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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월드컵 열풍 4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13일은 독일월드컵 토고전이 열리는 날이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국 곳곳이 붉은 물결로 들썩이고 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광고 카피처럼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좋아해''''라는 말로만 그쳐도 될까.

''''월드컵으로 집나간 당신의 (정치)이성을 찾습니다''''라는 한 시민단체의 안티 월드컵 스티커 문구를 떠올리면서 2002년 6월 월드컵 광풍에 ''''집나갔던''''(묻힌)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2002년 6월 13일, 무슨 일이 있었나 = 2002년 6월 5일 폴란드전 2대 0 승리, 10일 미국전 1대1 무승부. 한국의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승부처였던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둔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선 2차선 도로 갓길을 지나가던 여중생 신효순∙심미선(당시 14세)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처참하게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다음날 각종 신문들에는 1단 짜리 기사 정도로만 다뤄지거나 그마저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공중파 방송사의 뉴스도 다를 바 없었다.

온통 포르투칼전 예측 기사에다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를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민 대부분은 이 여중생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미군 측은 이후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기존 보도매체의 침묵 속에 그동안 인터넷으로 이들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져 월드컵 열풍이 사라진 2002년 7월부터 서울시 광화문 앞에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평화적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소파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효순이∙미선이 추모시위가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그 속에서 반미정서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하지만 월드컵 열풍은 이 두 여중생의 죽음을 한 달 가까이 침묵 속에 가둬놓은 사실만은 분명했다.

△역대 지방선거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2002년 6월 13일= 제4회 5∙31 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을 얘기하면서 각 보도매체들은 2002년 지방선거(3회) 투표율을 자주 거론했다.

하지만 그 선거일이 효순이∙미선이가 숨진 날이자 한국의 16강행을 앞둔 바로 앞날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지난 5∙31 지방선거 투표율은 전국 51.5%, 경남 57.8%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선 역대 지방선거 중 가장 낮은 전국 46.4%, 경남 54.1%를 기록했다.

당시의 낮은 투표율에 대해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5∙31 지방선거 이상으로 그 때에도 투표홍보를 상당히 많이 했지만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면서 ''''아무래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데다, 관심이 거기에 집중돼 그 여파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으로 집나간 당신의 (정치)이성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딱히 틀리진 않았음을 암시한다.

△누구는 군대에서 죽고, 누구는 병역특혜를 받다? = 한국이 4강에 오른 환희를 채 잊지 못한 채 터키와 3, 4위 전이 열릴 예정이던 2002년 6월 29일. 이날 오전 10시 25분께 북한경비정이 그동안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남북한 해군이 교전을 벌여 한국군만 해도 6명이 숨졌다.

물론 서해교전은 교전 즉시 각종 신문과 방송에 주요뉴스로 나왔다. 하지만 그 후 ''''월드컵 전사''''들이 받은 병역특혜와 포상금(3억원) 등에 비한다면 전사자들(원영하 소령 5600만원, 이외 3000만원 내외)의 보상은 극히 적어 보는 이들에게 씁쓸함을 안겨줬다.

또한 이들에 대한 사후 대책도 월드컵 4강 영광 아래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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