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국보 제112호인 감은사지 3층 석탑과 국보 제38호인 고선사지 석탑 등 경주지역의 신라시대 주요 석조 문화재 수십여 점이 지의(地衣·Lichen)라는 세균류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포자의 이동에 의해 다른 석물에 이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같은 사실은 경주대 문화재보존학부 도진영(석조문화재 보존학 전공) 교수가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탑 보수정비사업단''으로부터 석물 강화에 대한 용역을 의뢰받아 석물을 현미경 등으로 촬영 분석하던 중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22일 도 교수와 동행한 취재진이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 석조물을 조사한 결과, 신라시대에 조성된 일부 불상들은 세균에 의한 훼손 정도가 지나쳐 시커멓게 변색됐고 화산암처럼 작은 구멍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뚫려 있었다. 경주박물관 야외 잔디밭에 전시 중인 목이 잘린 불상들 가운데 지의에 완전 감염된 것과 감염이 진행 중인 것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뚜렷이 구분될 정도였다.
특히 지난 197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온 고선사지 3층 석탑은 기단부와 탑신 등 곳곳이 검은색으로 심하게 변색된 것이 확인됐다. 도 교수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터에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도 지의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 교수는 "국보 제20호인 불국사 다보탑의 변색 부분도 아직 정밀 분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세균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 전역의 석물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지의는 공기 중의 조류(操類·Alga)와 결합해 석조물 등에 기생하며 산(酸)을 생산하는 성질이 있어 중성인 석물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도 교수는 지의는 사막에서도 100년가량 포자로 살아있다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나면 암반 등에 기생, 그 암반을 약화시켜 붕괴시키는 무서운 세균류라고 설명했다. 특히 석조 문화재에 흡착하면 석재 내부로 침투해 재질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 교수는 "지의는 수분과 햇빛, 맑은 공기 등이 있어야 잘 자라는데 경주는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석조 문화재의 훼손이 특히 심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지의는 포자에 의해 다른 석물로 날아가 번식하는 세균류로 이대로 방치할 경우 경주 일대의 주요 석조 문화재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또 "경주뿐만 아니라 각지의 사찰 등 주요 석물들에도 지의가 기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석조 문화재 전체를 대상으로 정밀조사가 시급하다"며 "문화재 당국이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석조물이 시커멓게 변하는 건 오랫동안 대기 중에 있어 때가 낀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