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으로 성과급 잠정 합의에 성공하며 총파업을 일단 피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진통이 상당했던 교섭 과정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사업을 이끄는 양대 축인 반도체(DS) 부문과 가전·모바일 등 비반도체(DX) 부문 사이의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과, 영업이익 일부를 떼어내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은 풀어야 할 대표적인 숙제로 꼽힌다.
DX 흑자 사업부 성과급이 DS 적자 사업부보다 적어…노노갈등 확산
노노 갈등의 핵심은 노사가 지난 20일 도출한 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그대로 따를 경우 DS 부문과 DX 부문의 성과급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두 부문 모두 연봉의 50%로 상한을 둔 기존 성과급 제도는 유지되지만, 초호황을 맞은 DS 부문에는 상한이 없는 '특별경영성과급'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잠정 합의 내용을 토대로 연봉이 1억 원인 직원을 기준 삼아 추산했을 때 DS 부문의 예상 연간 영업이익 300조 원이 현실화 되면, 해당 부문 소속 메모리 사업부의 직원들은 올해 6억 원대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같은 부문 비메모리 적자 사업부 역시 2억 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측은 성과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적자 사업부에 일정 수준의 지급률 제한을 두기로 했지만, 이 제한은 노조의 요구에 따라 내년으로 유예돼 올해 특히나 지급액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DX 부문은 흑자 사업부여도 성과급 최대치가 5천만 원(연봉의 50%)이어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는 기류다. 좋은 실적을 내 최대 성과급을 받아도, DS 부문 적자 사업부의 약 4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이는 사측도 우려했던 지점이지만, DS 부문에 지지 기반을 두고 적자 사업부까지 아우르려는 초기업노조와의 타협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잠정 합의안에는 DX 부문에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불만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DX 부문 직원들의 문제 제기는 앞선 교섭 과정에서부터 이뤄졌다.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DS 부문 중심의 성과급 요구를 하면서 DX 부문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성과급 공동 투쟁을 하던 삼성전자노조동행(동행노조)은 교섭단에서 이탈했다. 초기업노조 조합원의 과반은 DS부문, 동행노조 조합원의 과반은 DX부문 소속이다. 일부 DX 부문 직원들은 이번 노사 잠정 합의 전 초기업노조 지도부를 겨냥해 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법적 대응까지 나선 상태다.
노사 잠정 합의안이 공개된 후 DX 부문을 중심으로 '소외론'이 더욱 확산하는 가운데 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은 21일 '잠점합의안 투표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공지문을 통해 "이번 합의안이 조합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현장 조직을 넓히고, 단단히 다지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 연합뉴스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S부문장은 같은 날 사내 게시판에 올린 '다시 한 마음으로 함께 갑시다'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갈등의 시간을 뒤로하고,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 나아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사 모두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는 잠정합의안 조합원 찬반 투표를 앞두고 내부 화합을 당부한 셈이다.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과반이 참여하고, 참여 조합원 과반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부결 시에는 다시 한 번 파업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 과반 노조인 초기업 노조 조합원 대부분이 DS부문 소속인 만큼 가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DX 부문 직원들의 표심이 변수로 꼽힌다.
주주단체도 잠정 합의안 반발…법적 대응 예고
영업이익에 연동된 성과급 배분 방식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 역시 노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주주단체인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위법으로 규정하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주주운동본부는 전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세전 영업이익에서 성과급을 떼는 것은 위법하다며 주주총회 결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법률상 무효라고 주장했다. 상법 상 세후 이익이 분배의 대상이며, 성과급 산정은 주주총회를 거쳐 산정돼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이들은 잠정 합의안을 비준·집행하기 위한 이사회 결의가 상정될 경우 무효 확인 소송을 내고, 이사회를 상대로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21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 총결집 집회에서 삼성전자 주주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한편 삼성전자는 양대노총의 '성과배분론'에도 직면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삼성이 거둔 세계적 성과는 위험과 열악함을 온몸으로 버텨낸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과 지역사회 인프라가 결합한 '사회적 총노동'의 결실"이라며 "성과 독식은 있을 수 없으며, 이번 타결의 성과가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과 지역사회 환원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성과의 과실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납품단가 구조 개선, 기술·생산 이익 공유 등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