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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경찰 '수사상황' 전달받았다



사건/사고

    [단독]'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경찰 '수사상황' 전달받았다

    • 2020-09-09 05:00

    '사탕수수밭 살인' 용의자, 필리핀서 탈옥 후 마약판매
    국내서 구속된 판매책 통해 경찰 수사정보 전달 받아
    수사진행 상황은 물론 증거인멸·도피 방법 조언까지
    '수사상황 유출', '교정시설 관리부실' 논란 도마 위

    '필리핀 사탕수수빝 살인사건' 주범으로 지목되는 박모(42)씨가 필리핀 감옥에서 탈옥 후 도피 도중 국내에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국내에서 구속된 판매책 A씨가 지난 4월쯤 박씨로 추정되는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에 보낸 편지. 박씨에 대한 수사 정보 등이 담겼다.(사진=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캡처)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 박모(42)씨가 지난해 필리핀 감옥에서 탈옥한 뒤, 해외 도피 도중 국내에 버젓이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드러난 가운데 (관련 기사 : [단독]'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도피 중 은밀한 마약판매) 그가 경찰의 수사상황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상황을 전달한 이는 박씨의 국내 마약 판매책 중 한 명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편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편지에는 국내 경찰의 수사정보와 함께 증거인멸, 도피 등에 대한 조언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러한 민감한 정보 유출이 박씨가 도피 중에도 대담하게 범행을 저지른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OOO 절대 입국 금지, 체포 영장 나와 있음"…수사정보 전달 받은 '주범'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지난 4월쯤 자신의 밑에 있는 국내 마약 판매책 A씨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세계형님 저예요"라고 시작하는 편지에는 "형님의 새로운 아이디 및 주변인물 파악완료 및 지속 수사 진행중 ※OOO경찰서 마약전담팀 OOO 팀장(경위)", "국제범죄수사 진행중(인터폴 공조) : 형님 이름부터 형님의 과거 행적까지 모두 인지" 등 국내 경찰의 수사 상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어 "OOO 절대 입국 금지 : 체포영장이 이미 나와 있고 입국할시 바로 비행기 안에서 체포 예정", "특히 OOO 진술로 소재 파악 중이며 O月O日 OOOOOOOO(서울청)이 저에게 와 여러가지 정보들을 질문했지만 모른다고 일관. 그들이 말해준 정보→이름, 나이, 외국인보호소 관련 범죄, 카지노 사업(정킷)부터 타 사업들…" 등 경찰을 통해 들은 정보들이 빼곡히 나와 있었다. 수사하는 경찰의 소속과 실명도 쓰여 있었다.

    심지어 "☆선결과제 ①핸드폰 번호변경(심카드 폐기) ②라우터 심카드 변경(심카드 폐기) ③숙소 이동 ④당분간 영업 중지(OOO 정보 유출=피신할것) ⑤관련 인물 모두 피신(OOO 곧 체포예정) ⑥국내자금 모두 해외로 송금!! 아이스시? 모두 추적중 텔레그램 삭제요망(아이디)" 라며 증거인멸 및 도피 방법도 적혀 있었다.

    ◇판매책, 경찰과 면담 내용 편지로 전달…경찰 "수사상황 유출은 아냐"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A씨가 편지 수신자로 적은 '세계형님'은 박씨로 파악된다. 박씨는 텔레그램에서 '전세계'라는 닉네임을 쓰며 마약을 판매해왔다.

    박씨는 A씨로부터 받은 편지를 마약 중간 판매책들과 구매자들이 모여 있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공개하며 "한국 경찰 내부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나에게 마약을 사면 안전하다"는 등 마약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어떻게 전달된 것일까.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 지시를 받아 국내에서 마약을 판매하다가 붙잡혀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된 A씨는 지난 4월쯤 수기로 작성한 편지를 지인한테 전달했고, 이 지인이 사진을 찍어 박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수사상황 등을 자세히 적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찰과의 면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지난 4월쯤 A씨를 직접 찾았다고 한다. 편지에서 A씨는 경찰과의 면담 일자를 4월 8일로 적었다.

    경찰은 편지에 적혀 있는 날짜에 교도소를 찾아 A씨와 면담한 것은 맞지만, '수사상황 유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박씨를 추적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사관이 박씨의 마약 판매 중간책 등 관계자와 정보를 주고받을 순 있다"며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이 통상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수사상황 유출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구속된 채 편지로 수사상황 전달했지만…교도소 "무검열이 원칙, 막을 방법 없어"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박씨에게 피해를 당한 유족 측은 "수사상황이 유출된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박씨가 계속 도피에 성공하는 배경이 아닌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해당 편지에 담긴 정보가 민감할 뿐만 아니라, 수사상황이 추가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해 약 11개월 동안 수사기관을 따돌리고 있는 상태다.

    유족 측은 "수사상황 유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경로가 무엇인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정시설의 '관리부실'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에서 수사정보가 새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정부교도소는 "수용자가 외부로 보내는 편지의 경우 무검열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와 같은 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다"며 "마약사범은 예외적으로 검열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교정시설은 수용자가 외부에 편지를 보낼 때 원칙적으로 이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 제65조(편지 내용물의 확인) 제1항에 '수용자는 편지를 보내려는 경우 해당 편지를 봉함하여 교정시설에 제출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마약류사범·조직폭력사범 등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수용자'가 '변호인 외의 자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경우'에는 금지 물품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봉투를 봉하지 않고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금지 물품 여부만 확인할 수 있지, 편지의 내용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다.

    의정부교도소 관계자는 "편지 내용까지 검열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수용자가 다른 수용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면서 "해당 사건은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내부적으로 구체적인 사실 여부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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