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작은 지수 역을 연기한 배우 전소니를 만났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나한텐 선배가 신념이고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선배가 신념으로 하는 거 다할 거고 선배랑 같은 편 먹을 거고 선배가 사는 세상에 나도 살 거예요. 제 마음 안 변하니까 설득할 생각 마세요."
위험한 시위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 준 한재현(박진영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 윤지수(전소니 분). 재현이 갖은 핑계로 일 년이나 밀어내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재현은 지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지수는 재현과 사귀면서 재현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그가 꿈꾸는 세상에 공감하고 함께 받아들인다.
지난 14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1990년대 초반과 현재를 오가며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주인공이 운동권 핵심 멤버로 설정된 만큼, 당시 사회상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온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등장하고, 철거 반대 투쟁을 하고, 지명수배가 떨어진 상황이라 긴급체포되고…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전소니는 "제가 지금 누리는 것들 다 누군가가 되게 애써서 얻어낸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내가 배울 점이 있고, 닮아가고 싶은 점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전소니가 90년대를 좋아하는 이유1991년생인 전소니는 '화양연화'를 통해 199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경험했다. 그는 "제가 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선망이 있는 편인 거 같다. 그래서 옛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그런 배경 안에 있는 제(모습)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동안 시대적 배경이 있는 작품을 해 본 적이 없기도 하고"라며 "특히 제가 좋아했던 영화나 음악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니까 너무 좋더라"라며 미소지었다.
전소니는 '화양연화'에서 윤지수 역을 맡았다. 우연히 시위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한재현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는 캐릭터였다. (사진=tvN 제공)
이전 인터뷰에서도 1990년대를 향한 마음을 고백한 바 있는 전소니. 전소니는 "전체적으로 그때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그 기운이 너무 좋다. 옛날 가요는 조금 단순하고 담백한 듯하면서도 진하게 오는 감정이 있는 것 같다. 그런 90년대 음악을 들으면, 뒤에 깔리는 악기 소리도 더 깔끔한 것 같다. 지금 화려하고 신기한 소리도 많지만, 예전 거는 뭔가 조금 더 정직한 느낌이 있고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특별히 아끼는 노래가 있을까. 전소니는 "쿨, S.E.S., 핑클도 좋아하고 빛과 소금, 동물원, 어떤날도 너무 좋아한다. 제 친구들도 다 그런 걸 좋아하는 애들"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드라마 하면서 제가 몰랐던 노래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가 많아서, 감독님도 '넌 왜 이걸 다 알고 있냐?'고 하셨다"라며 웃었다.
'화양연화'는 1990년대를 단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쓰지만은 않았다. "오른쪽으로만 힘껏 당겨져 있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이유로도 다른 인간을 짓밟아선 안 되는 게 내가 운동을 하는 또 다른 이유야" 등 재현의 연설과 대사에도 알 수 있듯, 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꿔내려는 주인공의 노력도 비중 있게 그려졌다. 전소니는 '화양연화'를 찍으면서 학생운동에 관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제가 지금 누리는 것들 다 누군가가 되게 애써서 얻어낸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 같아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모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왜 그렇게까지 해?' 하는 시선을 견디면서 뭔가를 이끌어낸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덕에) 제가 누리고 사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억지로라도 나랑 상관없어 보이는 일도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제가 그걸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 '재현 선배' 진영은 "분명하고 깨끗하게 표현하는 사람"'화양연화'는 아역이 보통 초반 4회, 6회 정도까지만 나오는 것과 달리 현재의 인물과 계속 같이 가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작은 지수는 전소니가, 큰 지수는 이보영이 연기했다. 전소니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막상 같이 있는데 비슷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어, 다행이다!' 했다"라며 웃었다.
전소니는 인터뷰 내내 '화양연화'와 자신이 연기한 윤지수 역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지수 한 사람을 두 사람이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전소니는 이보영에게 많을 걸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나는 20년 전의 나랑 그렇게 닮아있지 않아. 우리가 통일성을 가진 한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기보다, 소니 네가 과거의 지수로 겪는 일을 충실히 겪어내고 살아내면 그게 나한테 영향을 주는 거니까 각자의 지수를 잘 표현하는 게 오히려 둘을 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 같아'라고 조언했다.
전소니는 "그래서 저는 편하게 생각했다. 사실 과거의 지수는 현재의 지수를 모르는 게 맞으니까. 제가 느끼는 과거, 현재에서 재현 선배나 제가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겪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라고 전했다.
'재현 선배' 박진영에 관해서는 "제가 누나지만 선배로 대하려고 했다. 진영 선배는 연기할 때 자기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그걸 되게 분명하고 깨끗하게 표현하는데 어떻게 보일지 알고 노리는 방식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고 그 길을 진심으로 꾹꾹 밟아가는 느낌이어서 옆에서 보면서 되게 많이 배웠다. 자기가 하는 걸 분명히 표현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본 게 드라마에도 잘 담기는 기분이었다. 저는 그런 게 아직 왔다 갔다 해서, 되게 배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대본이나 역할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되게 진지하고, 열려 있는 거 같다. (어떤 걸) 제안했을 때 허투루 듣지 않고 같이 고민해주고 자기를 생각한 걸 만들어주기도 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부연했다.
전소니는 '남자친구' 이후 두 번째로 드라마에 출연했다. 주연으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소니는 "어떤 하나의 역할을 갖고 현장에 가는 건 매번 똑같은 것 같다"면서도 "(전작 이후) 다시 드라마 현장을 경험하는 게 되게 낯설었다"라고 밝혔다. 진행 속도가 빠른 현장 분위기 때문에 초반에는 쫓기는 마음도 들었지만 전소니는 "사람들이 너무 좋고,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 작품을 끝나고 나니까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 확 지난 것 같아요. 작품 초반에 잠을 잘못 자고 그랬는데 끝나고 나니까 뭔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고요. 너무 잘 해내고 싶었던 역할이었어요. 무사히 잘 끝나서 다행이고 감독님, 선배님들이랑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 윤지수가 전소니에게 남긴 흔적
전소니는 어린 재현 역을 연기한 박진영(갓세븐 진영)과 연인 호흡을 맞췄다. (사진='화양연화' 캡처)
오랜 기간 함께한 윤지수와 인간 전소니는 얼마나 닮은 사람일까. 극중 지수가 재현에게 거침없이 달려가며 본인의 삶을 크게 바꾸었던 것처럼 그런 대범한 선택을 한 적이 있는지 묻자, 전소니는 "저도 지수처럼 대범한 순간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내 "어떤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 순간은,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되게 대범한 순간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보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이라고 부연했다.
전소니는 지수처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보면서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주로 그런 사람한테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배울 점이 있고 닮아가고 싶은 점이 있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삶에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연애 대상이건, 친구건, 가족이건,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쨌든 조금은 닮을 수밖에 없는 것 같고"라고 설명했다.
"저한테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들이 저한테 묻어서 지금의 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때, 누군가를 만났기에 결국 (지금의) 내가 되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대화에서 되게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 것 같고요."
작은 지수와 재현이 현재의 지수와 재현과 만나는 엔딩 촬영은 남이섬에서 했다. 서로를 만나는 것도, 넷이서 길을 걷는 것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는 전소니는 막상 마지막 촬영을 하고도 이게 끝인지 아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제야 알았다. 지수를 연기하며 '기분이 무척 좋았었구나!' 하는 것을. 남이섬을 떠나면서 그 '신남'을 비로소 느꼈다.
"나도 역할을 하면서 영향을 받긴 하는구나를 이거 하면서 약간 안 것 같아요. 그동안은 그런지 아닌지 몰랐거든요. 이게 얼마나 저한테 오래 남을지 모르겠지만 지수를 (연기)하는 동안은… 보려고 해야만 보이는 예쁜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막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그런 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떤 자극을 받고 갑자기 세상을 좀 다르게 보게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지수가 저한테 그런 것 같아서. 뭔가 계절이 달라지는 것도 유심히 보게 되고 그게 나한테 주는 것들을 되게 온몸으로 느끼게 되고, 지수가 저한테 그렇게 만들어줬던 것 같아서 그동안 너무 좋았었고요. 앞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정말 행복하긴 했어요."
'화양연화' 엔딩에서 작은 지수와 작은 재현, 큰 지수와 큰 재현은 함께 만난다. (사진='화양연화' 캡처)
◇ '항상, 그냥 너무 좋은' 연기전소니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해였던 2014년 단편영화 '사진'으로 데뷔했다. 주로 단편영화에 나왔기에, '여자들'(2017)에서야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개봉작이나 방송한 드라마 필모그래피로만 보면 공백기처럼 보이지만, 그때도 전소니는 계속 연기하고 있었다.
전소니는 "단편이나 독립영화를 하면 극장에 걸리는 일이 적으니,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인데 그 작품들이 있어서 2017년에 영화를 할 수 있었다"라며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기회가 왔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냥 너무 좋아요, 연기하는 게. 연기하는 게 너무 어렵고 답답해서 배우들끼리도 궁금해해요. (대본 받고 역할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진짜 답이 없어요. 어떤 분은 답이 있겠죠? 너무 부럽지만 저는 답이 없더라고요. 천방지축 다 해 보고 가늠하면서 짚어 올라가는 것, 겨우겨우 기어 올라가는 게 너무 좋아요. 보일락말락 하는 걸 굳이 보겠다고 매달려 있는 기분인데도요. 이 일 말고는 그렇게까지 애쓰게 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저를 너무 힘들게 하고, 또 너무 기쁘게 하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계속하는 것 같아요."
'화양연화'로 두 달 동안 시청자를 만난 전소니는 아직 확정된 차기작이 없다. 2017년 국내에 개봉한 동명의 중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검토하는 중이다. 당분간은 휴식할 것 같다. 코로나19로 특히 관객 급감이 심했던 독립영화관을 위해 '세이브 아워 시네마'(Save Our Cinema) 챌린지에 참여해 관심을 독려했던 그인 만큼, 틈틈이 극장에도 갈 예정이다. "일부러라도 극장에 계속 가요. 그래야 (작품들도) 계속 개봉할 수 있겠지, 싶어서요." <끝>
배우 전소니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