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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상화, 21세기 미디어…'응시 권력 속 여성'



문화 일반

    18세기 초상화, 21세기 미디어…'응시 권력 속 여성'

    사회적협동조합 두잉 '2020년 2월 연속특강_보는 여성, 보이는 여성'
    1강. 여성과 인물화-여성은 보편적 인간인가(18~19세기 여성 자화상과 초상화)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지난 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두잉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열린 '2020년 2월 연속특강_보는 여성, 보이는 여성'에서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가 '여성과 인물화-여성은 보편적 인간인가(18~19세기 여성 자화상과 초상화)'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각종 미디어에서 여성은 '재현(再現)'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재현'이란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다시 나타남'을 의미한다. 매스미디어 등장 이전, '보이는' 매체로서의 미술작품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여성을 재현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두잉이 마련한 '2020년 2월 연속특강-보는 여성, 보이는 여성'을 통해 미술사를 중심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응시의 권력'에 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18세기 초상화, 21세기 미디어…'응시 권력 속 여성'
    <계속>


    (사진=JTBC 제공)

     

    "여자는 보편적 인간일까요? '여'기자, '여'의사 등 모두 '여(女)'를 앞에 붙입니다. '여인'은 있지만 '남인(男人)'은 없어요. '여'를 붙이지 않으면 (여성인) 나의 인격을 증명할 수 없나요? (여성인) 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닌가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_이라영 예술사회학자

    우리 시대 '오피니언 리더'라 불리는 얼굴들을 떠올리면 대부분이 남성이다. 신년 토론회 방송에 패널로 나온 인물들만 봐도 모두 남성이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21세기 권력의 얼굴이 모두 '남성'인 것을 이야기하며 18~19세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두잉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열린 '2020년 2월 연속특강_보는 여성, 보이는 여성'에서는 '여성과 인물화-여성은 보편적 인간인가(18~19세기 여성 자화상과 초상화)'를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자로 나선 이라영 연구자는 미디어와 미술에서 권력의 중심이 바뀌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그 예로 요한 조파니의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1772년)을 들었다. 그림은 당시 아카데미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됐음을 볼 수 있다. 아카데미는 문학·미술·음악 또는 과학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즉 지식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장소이고, 그 장소를 누릴 수 있는 건 남성뿐이었다는 뜻이다.

    요한 조파니,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들'(1772년)

     

    미술 작품 속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초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8~19세기 여성의 초상화를 보면 '꽃'과 같은 모습으로만 여성은 존재한다. 여성의 의상, 품행, 물질적인 치장을 상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멍한 시선과 경직된 자세, 복종 혹은 경건함을 드러내는 자세가 대부분이다. 공식적인 행위인 '초상화' 안에서 여성은 이름이 있고 자기 개인의 목소리와 서사(敍事)가 있는 인격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정물'(靜物·그 자체로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이 된다.

    이 연구자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조반나 토르나부오니의 초상'(1488)과 엘 그레코의 '모피를 두른 여인'(1580)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림에서 굉장히 많이 보인다. 여성이 안 보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다 '대상화'된 모습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정물처럼 여성은 철저하게 대상화된 존재로만 표현됐다. 여성이 입은 값비싼 옷과 장신구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은 남편의 사회적 위치와 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남성의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성의 초상을 남긴 것이다."

    여성이 '정물'처럼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일 경우 문제가 발생했다. 그림 '처형되는 구주'(1793)에서 보듯이 '여성권선언문'을 발표하고 여성에게 선거권을 달라는 등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진 여성인 올랭드 드 구주(프랑스, 1748~1793)라는 '실제 여성'은 처형시킨다.

    초상화와도 닮은 선거 포스터에서도 능동적인 여성에 대한 반감이 드러난 사례가 있다. 이 연구자는 지난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포스터 훼손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신지예 후보의 눈빛이 시건방지다는 논란이 일어났다"며 "소주병에 그려진, 매력적인 꽃으로서 여성의 얼굴은 권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으로 가려고 노력하면 그 얼굴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여성을 매력적인 사람으로만 다루는 데 있다. 매력적인 여성에는 '젊은 여성'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 여성은 미술작품 속에서도 나이 듦을 경계해야 한다. 로살바 카리에라의 '자화상'(1746)이 대표적인 예다. 그림에는 나이 든 여성이 나오지 않는다. 노인인 여성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연구자는 "나이 든 여성을 혐오하는 건 지금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1721~1782), '자화상'(1777)

     

    이러한 재현된 여성에 반기를 든 게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1721~1782)다. 그가 그린 '자화상'(1777)에는 나이가 들어서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 모습이 등장한다.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기존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 역할의 모습이 아니다. 당시에는 도발적인 시도다. 여성이 나이를 먹어서도 지성을 키우며 살아갈 거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특정한 재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연구자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코코(18세기 미술 양식)를 여성적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젠더 이분법적"이라며 "이렇게 구분하는 자체가 (성 역할 고정관념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미술의 스타일을 놓고 여성적, 남성적이라 부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자가 '여성'이라는 정체성만 가질 뿐 개인의 얼굴이 지워진다면, 여자는 집단이 되는 것이지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며 "'차별'이란 개개인의 서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차별은 편견으로 이어진다. 여성을 일반화시키려는 행위에서 벗어나 '개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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