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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19금 엑스레이 사진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영화

    '메기', 19금 엑스레이 사진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노컷 인터뷰] 영화 '메기' 이옥섭 감독 ①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영화 '메기' 이옥섭 감독을 만났다. (사진=박종민 기자)

     

    ※ 영화 '메기' 내용이 나옵니다.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등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부터 제작한 인권 영화를 보고 자랐다. 좋은 작품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인권 영화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청년의 삶과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주어졌다. 꼭 교훈을 주는 얘기는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다만 그동안 선보인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경쾌함을 유지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이옥섭 감독은 '메기'를 만들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메기'는 이옥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인권위의 14번째 영화다. 인권위는 '여섯 개의 시선', '다섯 개의 시선', '세 번째 시선' 등 여러 명의 감독이 만든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부터 '날아라 펭귄', '범죄소년', '4등' 같이 독립된 장편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메기'는 병원을 발칵 뒤집은 19금 엑스레이 사진,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싱크홀과 위험을 감지하는 특별한 메기까지 믿음에 관한 가장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담은 이야기다. 지난해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정식 개봉 전부터 범상치 않은 시작을 알렸다. 이옥섭 감독은 '메기'로 부국제에서만 KBS독립영화상, 시민평론가상, CGV아트하우스상까지 3관왕을 기록했다.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메기' 이옥섭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영화는 보셨어요?"라고 묻는 그에게 "그럼요!"라고 답했다. "그런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진짜요? 그럼 무슨 얘기를 하죠?" 하는 스몰토크로 가벼운 웃음이 터졌고,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인권위에서 의뢰한 작품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인권위가 제작한 영화를 보고 자랐다고 언론 시사회 때 말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임순례 감독님 '그녀의 무게', 박찬욱 감독님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등 인권위 작품을 20대 초반에 보고 자라면서 '내가 극장에서 보던 영화와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흥미를 갖고 봤다. 재미있게 봤는데, 이렇게 인권 영화를 빨리 찍게 될 줄 몰랐다. 좋은 기회가 닿아서 이런 영화를 찍게 돼서 기쁘다. (웃음)

    지난달 26일 개봉한 '메기'는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2X9HD 제공)

     

    ▶ 인권위가 '청년'이라는 키워드와 '경쾌하게'라는 분위기 외에 또 주문한 부분이 있나.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저는 장르를 고민할 때 호러가 되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거 원치 않고 교훈적이지 않아도 된다, 청년들이 보고 같이 공감만 하면 의미가 있다고 얘기해주셔서 거기에 마음이 동해서 하게 됐다. 정확한 키워드는 '청년의 삶과 인권'이었다. 어쨌든 좀 무겁지 않게, 지금 사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제가 그동안 영화를) 밝게 만들었던 걸 보고 선택해주신 것 같다.

    ▶ '청년의 삶과 인권'이라는 주제는 창작자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풀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이 시대', '지금'을 담고 싶었다. 그때가 2017년 4월이었는데 뭔가 지나간 얘기, 내가 살아온 거 말고 지금 현재를 말하고 싶었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까?'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윤영(이주영 분)이라는 인물을 세웠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땐 어떤 영화가 개봉해도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사는 현실을 담으면 그게 영화겠네?' 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느꼈던 느낌, 생각, 나를 둘러싼 생각을 갖고 천천히 윤영의 주위를 그려냈던 것 같다.

    ▶ 처음 구상하고 촬영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2017년 4월에 의뢰를 받아서 초고가 한 8월쯤에 나왔다. (웃음) 2017년 10월에 (촬영)해서 12월에 끝내야 했다. 8월에 (초고) 쓰고 프리(프로덕션) 두 달 하고 12월 말에 끝냈다.

    ▶ '메기'는 마리아 사랑병원 어항 속의 물고기 메기를 화자로 하는 영화다.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어떤 이미지가 있나. 있다면 어디서 나왔는지.

    논리적이지는 않고 그냥 탁 들어와 있던 이미지였는데,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어떤 지인이 한강에서 뱀장어를 잡았다. 근데 얘를 먹기가… 뭔가 너무 좀 애틋해진 거다. 그래서 데리고 있다가 어항에서 키우게 된 거다. (웃음) 너무 어색했다. (뱀장어가) 쬐끄만 개인 어항에 담겨 있는 모습이. 다시 찾아갔을 땐 방생해 주셨다고 한다. 그 이미지가 언젠가 어딘가에 박혀 있었나 보다.

    밤에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항을 바라보고, 거기엔 금붕어 같은 일반적인 물고기가 아니라 메기가 들어있다는 것. 사실 어울리지 않을 것도 없더라. 우리가 금붕어에 익숙해진 거지. 메기는 뭔가를 저한테 줬는데, 뭘 줬냐면, 그런 게 있다. 푹 가라앉았을 때 메기를 가만히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된다. 제가 힘들 때 인간보다는 동물, 식물을 찾는다.

    메기는 지진을 정말로 감지한다고 한다. 되게 둔해 보이는데 예민한 생선인 거다. (메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어떤 변화를) 나보다 먼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저한테는 재미있게 다가왔다. 되게 신비롭다고 생각했고. (영화에서도) 윤영이 느끼지 못하는 것까지 다 느끼고 얘기해 줄 수 있겠다 싶더라.

    '메기'는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발견된 한 장의 엑스레이 사진을 시작으로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2X9HD 제공)

     

    ▶ 극중 메기가 꽤 비중 있게 나오는데, 실제로 한 마리로 촬영했나.

    한 마리로 촬영했다. 메기도 종류가 되게 많다. 스태프들과 상의해서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수족관에서 데려왔다.

    ▶ 혹시 메기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었나.

    아, 이름은 없다. (웃음) 그냥 메기였다. (* 기자 주 : '메기'의 영어 제목은 'Maggie'다)

    ▶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고, 각자 소제목이 붙어 있다. 개별 이야기도 완결성이 있어서 단편으로 나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마음을 잡고 단편처럼 쓰진 않았다. 윤영이라는 인물을 세우니까 일하는 곳의 병원 부원장, 이 사람과 만나는 남자가 탄생했다. 그 후 남자친구 동료들도 생각하게 되면서 이런 식으로 퍼진 거다. 주인공이 아닌 윤정재-박경혜 배우가 나왔던 건 우리가 어떤 일을 맞이했을 때 (그 일은) 지구로부터, 우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기'의 중요한 사건이) 전혀 의외의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듯이. 바로 윤영이부터 시작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걸 쓸 때는 단편을 엮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로 유기적으로 썼다고 생각했다.

    ▶ 윤영, 경진(문소리 분), 성원(구교환 분)의 이야기가 갈래갈래 펼쳐진다. 캐릭터를 세울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키워드가 있기보다는 그냥 저는 관계에 신경 썼다. 제가 기자님을 만날 때와 또 다른 어떤 분을 만날 때 다 다르지 않나. 윤영도 성원이랑 있을 때, 이경진 부원장이랑 있을 때랑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써 내려갔다. 성원 또한 윤영이를 만날 때, 전 여친을 만날 때, 동료를 만날 때 다를 거고. 어떤 공간에 있고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또 달라져 있기도 하고.

    ▶ 병원을 발칵 뒤집은 19금 엑스레이 사진, 이라고 하면 엉뚱하고 독특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불법촬영을 연상하게 한다. 장난 혹은 고의로 내밀한 사생활이 찍혔는데, '누가 그랬는지'가 아니라 '누가 찍혔는지'에 관심을 보인다는 내레이션이 의미심장했다.

    그게 딱 지금의 저, 우리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라고 생각했던 게, 예를 들어 어느 지하철역에서 불법촬영된 사진이 나왔다고 하면 '어, 난가?' 하는 그런 게 많았던 것 같다. 우리 반경 안에서 일어나서 그게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러웠고, 주변 친구들도 바로 공감했다. 화장실 갈 때도 (불법촬영 도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포기한 부분도 있고.

    (그 장면은) 의도한 거다. 지금 우리가 삼십몇 년을 그렇게 살았지 않나. 이제야 조금 바뀌고 있는데, 그때(시나리오 쓸 때)는 그게 가장 저한테 큰 문제였고, 답답함에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런데 화장실이나 숙박업소의 누군가가 살이 직접 찍혀 나오고, 그런 이야기는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 장면을 보고 누군가가 자기 기억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 직접 표현하지 않고 이 이야기(불법촬영)를 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메기'에서 각각 윤영, 경진, 성원 역을 맡은 배우 이주영, 문소리, 구교환 (사진=국가인권위원회, 2X9HD 제공)

     

    ▶ 성원의 전 여자친구가 성원의 현 여자친구인 윤영에게 자기는 성원에게 맞은 적이 있다고 하는 장면도 놀라웠다. 성원은 윤영에게 다정했고, 영화 안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나.

    다들 '내 남친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나. 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가) 절대 악의로 그런다고 안 한다. 그게 가장 컸다. 이 사람이 대인관계가 엉망이거나, 아니면 과거에 엄청난 폭력배여서 여자친구를 만나서 폭력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거다. '정말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나.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실험이 떠오른다. 범죄자가 누구일 것 같은지 초등학생 아이들한테 골라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 무섭게 생긴 사람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멀끔한 외모인 사람도 있었다. 여자친구를 때릴 수 있는 사람도 사실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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