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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국경없는 한국 "텔미(Tell me)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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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뉴스부활 20주년 기념특집] 외국인 백만시대 "꼬레아? 꼬레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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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꼬레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밀려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체류외국인이 백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한민족 순혈주의 정책과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CBS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국내외 취재를 통해 외국인 백만명 시대의 대한민국을 조명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체류 외국인 100만 시대. 지난 8월 24일 법무부는 체류 외국인이 100만254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195개, 국제결혼자의 출신국도 117개다. 이 외국인의 범주에는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외에도 새터민과 재외동포가 모두 포함된다.

    ◆ 재독동포,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지난 5일 6,70년대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로 이주노동을 떠났던 재독동포들이 이주민 100만명 시대 한국에 정책을 제안했다. 고용허가제와 강제단속 추방정책 등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로, 이주민으로 독일에서 살아야 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처음 독일정부와 맺었던 3년 계약은 30년, 40년을 넘어섰다. 산업연수생으로 독일 땅을 밟았던 이들이 독일 시민사회와 노동조합과 연대해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독일 사회로 들어가기까지 순탄치 않았지만 길은 열려있었다. 지난 66년 간호사로 독일을 찾았던 한민족 유럽연대 최영숙 대표는 ''''독일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고 73년 오일쇼크로 독일의 경제가 악화돼 한국인 간호사 17명이 한꺼번에 해고당하는 일이 있었다''''며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독일 연방 정부에 관련 사안을 상정을 할 수 있어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라며 문제를 제기한 끝에 결국 5년 이상 일했던 간호사들은 무기한 노동허가를, 8년 이상은 무기한 체류허가를 받게 되었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랬듯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민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독일 사회에 간호사로 갔지만 다른 공부를 할 기회도 있었다. 여러 가지를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독일 사회에 적응을 하고 터전을 잡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온 다른 이민자들에게 대한민국이 기회를 줄 수 있는 야랑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노동자로 왔으니 노동자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 미수다 에바씨, ''''불법체류자도 모두 함께 어울리는 한국이 됐으면''''

    지난 9월 16일에 나간 결혼이주민네트워크 1주년 기념 동영상설명: 지난 9월 15일 결혼이주민네트워크 1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한 에바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온 에바씨. ''''아버지의 나라'''' 영국과 ''''어머니의 나라'''' 일본의 피를 물려받은 에바씨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3개월 단기 유학생으로 지난 2005년 한국을 찾았다.

    그녀에게 한국은 이상한 끌림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기한 것이 한국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3학년 여름에 한달동안 한국에 왔었는데 처음 왔지만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여기 와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재 법무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에바씨. 에바씨는 ''''불법으로 오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 것을 잘 해결하고 비자문제나 불법과 같은 부분을 외국 사람들도 더 솔직하게 상담을 했으면 한다.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더 함께 대화하고 살기 편하게, 불법이 아닌 상태로 여기 한국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 같이 행복하게''''라며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도 사회통합으로의 길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추규호 본부장은 ''''이주민에 대해 동화만 요구할 것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베트남과 형제가 돼서 이주민이 베트남에도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회통합의 길''''이라고 밝혔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최현모 대표는 일방적인 다문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일방적인 동화가 아닌 상호흡수에 의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multiculture)가 아닌 상호문화(interculture)를 통해 타국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로 들어오고 우리 문화가 다시 외국인들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상호 흡수됨으로써 상호문화로서의 발전가능성을 얘기해야 한다''''고 최대표는 설명했다.

    ◆ 일본 가와사키, 외국인 장애인 노인도 ''''다함께 다문화''''

    일본의 가와사키시 시민관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일본어 교실이 열렸다. 누구든 마음먹으면 찾기 쉽도록 지하철 역사 바로 옆 백화점 안에 자리 잡은 시민관. 일주일에 한번 씩 매주 목요일 밤에 운영되는 일본어 교육 학급에는 가와사키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가와사키 시민관 일본어반 담당자는 ''''여기서는 여권을 확인하지 않는다. 구청 외국인 등록 창구가 있는데 그곳에 홍보물을 두고 도서관 등에 홍보물을 배포해 이곳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시에 사는 주민이면 시민관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혁신시정을 실시해온 가와사키시. 외국인들이 어울려 사는 시정을 위한 정책은 비단 언어교육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재일동포, 재일코리안들이 펼친 인권 운동과 맞물려 이곳 가와사키시는 외국인 관련 정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와사키시 교육위원회 시민관 오다기리씨는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맨 처음 문제가 되었다. 자신들은 외국인인데 왜 일본에 살고 있는지 자기 나라 말을 잘 못하니까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린 것이다. 그런 모습에 대해 자기 나라 말,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학교 안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와사키시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10년 전 외국인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는 외국인대표자 회의를 만들었다. 이 외국인 대표자 회의를 통해 외국인 관련 건의사항들을 내고 평가하면서 외국인과 일본인들의 상호이해와 외국인들의 행정 편의 등을 도모하고 있다.

    외국인 대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선 신청을 한 뒤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된다. 심사위원에는 시민대표자 회의를 경험했던 외국인들과 일본어 교실을 운영하는 자원봉사자 대표, 교수들이 포함돼 있다.

    오다기리씨는 그러나 ''''예산문제로 외국인 대표자들을 직접 투표를 통해 뽑지 못하는 것은 아직 아쉽다''''고 말했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가와사키시의 노력은 외국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1987년 재일코리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와사키시 후레아이칸은 모든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며 다문화 공생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재일동포 출신인 후레아이칸 상담사 김신야씨는 ''''다문화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자는 개념이다. 그 뿐 아니라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소외된 노인들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해 가자는 것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복지법인 후레아이칸은 한국 재일동포들의 뼈를 깎는 투쟁 속에 세워졌다. 지문날인 반대운동과 취직 차별 반대운동 등을 펼쳐 가는 가운데 시 정부와 일본인들의 이해를 구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경 없는 도시'''' 가와사키시를 벗어나면 일본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일본의 외국인이자 한국의 외국인이기도 한 재일동포들은 여전히 인식의 차별 속에 갇혀있다.

    도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재일교포 3세 김명위씨는 ''''입지 좋은 곳에 가게를 하려 했지만 한국국적이기 때문에 계약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전에 4~5번 좋은 입지에 계약을 하지 못해서 가게를 못한 일이 있었다''''며 속내를 털어났다.

    재일동포 2세로 가나가와 지역 학부모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리숙자씨는 어린시절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다. 리숙자씨는 ''''치바현 어장에서 자랐는데 동포가 전혀 없는 지역이라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멸시 받고는 했다, 그것이 싫어서 조선학교에 가겠다고 내가 나서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조선학교에 다녔다''''고 말했다.

    독일의 오픈채널 · 프랑스의 오픈마인드
    ◆ 독일의 오픈 채널

    독일의 케이블 채널 가운데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채널 8번, 오프널 카날 베를린 OKB가 있다.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채널은 이 채널을 통해 방송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야말로 오픈 채널이다.

    외국인 체류자의 체류권한 문제, 이주민 스스로의 자기 문화적 정체성 문제 등을 외국인 스스로가 방송하기도 하고 이주민들 자신의 커뮤니티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오프널 카널 카렌 강씨는 ''''이주민이 원하면 본국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개인들이 자신이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표현했을 때 자신의 권리를 생각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독일 사회에 알려져야만 독일에서 수용되고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내용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으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 채널인 만큼 관련 장비와 채널을 사용하는 비용은 무료다. ''''코란의 경우 독일어로 방송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이주민들이 독일인들에게 코란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었다. 9.11 테러이후에 이런 방송들이 늘었는데 코란 자체가 좋은 내용을 담고 있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종교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인 것''''이라고 카렌 강씨는 설명했다.

    개국한 지 20년이 넘은 오프날 카날에서의 이주민 방송은 독일의 통일 이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에는 오프날 카날과 같은 열린채널이 전국 42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사회통합의 길을 걸어온 독일. 통일 후 독일의 외국인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1980년 공부를 위해 독일로 왔다 베를린에 자리 잡은 터키인 에르도간 카야씨는 ''''80년대 말까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통독 후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일자리를 구하려고 전화를 하면 악센트 때문에 우리는 독일 사람을 구하니까 다른 곳에 알아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서독의 통일로 서독의 저층노동력들은 동독의 노동인력들로 대체되기 시작됐다. 과거 독일처럼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은 통일 이후 다문화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때문에 통일 뒤 남한으로 들어올 북한 주민들과 다른 재외동포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66년 간호사로 독일을 찾았던 한민족 유럽연대 최영숙 대표는 ''''통일 뒤 독일 구동독 국민들은 이등국민으로 대우받고 있었는데 외국인 이주민들 현실이 더 나빴다''''며 ''''한국이 통일이 되기 전 이주정책과 국민들의 의식을 많이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필요에 의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왔으면 사회의 동등한 성원으로 인정해야 하며 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통일 뒤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이민자의 힘'''' 프랑스 국립이민박물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노벨 화학,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부인, 르노 닛산 자동차 카를로스 곤 회장과 프랑스의 축구 스타 앙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이민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첫 선을 보인 프랑스 국립이민박물관. 아프리카풍의 바닥장식, 동남아시아풍의 창틀문양. 어느 하나 이국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난 1931년에 지어져 식민지들의 문화전시관으로 사용됐던 이 건물이 이제는 프랑스와 다른 나라들과의 공동 상호관계를 만들기 위한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모두 3만여 평방미터 넓이의 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민사박물관 뤽 그뤼종 부관장은 ''''이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 전시물은 계속 바뀔 것''''이라며 ''''프랑스에 있는 외국인들이 만든 예술품을 전시해 외국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예술적 기여를 평가하고 프랑스와 이주민들의 공존을 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폴란드 출신의 마리 퀴리, 브라질의 레바논 이민자 가정 출신의 카를로스 곤 회장과 아프리카 가나 출신 앙리로 이어진 이민역사. 이민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민자들에게 주어진 평등한 기회와 이민자를 향한 긍정적인 인식에 있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질 베르뵝 박사는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해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이민자들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민자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특히 이민자들의 출신문화를 알아야 하며 이민자들의 인간적인 차원을 잘 알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문명끼리는 대립할 수 있지만 사람끼리는 대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불법체류자와 결혼? ''''아~무 문제없어''''

    지구 반대편 프랑스 근교에 살고 있는 한 개방적인 중산층 가족. 예술 에이전시로 사진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필립 뽕떼이(50)씨는 ''''프랑스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서 프랑스 사회에 적응시켜서 같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 나라의 특성''''이라며 ''''알제리 전쟁 시기 등을 맞아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와 노동력이 부족할 때 이들이 노동력을 보충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필립씨의 부인 소피(47)씨도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와 프랑스의 2,3,4세대로 올라가면 외국인 피를 받지 않은 프랑스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문화적인 다양성, 민족 나름대로의 역할, 다양한 이민출신들을 통해 프랑스의 모습이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립씨의 딸 아델리 양의 외국인에 대한 결혼관은 어떨까?

    아델리양은 ''''만약 사랑에 빠진다면 불법체류자인지 아닌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 필립씨도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딸이 선택한 젊은이가 불법체류자라면 합법적인 체류권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할 것이며 정 안되면 다른 나라에라도 보내겠다''''고 말했다.

    [BestNocut_R]우파적 성향의 56살 사민 메쉬씨. 전직 변호사 출신인 그녀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불법적으로 들어와 일자리도 없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데다 자녀들도 형편없이 불행한 조건에서 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의 경우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여기 와서는 일부다처제를 통해 낳은 아이들로 가족수당만 받아 살아가는 예가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쉬씨 역시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려는 불법체류자에게는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메쉬씨는 ''''불법체류자지만 계획을 세워서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려는 자세가 있다면 충분히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언론, 정치 학계 등 사회각계의 인사들이 모여 이민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을 논의하는 프랑스의 국제이민정보 연구센터. 카트린 웰던 연구부장도 음지에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양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불법체류자들의 고용을 합법화시키면서 국가 불법체류자들을 긍정적인 경제로 돌리는 것이 정당하고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국경없는 한국 "텔미 다문화" 라디오 방송 다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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