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평생 지어온 '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최규화 기자의 신간 '유희 언니'(빨간소금)는 이름보다 '밥'으로 기억되는 한 인물, 노점상 유희의 삶을 따라가며 한 개인이 사회에 남긴 선한 영향력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 책은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선택을 기록한다. 1959년생 유희는 특별한 직함도, 제도적 권력도 없는 평범한 노점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부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곁으로 찾아가 밥을 지으며 자신의 삶을 내놓았다.
그의 삶을 바꾼 계기는 1995년 노점상 열사들의 죽음이었다. 이후 유희는 농성장과 영안실에 솥을 걸고 밤새 밥을 지었다. 누군가는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는 버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힘을 '밥'으로 채워준 것이다.
책은 이 단순한 행위를 '연대의 방식'으로 확장해 보여준다. 유희는 자신의 차에 밥을 싣고 전국을 돌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지역 주민 등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갔다. 2017년에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밥묵차'를 마련해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지속성에 있다. "이길 때까지 밥을 한다"는 그의 말처럼, 유희는 투쟁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밥 한 끼를 건네는 행위가 결국 사람을 버티게 하고, 공동체를 이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냈다.
책에는 유희를 기억하는 15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누군가에게 그는 공권력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철 같은 동지'였고, 누군가에게는 웃음과 노래로 현장을 지탱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밥을 짓던 사람'이라는 공통된 이미지가 놓여 있다.
특히 저자는 유희의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의 본질을 조명한다. 영향력은 거대한 힘이나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유희의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건네는 행위였다.
췌장암 투병 중에도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었던 유희는 202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그의 묘비에는 "밥은 하늘이다"라는 문장이 남았다.
'유희 언니'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가. 책은 거창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지어온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많은 삶을 이어왔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최규화 지음 | 빨간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