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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노조→폐업→실직"…'노조 탄압' 교과서 쓴 삼성



법조

    "강성노조→폐업→실직"…'노조 탄압' 교과서 쓴 삼성

    '기획폐업' 감추려 알리바이까지 지시
    노조원 담배 피우는 횟수도 조사
    어용노조 만들고 호텔방에서 '특별훈련'도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삼성그룹의 '무(無)노조' 체제를 위한 노력이 총 400여장 분량의 판결문에 낱낱이 기록됐다. 노조 조직 단계부터 구성 이후, 집회·파업 등에 대한 대책까지 '노조 탄압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 중 특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을 따라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삼성 임원들처럼 '실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노조 생길 바엔, 회사를 없애버리자…'기획폐업'의 전말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수리 등을 맡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해 말 기준 정직원이 1200명 수준이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수리기사들은 정직원이 아니라 각 지역별 협력업체 직원이라는게 삼성 측 입장이었다. 이처럼 협력업체 소속인 수리기사 인원은 해마다 6000~8000명 사이를 오가는데, 이들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수리·유지보수 물량의 98%를 처리했다. 정직원 1200명은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2013년 노조를 만들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 교섭을 요구하자 삼성에 비상이 떨어졌다. 자회사의 노조 관련 상황을 일일이 관리하는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인사지원팀은 매우 구체적인 노조 탄압 정책을 수립했다. 그 중 하나가 '기획폐업'이다. 노조 조합원인 수리기사들을 대거 해고하는 것은 말썽이 생길 수 있으니 이들을 고용한 협력사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협력사 안정화 방안' 또는 '협력사 폐업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 방안' 등의 제목이 붙은 문건들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혔다.

    -[법률분쟁 대비] 폐업의 진정성 확보
    ▶협력사 사장은 주변에 지속적으로 폐업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편 '경영지속 불가'라는 폐업의 진정성 입증 자료 축적(매출 손실, 영업이익 감소, 고객 불만 급증, 사장 건강 악화 등)

    -[노조 세 확산 방지] 실직에 대한 불안감 극대화
    ▶"협력사 사장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유포해 '강성노조활동→폐업→실직'이라는 인식 확산

    -[폐업실행 시나리오] 민주노총 총파업(2014.2.25) 일정 및 여론(조간) 보도시점 고려
    ▶1.29(수) 전직원 대상 명절 선물 지급하며 회사 운영의 어려움을 언급. 임직원에게 덕담을 건네며 동정심을 유발
    ▶1.30(목)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 전송해 경영상 고민 토로
    ▶2.2(월) 폐업사유 입증자료, (사장) 건강악화 증빙자료 준비
    ………(중략)………
    ▶민주노총 총파업
    ▶2.26(수) 협력사 사장은 2월 말 경영상 사유로 폐업함을 공표함. "지치고 미련이 없다. 다 버리고 폐업하겠다" 발송
    ▶2.27(목) "취업알선을 해주고 싶으나 여력이 없다"고 언급하되, 희망자를 대상으로 채용추천서를 발급해 부당해고 분쟁 대비
    ▶2.28(금) 폐업절차 진행

    협력사 사장에게 위와 같은 '깨알' 시나리오를 써준 곳은 삼성전자서비스 QR(Quick Response·신속대응)팀이다. 노조 대응을 위해 삼성전자 본사에서 파견된 임원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됐다. QR팀에서는 이외에도 '협력사 이슈 대응 로드맵', '공세적 대응조치' 등 수백건의 노조와해 문건을 작성했다. 지시를 받은 협력사 사장들은 QR팀의 시나리오대로 회사 문을 닫았다.

    검찰 조사에서 용인 협력업체 사장 박모씨는 "폐업은 사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업은 중심에 삼성이 있다. 그만둘 때 권리금을 보장해주는 것은 삼성이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사장들에게 권리금 보장을 매개로 폐업을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기획폐업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2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이를 계기로 노조원들이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김모씨를 동원해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이 치러지도록 장례절차에도 꼼꼼히 개입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노조원 사생활 감시해 '회유·압박'하고 어용노조 만들어 '특별훈련'

    삼성전자서비스보다 앞선 2011년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던 삼성에버랜드에서도 황당한 노조탄압이 이뤄졌다. 노조 설립을 주도한 주축 조합원인 조장희씨를 보안업체 직원을 시켜 모니터링하고 식사 주문 내역이나 흡연 여부 등도 수집해 '일일동향 문건'으로 만들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조씨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이 보고서를 받아봤다.

    이 작전은 미행·감시를 의미하는 일명 '패트롤' 작전으로 불렸다. 조씨 뿐 아니라 조합원 가족의 건강 등 병력 등 노조 탈퇴를 회유하거나 압박 용도로 쓸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조씨 주축 노조의 교섭요구권을 봉쇄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만들기도 했다. 어용노조 설립은 노조 탄압의 대표적인 도구이지만 삼성의 어용노조 설립은 더욱 꼼꼼하고 특별했다.

    에버랜드 사측은 어용노조의 위원장을 맡은 임모씨와 조합원 3명을 호텔로 불러 △대내외 행동지침 △단체교섭 시뮬레이션 △모의 카메라 인터뷰 교육 등을 실시했다. 이후로도 2달간 △언론 인터뷰 Q&A 교육 △어용노조·알박기노조 비난 대응 교육 등을 수시로 진행했다. 만약 어용노조 시비가 커져 검찰이 회사를 압수수색할 것에 대비하자며 사측과 임씨의 통화내역을 미리 정리해두기도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와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맡은 형사33부(손동환 부장판사) 모두 삼성이 '비노조 경영'이라는 목적을 위해 조직적으로 노조 탄압에 나섰다는 점을 인정했다.

    형사23부는 "회장 직속 미전실의 고위 임원에서부터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영진, 각 협력업체 직원까지 여러 위법 요소를 감수하고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며 "조직적인 대규모 부당노동행위이며 그 규모와 파급력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지침이나 상사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강경훈 부사장 등의 항변에 대해 형사33부는 "우리사회가 기초로 삼은 약속보다 더 무거울 수 없는 사정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를 이해해줄 수 없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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