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현대사' 제작진. 왼쪽부터 김기용 PD(조소앙편 제작), 허진 선임PD, 김정중 PD(김규식편 제작)
해방공간을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 하나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1일까지 3주에 걸쳐 방영된 KBS ''''인물현대사-특집 3부작: 좌우를 넘어 민족을 하나로''''가 바로 그것.
광복 60주년을 맞아 제작된 이번 3부작은 좌우합작을 통해서 민족 통합을 이루려다 실패하고 이후 역사의 뒤편으로 묻혔던 해방공간의 중도파 3인을 차례로 다루었다.
좌우합작 시도하다 실패한 중도파 조명 먼저 7일 중도 좌파의 대표 격인 여운형편을 시작으로 14일 해방정국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되는 조소앙편, 그리고 마지막 21일에는 이승만, 김구와 함께 우익의 3영수로 불렸던 김규식편이 방송되었다.
최근 들어 현대사 관련 다큐멘터리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시청자들의 관심이 기대보다 부족한 측면이 있다.
특히 ''''인물현대사''''는 지난해까지 화재를 일으켰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보다 인지도 면에서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그러나 이번 특집에서 다뤄진 3명은 그 비중과 무게 면에서 이전에 소개되었던 인물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거물들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좌우 합작 등을 통해 끝까지 사회의 통합을 부르짖었다는 점으로 비춰보면 이번 3부작이 오늘날 현실에서 가지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읽어보는 ''''인물현대사'''', 그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담당 PD들을 만나 이번 3부작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허진 선임PD, 김기용 PD(조소앙편 제작), 김정중 PD(김규식편 제작)
''''해방 당시 중도파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왜 해방공간인가.
"그때는 복잡 · 다난한 시기로 여러 가지 이념들이 혼재해 있었던 해방시기였다. 이러한 국난기에 많은 인재들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가 지나치게 이승만과 김일성 중심으로만 알려져 있고 이때 활동했던 중도적 성향의 인물에 대해서 그동안 너무나 소홀히 했던 측면이 있다.
특히 전쟁 이후에는 평화 통일 운동과 같은 정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 무조건 탄압하고 죽이는 등의 상식이나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이제 좌익과 우익, 남과 북을 떠나 한반도 전체를 아울러서 봐야 한다는 판단 하에 이번 3부작을 제작하게 되었다."
▷여운형, 조소앙, 김규식 이 세 명이 선정된 기준은.
"보통 해방공간에서 통일운동을 이야기할 때 김구 선생만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좌우 합작과 남북 협상을 논할 때 김규식과 여운형을 빠뜨릴 수 없다.
좌우익의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극좌 · 극우 위주로 진행된 현대사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핵심은 좌우 · 남북의 통합을 지향했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조소앙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당시는 물론 요즘 봐도 뛰어난 세계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번 특집에서 느낀 점은.
"인물현대사를 제작하면서 PD들이 배우는 게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존경할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이번에 다룬 인물들은 생각보다 세계에 대해서 열려 있었고, 세계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동이 훨씬 자유롭고 인터넷 매체가 발달한 요즘 사람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한 것 같다.
파리강화회의 때만 보더라도 이 사람들이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과 정렬만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공보다 더 갚진 감동을 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진작에 이미 주목받았어야 할 인물들인데 조금 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이번 인물들의 비중이 상당히 커서 8주라는 제작기간이 짧게 느껴졌다. 때문에 이 분들에 대한 소개가 부실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으면 더 깊은 취재가 가능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특히 당시 시대가 워낙 복잡하고 방대하기 때문에 60분이라는 방송 시간에 걸려 편집된 내용도 상당히 많다."
''''과거의 역사는 곧 현재의 문제''''▷역사 다큐멘터리가 주는 의미는.
"요즘 사회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10년 전조차 아득한 옛날로 여기고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10년 전의 과거이다. 과거와 현재는 단절되기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박경식이라는 역사학자를 방송한 적이 있는데,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에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라는 책을 펴 낸 분이다.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식민지 시절에 대한 명확한 사죄 없이, 그리고 강제 연행 등에 대한 배상을 제대로 합의하지 않고 진행되는 한일 협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최근 이와 관련된 외교문서가 공개되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40년 전의 이야기라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문제이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고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봐 달라.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다. 보는 사람의 생각으로 미리 재단하려 하지 말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많이들 봐줬으면'''' 이번 특집 3부작이 방송되고 난 후 ''''인물현대사''''게시판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몽양 여운형 편이 나간 직후에는 ''''여운형 빨갱이 아닌가요.''''하는 질문에서부터 당시의 국제 정세에 대한 갑론을박에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
나범수(bujju)씨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좌,우 이념의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고, 심진극(soulbeam)씨는 ''''좋은 방송 제작에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도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분들에 대한 심도 깊은 방송 부탁드립니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제작진들은 ''''인물현대사는 시청률이 중요한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이러한 시청자들의 격려에 깊이 감사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어려운 제작 여건으로 고생했지만 방송이 나가면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다면서 ''''그러니까 시청료를 올려야 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건네기도.
"YH 여공 김경숙, 의열단 김원봉 편 방송 예정" 이번 특집 방송 이후에도 ''''인물현대사''''는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주역들을 계속 방송할 예정이다.
다음에는 소설가 이문구 편이 방송되고, 2월에는 ''''YH사건''''으로 사망한 여공 김경숙편이, 3·1절 무렵에는 이번 특집에도 등장한 바 있는 의열단 김원봉 편이 기대된다.
''''처음 시작할 때 100명을 목표로 잡았다.''''는 ''''인물현대사'''', 지금까지 70여명의 인물을 다루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문성근 MC로 인해 한때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고 한다.
과연 남은 30여명은 누가 될지, 그리고 언론의 무관심을 극복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명예롭게 종영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하다.
노컷뉴스 인턴기자 손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