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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왜 '여돌'은 더 금기가 많을까



문화 일반

    [EN:터뷰]왜 '여돌'은 더 금기가 많을까

    여성 아이돌의 특수성에 초점 맞춘 '여신은 칭찬일까?' 발간한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세계관, 가사와 화법, 여성상, 복장, 유형과 계보 등 다양한 주제로 질문 던져
    "여성으로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느낀 감정 들여다보고 질문한 것이 출발"
    아이돌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 있으나, 성별 차이 존재…원인과 작동 방식 살펴
    최지선 평론가가 꼽은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은

    여성 아이돌 이름에는 성별을 바로 알 수 있는 '소녀'와 '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어간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녀시대, 우주소녀, 공원소녀, 오마이걸. 각 소속사 제공

     

    "에이핑크는 핑크를 지향하고 블랙핑크는 핑크에 도전한다. 색상으로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기존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이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다. 핑크를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특히 성별에 따라 핑크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제 여돌에게 핑크란 어떤 전형 또는 그에 대한 비판의 수단이 되지만 남돌에게 핑크는 새로운 시장이다." (52~53쪽)

    "많은 경우 여돌은 괴물 자체를 전면화하지 않으며 한시적이고 일회적인 퍼포먼스에 국한한다. 이 과정 속에서 여돌은 무해하고 온순한 존재로 비친다. 그 위반의 한계점 안에서 여돌들은 분투해야 한다." (162쪽)

    미료·엘리·씨엘은 관록의 여돌 그룹 래퍼였다. 한때 언더그라운드 혹은 오버그라운드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하며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솔로로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했고 소속사 문제도 불거지는 등 더 이상 장밋빛 미래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여돌의 수명은 짧다. 사실 이들이 작업한 음악적 결과는 대부분 그렇게 흥미롭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개인의 부족한 실력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과연 공정한 게임의 결과였을까. 이제까지 남성 힙합 음악가가 기나긴 세월 동안 축적해온 시장과 시스템에 여성 및 아이돌 래퍼가 편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나마 그 숫자는 형편없이 적다. 이들을 포함해 여돌 래퍼들의 성장은 쉽게 정지되고 경력은 단절된다." (248쪽)

    지난달 29일 발간된 책 '여신은 칭찬일까?'(산디·2021)를 쓴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에게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구절을 꼽아달라고 하자 이 문장들을 골랐다. '여돌'(여성 아이돌)이 팀명에 색채를 어떤 식으로 담아내는지 살펴보고, 설령 '괴물' 콘셉트를 하더라도 지나치게 위협적이어서는 안 되고 무해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위치를 짚으며, 출중한 실력과 발전 가능성을 갖추었음에도 '여돌'이 래퍼로서 자리매김하기 어려운 배경을 돌아봤다. '여신은 칭찬일까?'가 '여돌'을 주제로 얼마나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책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CBS노컷뉴스는 '여신은 칭찬일까?'를 낸 최지선 평론가를 지난 5일 서면 인터뷰했다. 20년째 대중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본인을 소개한 최 평론가는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하다가 음악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했고 '여성으로서 음악을 하는 삶'이 궁금해졌다고 밝혔다. 동시에 음악계(나아가 방송계)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음악을 관장하고 통제하는 인물이 모두 남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으로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느낀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보곤" 했던 것이 '여신은 칭찬일까?'의 출발이었다. 평소 장소/공간, 색채, 가사와 사운드의 운용, 음악의 비평과 평가를 위한 언어 사용 등 인문학적 재료를 분석의 도구로 삼아 음악 글을 썼던 최 평론가의 관심과 질문이 향한 곳이 '여돌'이었다. 동료 평론가인 이민희 산디 대표와 이야기 나누다가 이 질문과 궁금증을 책으로 옮겨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지난달 29일 신간 '여신은 칭찬일까?'를 낸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를 서면 인터뷰했다. 사진은 '여신은 칭찬일까?' 표지. 산디 제공

     

    '여성 아이돌'이나 '걸그룹'을 넣은 제목을 생각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돌'을 중심에 두고 질문을 던지는 책의 속성을 따라 대표 질문을 뽑게 됐고, 그러다 '여신은 칭찬일까?'라는 문장이 나왔다. 이는 이민희 대표가 제안한 제목이기도 했다. 최 평론가는 "여성 아이돌이 흔히 요정이나 여신으로 지칭되는 점을 제목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이 책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라고 부연했다.

    '여신은 칭찬일까?'에는 수많은 '여돌'이 언급된다.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인기 그룹은 물론이고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과 활동 내용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돌'과 여돌의 작업물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평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최 평론가는 "최근 아이돌에 대한 여러 접근이 시도되고 있고, 학계 연구도 다양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조금씩 다른 접근의 생산물이 저널, 미디어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 저술은 이런 분위기에 힘입은 면모도 있다"라고 밝혔다.

    책은 △여돌은 어떻게 다를까 △여돌은 어떻게 응원하고 위로할까 △여돌은 아름다워야만 할까 △여돌은 어떻게 생존할까 등 총 4개의 큰 장과 14개의 세부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최 평론가는 "이 책은 단지 남성 아이돌과 여성 아이돌만의 차이를 부각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남녀 아이돌 모두 경쟁 사회에서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있고, 공통으로 겪는 문제도 당연히 존재한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분명 남녀 아이돌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각각의 양상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차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발생하는지도 궁금했다. 차별화되는 기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했다"라고 덧붙였다.

    '여돌'의 특성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는, 특히 '여돌'이기에 겪는 한계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노출했다. 똑같이 교복을 입어도 '남돌'은 콘셉트 안에서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여돌의 교복은 대부분 몸 선이 부각되며 소녀다움에 방점을 찍는다. 또한 여돌은 '응원하고 위로하는' 노래를 더 자주 부르며, 실력을 증명해 보이라는 유·무형의 압박에 더 노출돼 있다.

    "아이돌에게는 단정한 품행과 도덕적 무결점이 요구된다. 이는 특히 여돌에게 더 엄격히 적용된다. 여돌의 신체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 미디어는 도덕주의와 선정주의라는 모순적 잣대로 아이돌, 특히 여돌의 일거수일투족을 전시하고 감시한다. 이에 따라 여돌의 입지는 좁아진다"(258쪽)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여돌이 대중과 팬덤에 받아들여지는 범위는 더 한정적이다.

    여성 아이돌 이름에는 색채를 표현하는 단어도 곧잘 들어간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이핑크, 블랙핑크, 레드벨벳. 각 소속사 제공

     

    "여성뿐 아니라 남성 아이돌도 무한정 자유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우선 아이돌 자체가 가상의 또는 이상적인 이미지이자 캐릭터(像)라는 점에서 현실 속의 실제 인간과는 거리가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남돌이든 여돌이든 아이돌의 모습에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바라는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지요. 어린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도덕적으로 무결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남녀 아이돌에게 동일하게 규정됩니다만 여성 아이돌이 보다 이상화되고 낭만화되며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였어요. 여성 아이돌 역시 현실 속의 여성과 완벽히 등치시키기는 어렵고 또 위험한 일입니다만, 현실과 가상의 교집합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최 평론가는 "남돌은 앨범의 영향이, 여돌은 싱글의 영향이 더 크다. 이는 여돌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반면 남돌이 '덕후적'으로 소비된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남돌을 향한 구매력은 앨범을 중심으로 공연과 관련 상품의 판매 등으로 순환되지만, 팬덤의 기반이 약한 여돌은 음악 자체보다 다른 외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88쪽)라는 대목을 예로 들어 "일언지하에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여성 아이돌이 남성 아이돌보다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금기와 제한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라고 바라봤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돌'을 꿈꾸는 이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뭘까. 최 평론가는 자신이 답할 만한 사안일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건 K팝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이돌을 둘러싼 문화와 산업은 그와 궤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으니 고단함이나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열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 빛이 나는 일 같지 않나. 그 빛 뒤에 존재하는 그림자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테니… 우려스러운 부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성이 도박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복잡한 심경이 들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책을 쓰는 동안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최 평론가는 "아이돌 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노정하는 증거들이라서 정말 슬프고 힘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지금 '여돌 판'에서 어떤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더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에 최 평론가는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종종 다가오는 암초들이 그런 믿음과 희망을 또 갉아먹는다"라고 답했다.

    성적 대상화, 비인격화 문제 등을 근거로 '여돌을 소비하지 말자'는 일각의 주장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아이돌이 정말 사라져야 할 때인가 하는 의구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그만큼 아이돌을 둘러싼 그늘이 크고 깊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둘러싼 부정적인 환경, 여건, 아이돌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편식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달의 소녀는 '버터플라이' 활동 때 신체 노출이 거의 없는 의상을 입어 퍼포먼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여자)아이들은 엠넷 경연 프로그램 '퀸덤'에서 맹수를 호명한 '라이언' 무대로 호평받았다. 사진은 모두가 왕좌에 앉아있는 클로징 모습. '버터플라이' 뮤직비디오와 '퀸덤' 캡처

     

    그러면서도 "아이돌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칼로 무 자르듯 시비를 가리거나 폄하하는 시점은 지나버린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돌과 그 주변에 어둡고 깊은 그늘만 드리운 건 아닐 것이다. 분투하면서 의미를 창출해내고 또 진화하는 여성 아이돌의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본다. 우려와 걱정이 들면서도 희망을 품게 하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여신은 칭찬일까?'에는 최 평론가가 발견한 여돌의 성장과 성취가 나타나 있다. (여자)아이들이 엠넷 '퀸덤'에서 보여준 '라이언'(Lion) 무대가 대표적이다. 최 평론가는 '라이언'을 "여돌이 맹수를 호명하는 드문 사례"라고 소개하며, "'라이언'이라는 곡과 퀸덤에서의 퍼포먼스는 정말 훌륭했다. 소연의 주도적인 창작력도 그렇고, 메시지와 무대를 일체화하는 모습이 좋았다"라고 밝혔다. 2017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아이유가 백업 보컬, 버스킹 가수, 무명의 음악인과 함께 꾸민 '이름에게' 무대도 최 평론가가 꼽은 인상적인 순간이다.

    긴 소매 블라우스, 검은색 긴 바지 등 신체 노출이 거의 없는 옷을 입고 활동한 이달의 소녀 '버터플라이'(Butterfly) 사례도 있다. 다양한 소녀들의 역동적인 신체 활동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를 두고는 "소녀의 형상은 단일하지도 고정적이지도 않으며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전달한다. 다리에 깁스를 한 소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소녀, 교복과 체육복 같은 단체복을 입은 아시아의 소녀, 벽을 뛰어넘으려는 흑인 소녀, 히잡을 두른 소녀 등 국적·인종·종교·장애의 유무 등이 다른 다양한 소녀들이 등장해 자신의 일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라며 "이달의 소녀는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젠더·인종·국적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단초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이번 책 '여신은 칭찬일까?'에서 여돌에 관한 논의를 펼친 최 평론가의 다음 계획이 궁금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여성 음악인들을 조명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 거시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도 있고 개별 아티스트를 집중 분석할 수도 있겠다"라고 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투하는 한국의 '여돌'들과 '여돌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질문했다. "그분들에게 무슨 말을 제가 할 수 있을까"라고 한 최 평론가는,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가 쓴 추천사의 문장으로 대신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유는 2017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세상의 모든 이름을 위해'라는 주제로 '이름에게' 무대를 꾸몄다. '멜론 뮤직 어워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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