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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17일 집단지도체제와 대선 1년 6개월 전 대선후보 선출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당헌을 통과시켰다.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로서 3기 체제를 맞게 됐다.
지난해 3월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구원투수 성격의 당 대표로 선출된 뒤 총선에서 제1야당 위치를 지켜낸 뒤 7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대표로 재선출됐다.
이 때까지를 박근혜 대표 체제 1기로 본다면, 지난해 7월부터 이날 당원 대표자 대회까지를 2기로 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이 기간동안 4월, 10월 두 번의 재보궐선거를 치러냈고, 한나라당 지지율을 40%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두 번의 재보궐선거, 지지율 40%로 끌어올려 집권여당과 정부의 거듭된 실정에 따른 반사효과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표는 2기 대표로서 재임기간 동안 한나라당에 덧씌워져 있던 부패, 수구, 반통일, 반개혁의 이미지를 일정정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기업체로부터의 후원금을 일체 받지 않는 대신 당의 재정을 당비와 국고보조금에만 의존하게 한 점,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라도 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는 순간 당원권을 정지하도록 한 것, 그리고 1000억원대의 당 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한 점 등이 부패이미지 불식에 기여한 조치들이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 국가보안법 대폭 개정, 인도적 대북 지원에 협조하기로 한 점 등은 반통일, 수구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 기여했다.
박 대표는 또 취임 초기의 약속대로 크로스 보팅의 확대와 의원 줄세우기 근절, 원내정당화 실현 등을 통해 당내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리고 17일 집단지도체제와 대선후보 선출 규정을 확정한 당원대표자 대회를 기점으로 박근혜 대표는 2006년 7월 전당대회 때까지 한나라당 대표로서 3기체제를 맞게 됐다.
부패 수구,반통일 이미지 불식에 일정정도 성공 3기 체제를 맞는 박근혜 대표는 이제 조용하고 안정적인 당의 관리자 위치에서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실질적인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수도권과 호남, 청년층으로 당의 외연을 확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40%대의 정당지지율을 지켜야 하는 부담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갖게 됐다.
3기 체제를 맞는 박 대표에게 우선 차기 당직 인선과 관련한 작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자신의 측근으로 통해온 김무성 사무총장과 유승민 전 대표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이 모두 당원대표자 대회를 계기로 당직에서 물러나면서 빈 자리를 소장파와 비주류, 수도권 의원들로 골고루 채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른바 탕평인사이다.
소장파 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박형준, 정병국 의원 등을 주요당직에 기용하기 위해 개별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강원도 출신의 최연희, 이계진 의원, 경기도 출신 전재희, 고흥길, 유정복, 서울 출신 권영세, 대구 출신 주호영, 부산 출신 서병수, 유기준, 경남 출신 김학송, 권경석, 비례대표 나경원 의원 등이 차기 주요 당직자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외연확대를 위해 측근 중심의 당운영에서 벗어나고 스킨십 부재 비판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측근 중심 당 운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 ''주변에 사람이 없고, 가까운 사람들과만 가깝다''는 비판을 넘어서 폭넓게 사람을 끌어안는 광폭정치의 시발인 셈이다.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욱일승천(旭日昇天)중인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대권주자 경쟁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주 초쯤 주요 당직자 인선내용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