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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기정은 어떻게 다송이와 친해졌을까? 박소담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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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기정은 어떻게 다송이와 친해졌을까? 박소담의 답

    [노컷 인터뷰] '기생충' 기정 역 박소담 ①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생충' 기정 역 배우 박소담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봉 전 '전원 백수' 가족이라는 설명을 봤을 때만 해도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기택(송강호 분) 가족에 대해 단단히 오해했다. 일상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가난 앞에 무력한 채로, 저항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이들이 아닐까 재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꽤 열심히 살았다. 적절한 때에 괜찮은 기회를 얻지 못 하는 일이 반복됐을 뿐.

    기택 가족 구성원 중 기정(박소담 분)은 특히 '능숙함'이 더 눈에 띄는 캐릭터였다. 아버지의 진심 가득한 감탄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포토샵 실력뿐 아니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말솜씨,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부잣집 안에서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기생충' 개봉 이튿날이자 5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소담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의 기정 역할 제안이 왔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며 웃으며 말한 박소담은 누구보다도 기정을 기정답게 보이는 연기를 선보였다.

    잊을 만하면 꼽등이가 튀어나오고, 술꾼들의 노상 방뇨 장면을 강제로 보게 되고, 반지하 방에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가난한 가족의 막내딸. 동시에 신뢰를 주는 목소리와 외모로 가장 그럴듯하게 전문가를 가장하고, 웬만한 돌발 상황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20대 청년. 여러 면을 가진 기정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박소담에게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믿지 못했다던데. 연기로 슬럼프를 겪은 후여서 그랬던 건가.

    그 시기(슬럼프) 후 1년이란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 인제 진짜 연기가 하고 싶고 빨리 현자에 가 보고 싶은 와중에 감독님한테 연락이 와서 더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의상감독님 통해서 연락 왔는데, 모르는 번호로 '봉준호 감독님께서 소담 씨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믿겠나. (웃음) 두 번째 연락 왔을 때 '정말인가요?' 했다. 편안하게 오면 된다는데 너무 떨리는 거다. (웃음) 어떻게 편안하게 갈 수 있나. '아, 이게 뭐지?' 싶었는데 감독님이 그러셨다. '왜 사람 말을 못 믿냐'고. (웃음) 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는 회사도 없었고 저 혼자였기 때문에… 또 그렇게 오래 쉬었는데 저를 찾아주셨으니.

    박소담이 맡은 기정은 '전원 백수' 가정의 막내딸이다. 안정적인 직업은 없으나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놀라운 포토샵 능력과 태연하고 능숙한 말솜씨, 기죽지 않는 기세를 지녔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봉 감독이 기정 역을 왜 제안했는지 설명해 줬나.

    '옥자' 때 미팅을 한 번 했었다. 그때도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이번에 처음 만났을 때도 정말 살아가는 이야기,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송)강호 선배님의 딸이다, 가족 이야기인데 자세한 거는 내가 아직 쓰고 있으니 다 쓰고 난 뒤에 얘기를 하자.' 그래서 시나리오 받기 전까지는 기정이에 대한 설명이나 '기생충'에 대한 설명은 못 들었다. 제목도 못 들은 상태였다.

    ▶ 그렇게 만나고 나서도 정말 기정 역에 캐스팅된 건지 긴가민가했다고 하던데.

    감독님은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중이었고, 내가 하자고 하면 하는 건데 왜 그걸 걱정하냐'고 그러셨다. (웃음) 배우 입장에서는 아직 시나리오 받은 것도 아니고 감독님 만나서 두세 번 밥 먹은 게 다인데 좀 불안한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은데… (웃음)

    말씀해주시는 아무것도 없고, '기정이가 이런 역할이기 때문에 너랑 하고 싶다' 이런 말도 아예 없이 송강호 선배님 딸이고 지금까지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만 하셨다. 정말 강호 선배님도 들은 이야기가 없으셨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받기 전까지는 뜨문뜨문 연락을 받아서, 모든 배우가 다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셨더라. (역할 제안이) 믿기지도 않는데 정확히 설명 안 해 주시니까. 또 그 어느 회사에도 ('기생충' 관련) 정보가 없고…

    ▶ 기정은 오빠 기우(최우식 분)에 이어 미술 과외 교사로 박사장네에 들어간다. 기정은 말투나 말하는 내용이나 굉장히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기정이가 보기에는 되게 당차고 겁도 없을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계획도 많이 하고 (과외 준비를 위해) 인터넷으로 정말 많이 찾아보고 공부를 정말 많이 해 놓은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송이(정현준 분)를 파악해서 사모님(조여정 분)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학년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이야기를 시작할 때 100% 확신하고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교감으로 인해 짐작한 건데도, 그걸 우물쭈물 물어보는 게 아니라 확신에 차서 물었고, 그때 연교가 놀라면서 한 반응에 살짝 안도감이 있었던 거다.

    100% 확신하고 질문한 건 아니었는데 아주 잘 맞았던 거다, 다행히. (기정이) 실력이 없는 친구도 아니고 취업도 계속하려고 하지만 조금씩 비껴나가다가, 그 집에 들어가 다송이라는 아이를 만나 수업하면서 기정이가 그 몇 년간 준비해 왔던 게 한 번에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제가 볼 땐, 아마 오빠(기우)보다도 제(기정)가 공부를 더 많이 했을 거다.

    기정네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그럴듯한' 전문가로 보이는 인물이 바로 기정이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다송은 집안에서도 제어가 잘 안 되는 엉뚱한 아이다. 그런 다송은 처음 만난 날부터 기정의 품에 안겨 있고, 기정에게 배꼽 인사를 한다. 뭘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말을 잘 듣는 건지 궁금했다.

    안겨 있는 게 가장 키 포인트였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엄마와의 교감, 접촉 이런 게 되게 크다고 하더라. 그 시기가 아이들의 모든 게 형성되기도 하고. 사실 연교에게 그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아닌 것 같다, 다송이는. 그 집에 있는 가정부가 그 아이를 키워서, 엄마와는 살을 맞대고 접촉하며 뭔가 이뤄진 적이 없었던 아이 같다.

    기정이가 다송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수업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렇게 하면서 다송이와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거다.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가만히 있어"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의 접촉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셔서. (웃음) 엄마를 힐끔 보고 가는 장면이 있지 않나. 컷한 다음에 "다송이 애기인데 쟤 진짜 잘한다" 다들 그랬다. (웃음)

    ▶ 언론 시사회 때 '기정이를 하면서 제 말을, 제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정 대사에 약간의 욕설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 말투에 익숙해지기까지 어렵진 않았나.

    기정이 대사를 읽었을 때 그게 욕설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걔의 한 문장, 기정이만의 말투, 기정이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저희 집 가족들이 사실 기우 말고는 욕설을 하지 않나. 저희 어머니(장혜진 분)도 그렇고, 가족 분위기가 그런 거 같아서 '욕 대사를 어떻게 쳐야 하지?' 이게 아니라 그냥 한 문장으로 연습했던 것 같다. 그런 게 어렵진 않았고 되게 자연스러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적인 부분이 있어서, 제가 욕설을 해도 아버지가 귀여워라 해 주시니까 크게 불편하거나 어려웠던 건 없다.

    ▶ 욕 대사도 자연스럽게 해서 주변에서 평소 말투 아니냐고 놀렸을 것 같다.

    (웃음) 제 애드립이 아니다. (그런 대사가) 시나리오에 정말 써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저 평소는 그렇지 않다. 또, (대사가) 욕처럼 들리는 게 아니라, 기정이의 흐름에 이상하지도 않더라. 저도 읽는데 '쟤는 저런 애구나' 처음부터 생각하고 연기했다. 기사식당에서 세게 하고 나면 (스태프들이) '어떻게 욕하는 게 저렇게 자연스럽지?' 그랬다. (웃음) 저 평소에 그러지(욕하지) 않는다. (웃음)

    ▶ 영화를 보면 기정은 가장 전문가다운 포스를 뽐내면서, 임기응변도 뛰어나 보인다.

    그만큼 기정이가 집안에서도 눈치를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티 내지 않고 폐 끼치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강한 친구였던 것 같다. 바로바로 그런 게(임기응변이) 되는 사람인 거다.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사람, 기정이는 그런 친구인 것 같다.

    기정의 미술 과외를 받는 박사장네 막내 아들 다송 역은 배우 정현준이 연기했다. (사진=㈜바른손E&A 제공)

     

    ▶ 다송이 생일 파티에 근사한 옷을 입고 갔을 때도 그런 노련함이 보이더라. 그건 어디서 난 건가.

    체육관에서 준 옷이 그 옷이다. (웃음)

    ▶ 혹시 기정의 전사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가족들 모르게 혼자 정말 많은 준비를 했던 친구인 것 같다. 면접에 떨어지고 학교에 떨어지고 와서도 절대 집에 내색을 안 냈을 것 같고. 막내라면 한 번쯤 어리광을 부릴 법도 한데 안 하고 있다가 술 취한 씬에서 '나한테 집중하라'고 하지 않나. (기택네 가족이) 각자 일하고 여유가 없다 보니까,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긴 했지만 관심이 필요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오빠한테 털어놓을 수는 없는… 제가 볼 땐 좀 그런 인생 고민을 할 만한 상대가, 기정이에겐 없었을 것 같다. 오빠는 민혁 오빠(박서준 분)하고도 만나고 아버지하고도 그런 얘기를 나눴을 수도 있지 않나. 기정이가 술에 취해서 '나한테 집중하라'고 하는 장면을 읽고 되게 좀 짠했다. 그 부분에서 '아, 그래도 이 영화에서 기정이가 막내구나.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구나'라는 게 보이길 바랐다. 욕은 하지만. (웃음) 기정이의 그동안의 답답함 이런 부분이 거기서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저도 그 부분을 생각하고 준비했다.

    ▶ 캐릭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기생충'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정말 제가 이 일을 오래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시나리오 보는 눈이 있거나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어떤 판단을 할 순 없지만… 제가 읽었는데도 잘 읽혔고, 글로 읽는데도 느껴지는 엄청난 속도감에 놀랐고 배우 하나하나가 다 기억이 났다. 어떻게 글로 다 표현을 잘해주셨지? 놀라웠다. 괜히 기정이 대사를 한 번씩 더 읽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님을 4번 정도 봤을 때였다. 중간중간 사진과 영상을 찍으시긴 했지만. 대사가 제 입에 너무 딱 붙는 거다, 억지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나를 벌써 파악하신 건가 싶더라. 되게 제 입에 딱 맞는 대사들이 많았다. 아, 빨리 이 대사를 직접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 '기생충'에서 가장 공감 갔던 장면이 있다면.

    제가 가장 고민 많이 한 씬이면서, 이 친구가 정말 안쓰러웠던 순간이 변기 위에서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생각을 했다. '제가 이 와중에 저기 앉아서 저래도 될까요, 감독님? 여기에서 빨리 모든 것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그래도 될까요?' 하는 고민이 되게 많았다. 근데 그 공간에 가서 (오물이) 튀어 오르는 변기를 붙잡고 거기에 딱 앉았는데 모든 게 다 온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냥.

    배우 박소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정이는 여기서 이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얘는 너무 견디기 힘들겠구나… 그래서 스태프분들이 다 나가서 세팅 바꿀 때도 저는 그 공간에 계속 앉아있었다. 변기 위에. 뭔가… 어… 되게 좀 먹먹했던 것 같다. 얘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구나 싶어서.

    또 우리 엄마는 이런 일이 벌어진 걸 모르고 있지 않나. 아, 정말 (웃음) 우리 가족 너무 짠하다. 충숙이 엄마도 생각나더라. 되게 되게 먹먹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되게 여러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기정이의 인생이 참… 얘, 진짜 잘됐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그 시간을 잘 가진 것 같다. 그 시간 없이 지나갔더라면 아마 체육관에서 잘 자지도 못했을 거다.

    ▶ 결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감독님이 기정이는 죽을 것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죽기 직전까지 할 말 다 하고 (웃음) 그게 기정이답다고 얘기하셨다. 죽는다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크게 의미를 두고 연기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순간까지 절대 죽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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