 K팝 인식도 조사'를 벌인 결과, '구매하는 앨범이 환경 문제(플라스틱 쓰레기, 기후 변화 등)와 연관성이 있다고 느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3%(매우 그렇다 33.5%, 그렇다 21.8%)가 그렇다고 답했다.

    앨범과 굿즈를 구매할 때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앨범·굿즈의 과도한 포장 판매'(69.7%)였다. 2위도 앨범 대량 구매(65.9%)로 앨범 소비에 관한 문제의식이 담긴 답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앨범을 여러 장 사는 것이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 같은 소비를 중단하거나 스트리밍 등 다른 방식으로 음반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응답자의 63.8%가 그렇다고 반응했다.

    K팝 시장에서도 기후 위기를 고려한 친환경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88.9%(매우 동의한다 69.8%, 동의한다 19.1%)에 달했다. 이대로는 '지속 가능한 덕질'이 어렵다는 K팝 팬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앨범이나 굿즈가 친환경적으로 제작된다면 지금의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라보는 응답자도 72.5%(매우 동의한다 31.1%, 동의한다 41.4%)로 상당히 높았다.

    친환경 K팝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주체(복수 응답 가능)로 엔터테인먼트사(95.6%)를 첫손에 꼽은 K팝 팬들이 생각하는 개선 방안(복수 응답 가능) 1위는 '친환경 앨범·굿즈 판매'(88.8%)였다. '앨범 및 굿즈의 비닐, 플라스틱 포장 최소화'는 79.5%로 2위였다. 물리적 앨범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사용 장려는 37%로 6위였다.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활동가는 빅톤의 플랫폼 앨범에 관해 "K팝 산업에서는 앨범으로 인한 쓰레기 과다 생성과 환경 오염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최초로 내놓은 IST엔터테인먼트가 정말 감사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트레저, 송민호, 청하 등의 앨범을 거론하며 "이렇게 대형 엔터사가 친환경 앨범을 발매하는 트렌드를 계속 이끌어주면 다른 엔터사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서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본다. 다른 엔터사들도 서서히 이 흐름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다연 활동가는 "플랫폼 앨범을 기간 한정 없이 판매했다면 불필요한 앨범 쓰레기가 훨씬 더 줄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이러한 방침이 점점 자리 잡아서 기간을 한정하지 않고 시행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친환경 앨범도 좋은 정책이지만 앨범 구매 시 (실물을) 수령할지 말지 고르는 선택지를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앨범 생산 단계부터 불필요한 양을 차근차근 줄여나가는 방식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상품 생산자가 상품의 폐기와 처리까지 책임지는 트렌드가 생기고 있다. K팝 산업의 생산자, 즉 앨범을 내는 엔터사들도 대량 생산되는 앨범의 폐기와 처리까지 책임졌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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