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에 놓인 도두항 요트 계류시설(사진=고상현 기자)
"제주유람선입니다. 도두항 수상레저 요트 계류시설이 제주시청으로부터 원상회복 명령 처분을 받았습니다. 계류하고 있는 요트 선박은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14일 제주관광대학교 레저스포츠계열 김기윤 교수는 '날벼락'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2011년부터 사용해온 제주시 도두항 내 요트 계류시설을 더는 쓸 수 없다는 통보였다.
김 교수는 "계류시설이 없어지면 배 댈 곳이 없어진다. 지금까지 해오던 학생 교육이든, 요트 대회, 동호회 활동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항내 포화 문제 해결 압박에 결국 철거"김 교수가 속한 제주요트협회 회원들은 매달 30~50만 원의 이용료를 ㈜제주유람선 측에 내고 요트 계류시설을 사용해왔다. 정박해 있던 요트만 6척~8척이고, 대학생‧회원 등 100여 명이 10년 가까이 이용했다.
그런데 올해 5월 말 상황이 바뀌었다. 요트 계류시설의 소유권자인 제주유람선 측이 제주시로부터 '시설물 원상회복 명령'을 받은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제주유람선 측이 도두항(수역 기준 4만 6천㎡) 내 기존 점용 허가 면적을 가로 60m‧세로 30m(1800㎡)에서 가로 35m‧세로 50m(1750㎡)로 변경 신청한 것에 따른 것처럼 보인다. 새로이 허가받은 구역에는 요트 계류시설이 속해 있지 않다.
변경된 점용 허가 구역(사진=제주시 제공)
하지만 제주유람선 측이 10년 가까이 점용 허가받아온 기존 구역을 포기한 '속내'에는 최근 3년 사이 급증한 '관광 낚시어선'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도두항 포화 상태 해결 압박에 떠밀려 요트 계류시설을 포기하게 됐다는 게 제주유람선 측의 설명이다.
제주유람선 채봉석 대표이사는 "이번에 새로 건조한 유람선을 도두항에 대려면 추가로 70㎡를 점용 허가받아야 했는데, (낚시어선 민원으로) 방법이 없다고 제주시에서 위치를 변경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70억 원 투자해서 건조한 유람선을 낚시어선 측의 각종 소송으로 수개월 간 운항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세워두면 손해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요트 계류시설을 포기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특히 제주유람선은 지난 5월 낚시어선 선주 30명이 제주시와 제주유람선을 상대로 낸 어항 시설 사용‧점용 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더는 유람선 운항을 미룰 수가 없어서 결국 점용 허가 변경 신청하게 됐다.
제주관광대학교 레저스포츠계열 김기윤 교수(사진=고상현 기자)
김기윤 교수는 "요트 계류시설의 주인은 제주유람선이지만 우리도 어떻게 보면 세입자인데, 철거 명령에 이르기까지 행정에서 우리와 협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요트 계류시설 철거?…"마리나 항만 계획 역행"제주시는 제주유람선 측이 요트 계류시설을 철거하면 낚시 어선을 위한 물양장과 부잔교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제주시의 결정이 국가 항만 계획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10년 1월 제주권 마리나항만 기본계획(2010년~2019년)을 발표했다. 그 내용으로 도두항을 요트 등의 해양 레포츠를 위한 마리나 개발, 마리나 클러스터 형성 등이 있다.
철거 위기에 놓인 요트 계류시설도 국가 마리나 항만 계획에 따라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제주유람선 측이 10억여 원을 들여 만들었다.
국가 도두 마리나항만 개발 계획 내용(사진=자료사진)
제주시의 계획은 오히려 요트 계류시설을 철거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국가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요트협회 한대승 이사는 "국가에서 2010년도에 도두항을 마리나 항만으로 키운다고 해서 요트를 샀다. 지금 요트 계류시설을 철거한다는 것은 국가계획과 정반대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민 "낚시어선 민원 ↑…요트 계류시설 철거는 특혜"제주시의 이 같은 결정에 도두동 주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최근 외지에서 온 관광 낚시어선들로 쓰레기 문제, 난폭 운항, 고성방가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제주시가 오히려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강우영 도두어부회장은 "그동안 관광 낚시어선들이 항 내에 미끼 남은 것을 상자째로 버리거나 낚시 관광객 버스를 마을 안길에 장기 주차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제주유람선 측의 요트 계류시설을 철거하면서까지 낚시어선들 편의를 봐주는 것은 특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도두항에 정박한 낚시어선들(사진=고상현 기자)
◇"항내 포화 문제 해결 위한 것…요트협회 반발 이해 안돼"이에 대해 전국갈치낚시연합회 제주지부 최성훈 협회장은 "쓰레기 투기, 고성방가 등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낚시 관광객들이 들어오면 하루에 50만 원씩 쓰고 가기 때문에 주변 식당, 숙박업소, 상점 주인들이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낚시어선들은 어업 면허가 있어서 국가어항시설이면 어디든지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국가어항인 도두항 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시 관계자도 "항 내 접안 시설이 부족해서 계속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데, 유람선까지 들어와서 영업하겠다고 하니깐 추가로 면적(요트 계류시설)을 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제주요트협회에서 반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동안 제주유람선의 사유재산을 사용료로 내고 이용하는 것일 뿐 행정상의 권리가 없다"고 답변했다.
도두항 전경. 제주유람선에서 운항하는 해미르호와 낚시어선들이 보인다.(사진=고상현 기자)
한편 애초 제주시는 제주유람선 측에 요트 계류시설에 대해 6월 27일까지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제주요트협회의 반발로 이달 말까지 연기된 상태다.
제주요트협회는 제주시의 일방적인 행정 절차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