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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견디고 버티는 우리 삶처럼…'만선'



공연/전시

    [노컷 리뷰]견디고 버티는 우리 삶처럼…'만선'

    연극 '만선'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
    명동예술극장서 9월 19일까지

    국립극단 제공국립극단 제공
    지난 3일부터 명동에술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만선'은 만선(滿船)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부여잡고 사는 곰치 가족의 이야기다.

    '만선'은 故천승세(2020년 작고)의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1960년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진 서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수작이다. 당초 국립극단 7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무대에 올리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늦게 관객을 만났다.

    무대에는 곰치네 집이 자리잡고 있다. 바닷가 방파제 밑에 잔뜩 웅크린 이 집은 금방이라도 파도에 휩쓸릴 듯 낡고 위태롭다. 곰치는 빈궁한 처지의 생계형 어부다. 하지만 가난을 불평하기는 커녕 뱃놈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바다와 싸우고 바다에서 죽는 것이 뱃사람의 숙명"이라고 여긴다.

    고기 잡는 기술도 제법이다. 수 십년 만에 바다에 부서(부구치)떼가 몰려오자 곰치는 의기양양하게 배를 띄우고 꿈에 그리던 만선으로 돌아온다. "사흘간 만선해서 선주(임제순)에게 진 빚 갚고 뜰망배라도 내 배를 장만하겠다"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선주는 나머지 빚도 당장 청산하지 않으면 배를 내어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급해진 곰치는 할 수 없이 선주와 불공정 계약을 맺고 아들 도삼, 딸 슬슬이의 연인인 연철과 함께 바다로 나간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쌍돛을 달고 고군분투한 끝에 만선을 이루지만 배가 난파해 아들과 연철을 잃고 자신만 겨우 살아 돌아온다.

    도삼까지 아들 넷의 목숨을 바다에 내어주자 구포댁은 "명대로 살라면 뭍으로 가야제"라며 갓난애를 배에 태워 비바람 부는 바다로 보낸다. 집안 빚 때문에 아버지뻘 범쇠에게 팔려갈 처지에 놓인 슬슬이 역시 범쇠의 겁탈에 저항하다가 연인의 부고를 접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퍽퍽한 삶을 견디게 해준 만선의 꿈은 좌절됐다. 곰치네의 비극을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착취와 횡포를 일삼는 악덕 자본가인 선주와 범쇠에게 분노가 가 닿는다. "곰치가 죽든 말든 상관 없어. 그 배가 가장 좋은 배여", "당신 아들이 죽었든 살았든 내 돈이나 내놔", "배 있는 사람한테 이러면 안 돼". 선박 임차인 가족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조차 오로지 돈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심재찬 연출은 "여전히 갑질은 횡행하고 사회는 불합리하다. 곰치의 행동이 잘한 건 없지만 고집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잘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안 되니까 곰치도 내면의 울부짖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했다.

    "조부가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를 잡지 말라'고. 고집 부리는 거 아니야. 뱃놈은 그라고 사는 거야." 

    모든 것을 잃었지만 곰치는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을 것이다. 집채 만한 파도가 덮쳐도,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만선을 꿈꾸며 하루하루 노동하면서 견디고 버티는 우리 삶처럼.


    '곰치' 역은 김명수,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김재건, 정상철 등 과거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원로배배우와 이상홍, 김명기, 송석근, 김예림 등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 함께 무대에 선다. 윤미현이 윤색했다.국립극단 제공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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