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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걸' 이후 슬릭은…"더 열린 귀와 마음으로 음악 해요"

'굿걸' 이후 슬릭은…"더 열린 귀와 마음으로 음악 해요"

[노컷 인터뷰] 여성 뮤지션의 '화합' 보여준 예능 '굿걸' 출연한 래퍼 슬릭 ①
경쟁이 아예 없진 않지만 화합해서 '한 팀'으로 무대 꾸민다는 제안에 수락
방송이란 낯선 환경에서의 첫 무대 호평…"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만"
"많은 사람이 저와 저의 음악을 쉽게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상대를 이겨야지' 보다는 '우리 무대 멋지게 하고 싶다' 앞섰던 시간
가장 좋아하는 곡 '나는 이영지'-'아이 두 왓 아이 원트'

CBS노컷뉴스는 지난 7월 종영한 엠넷 예능 '굿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출연한 래퍼 슬릭을 서면 인터뷰했다. (사진=포토그래퍼 장모리 촬영/슬릭 제공)

 

여성 뮤지션 10명이 나와 방송사의 돈을 털기 위해 퍼포먼스 경연을 벌이는 엠넷 예능 '굿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걸'). 효연, 치타, 에일리, 제이미, 장예은, 윤훼이, 전지우, 퀸 와사비, 이영지와 함께 이름을 올린 슬릭(SLEEQ).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시작해 다수의 싱글과 앨범을 낸 슬릭이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로 나온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것도 '악마의 편집'이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자리 잡은 엠넷 예능에.

'굿걸' 첫 방송 때 출연진이 보인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슬릭은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해 왔으나 TV 프로그램 등 대중매체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뮤지션이며 '굿걸'에 함께 나오는 동료라는 것조차 예측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원래 슬릭을 알고 관심 있었던 출연진도 슬릭의 '굿걸' 합류를 의외로 받아들였다.

경쟁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려내는 프로그램이라면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없고, 특히 힙합 프로그램('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래퍼' 등)이었다면 '디스'라는 이름으로 상대방 비방도 권장되고 허용됐을 것이다. '굿걸'은 다른 길을 갔다. 열 명은 하나의 팀이 되었고, 힘을 합쳐 퀘스트를 깨나갔다. 출연진 열 명 모두를 응원하고, 그들의 관계성에 열광한 시청자들이 나온 이유다.

무엇보다 '굿걸'은 슬릭이 어떤 뮤지션인지를 알리는 기회였다. 첫 무대 '히어 아이 고'(HERE I GO)에서 슬릭은 "말할 수 없던 것들 전부 다 꺼내"겠다며 "저항을 표한다던 노랫말들에 저항"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 노랫말"을 쓰고 부르겠다는 그는 맨발로 섰고, 무대에는 성소수자의 상징으로 쓰이는 무지개 깃발이 등장했다. 진중하면서도 강렬한 시작이었다. 이후 슬릭은 누구와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선사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증명했다.

'굿걸' 이후 슬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야망 순두부'라는 애칭이 생겼다. 빠듯한 일정 속 다채로운 퀘스트를 해치워 나가면서 스스로 깨달은 바도 적지 않다. '빨리 노래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음악을 만들 때도 조금 더 여유로운 자세를 갖게 됐다.

쇄도하는 섭외 요청에 바쁜 7월을 보내고 나서 슬릭을 8월 중순에 천천히 만나기로 했으나, 광복절 광화문 집회 사태 이후 코로나19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함에 따라 부득이하게 서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슬릭과의 일문일답.

1. 코로나19 상황이 워낙 심각해 아쉽게도 서면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래퍼 슬릭입니다. 많은 분들께는 '굿걸'에 출연하면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굿걸'은 국내 최고의 여자 힙합 R&B 뮤지션들이 방송사를 털기 위해 한 팀으로 뭉쳐, 플렉스 머니를 걸고 펼쳐지는 힙합 리얼리티 뮤직 쇼다. (사진=엠넷 제공)

 

2. '굿걸'에 슬릭 씨가 나온다고 했을 때, 실제로 방송에 나왔을 때 다들 놀라워하는 반응이었어요. 엠넷은 워낙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유명하고, 더불어 '악마의 편집'으로도 악명 높은 곳이니까 '굿걸'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 편집이 많이 들어가서 사람의 캐릭터를 소모하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작가님께서 섭외전화를 주셨을 때,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경쟁 프로그램이 아니고 여성 아티스트끼리 팀을 이뤄서 무대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는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미팅을 했고, PD님과 작가님을 직접 만나보니 경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협력해서 무대를 만드는 포맷이라는 설명이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3. 첫 무대 '히어 아이 고' 무대는 슬릭이라는 뮤지션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회였어요.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알지 못하는 메시지라고 했지만, 멋있게 봤다거나 좋은 메시지를 준 것 같아서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무대를 올라가기 전과 마치고 내려왔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하나요.

사실, 너무 떨려서 어떤 생각을 할 틈이 없었어요. 저도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어필할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막상 무대를 하려니 방송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무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긴장되어서 이 무대를 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서도, 가사 실수, 발성 실수 같은 게 없었는지, 지금 내가 정말로 온에어로 무대를 마친 건지 같은 생각 때문에 후련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저의 메시지가 어떻게 방송을 탈 것인지 같은 생각도 아예 하지 못했어요. 제 머릿속에는 온통 '가사 실수 금지, 긴장 금지' 이런 말들뿐이었습니다.

4. 인상적인 첫 무대를 했음에도 초반에 다른 멤버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나왔죠. 당시 방송에서 '이대로 하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고요. 정말 하차까지 고려했던 건가요.

저는 '굿걸' 출연 전부터 단 한 번도 대중적인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뮤지션이었습니다. 늘 스스로도 비주류의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왔고, 제 음악이 세상에 퍼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는 제가 마주한 세상과 감정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등의 내재적인 고민을 더 크게 하던 터라 '굿걸'에 출연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저와 저의 음악을 쉽게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송 캠프를 진행하면서 하차를 생각했을 땐, 이런 나의 음악이나 태도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 관련 리얼리티/경쟁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높은 퀄리티의 음악과 무대를 구성해 선보이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고 출연진 대부분도 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음악과 무대를 만드는 데 늘 무제한의 시간을 사용하는 환경에서만 작업을 해왔었던 저라, 송 캠프 및 프로그램 전반의 포맷 아래 슬릭이라는 사람을 팀원으로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굿걸'에는 슬릭을 포함해 효연, 치타, 에일리, 제이미, 장예은, 윤훼이, 전지우, 퀸 와사비, 이영지까지 총 10명이 나왔다. 슬릭은 TV를 보지 않아서 출연진 얼굴 대부분을 못 알아봤으나,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음악도 접해본 뮤지션들이었다. (사진='굿걸' 캡처)

 

5. TV를 안 보는 평소 습관이라든지, 다른 출연자보다 방송에 출연한 경험이 적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방송 초반 저를 많은 분들께 각인시켰던 '못 알아봤습니다!'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 말이 이렇게까지 재밌는 말인지, 누군가 웃을 수 있는 말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못 알아봤기 때문에 못 알아봤다고 말씀드렸고, 어쩌면 다른 출연진분들께 실례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 그 후에 촬영을 가기 전까지 다른 출연진의 활동 이력을 최대한 공부(?)해 갔었는데,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좋게 비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긴 촬영 시간에 익숙한 다른 출연진분들 같은 경우에는 중간중간 당 섭취를 잘하시더라고요. 저도 촬영을 거듭하면서 그런 중요한 팁들을 캐치해 얼른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

6. 첫 방송에서 '언프리티 랩스타'라는 프로그램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죠. 여성 래퍼들을 주인공으로 삼지만 결국 외모 평가가 먼저인 부분을요. '굿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라는 제목은 어땠나요.

촬영이 3~4회 정도 진행된 후에 프로그램명을 알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뭐지? 되게 평가적인 단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촬영을 거듭하면서는 '굿걸'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프로그램 타이틀이 아니라 저희 열 명의 팀명처럼 사용되면서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저희 열 명 중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닌, 좋은 음악과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오히려 전복적인 뉘앙스를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7. 퀘스트를 거치면서 어느 뮤지션과 합을 맞추든, 어떤 퍼포먼스를 준비하든 누구보다 유연한 자세로 잘 융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요. 슬릭 씨는 '굿걸'을 하면서 새롭게, 혹은 다시금 발견한 본인의 특징이나 성격이 있나요. 태도적인 면이든, 음악에 대한 가치관이든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일단 제가 정말 빨리 노래를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노래를 만드는 데에 꼭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정말로 촉박한 시간 내에도 노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좋은 노래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의견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슬릭은 첫 무대였던 '크루 탐색전'에서 '히어 아이 고'라는 노래를 불렀다. 슬릭은 준비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공연을 펼쳤고, 무대 위에는 무지개 깃발이 등장했다. (사진='굿걸' 캡처)

 

그전까지는 협업을 많이 하지 않아서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저의 머릿속에서 꺼내어 발현하고,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만한 정도로 만든 후에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거든요. '굿걸'을 촬영하면서는 음악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들까지도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결과를 함께 완성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로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어떤 형태의 아이디어든 가리지 않고 더 열린 귀와 마음으로 음악 작업에 임하는 것 같아요.

8. 시청자 입장에서는 '실력 있고 개성 있는 뮤지션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어요. '굿걸'에서 많은 퀘스트가 있었는데 슬릭 씨가 가장 매료됐던 공연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여러 개 꼽아 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제가 속해 있는 세상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돌' 분들과의 무대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물론 우리 '굿걸' 중에서도 아이돌이 있지만요) 저와 에일리 언니, 그리고 오마이걸의 미미-유아 님이 서로가 상대라는 것을 인지한 후에 무대를 준비하고, 또 서로 준비한 무대를 보면서 퍼포먼스에 대한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비단 이 무대뿐만이 아니더라도 '굿걸' 촬영 내 무대를 준비하면서는 '상대를 이겨야지'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다가도 점점 '우리 무대를 더 멋지게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크게 가지고 무대에 임했었고, 그러다 보니 상대 팀에서 준비하는 무대들을 보면서도 '정말 잘한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무대 자체를 존경하게 되고 다음 무대를 위한 공부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쟁을 한다는 생각보다 정말 한번 촬영장에 다녀오면 머릿속에 새로운 배움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9. 또 '굿걸' 멤버들이 쓴 가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영지의 가사들이 너무 좋았어요. '굿걸' 촬영을 끝마치면서까지도, 촬영을 다 마치고 다음 활동을 준비하면서도 영지의 노래들은 몇십 번씩 반복해서 듣고 가사도 많이 읽었습니다. 평소에는 가사를 읽으면서 노래를 듣지는 않는데, 영지의 가사는 뭐랄까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각도에서 곱씹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나는 이영지'와 '아이 두 왓 아이 원트'(I Do What I Want)' 입니다. <계속>

래퍼 슬릭 (사진=싱글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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