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배' 결승 최종국 대국. 최정 9단(사진 왼쪽) vs 김은지 9단. 대국 중 최정이 이마를 만지며 고심하고 있다. 동규기자대한민국 여자 바둑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18세 김은지 9단이 사실상 '바둑 여제(女帝)'를 가리는 올해 마지막 대국(하림배 결승 최종국)에서 최정에게 완승하며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날 변방인 여자 바둑의 대국에 이례적으로 관심이 집중됐다. 두 기사의 올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바둑계 안팎에서는 '김은지로의 세대교체', '아직은 최정(29) 시대' 등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김은지는 18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30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최정 9단에 맞서 17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그는 종합전적 2-1로 우승컵을 안았다.
김은지(흑)는 초반 연구해온 포석으로 원하는 흐름으로 판을 이끌었다. 대국 내내 실수는 없었다. 승부사 답게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중반 이후 비세(危勢)를 느낀 최정(백)이 하변 깊숙이 침투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김은지는 백의 약점을 공략하며 대마를 양분했다.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끝까지 버텨보던 최정은 양분된 대마가 온전히 생환하기 어려워지자 돌을 던졌다.
김은지의 예우 "최정은 존경하는 사부님, 아직 많이 배우고 싶다"
'하림배' 우승 후 활짝 웃으며 인터뷰 중인 김은지 9단. 한국기원 제공128개월 연속 여자랭킹 1위 보유자, 이 대회 6차례 우승 등 현존 '최강 여제' 최정은 이 대회 첫 우승에 도전한 김은지에게 완패했다. 중반과 끝내기에 강한 예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올해 여자 최고기사 결정전과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 타이틀 매치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던 두 기사의 세 번째 결승전은 김은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대국 후 김은지는 "초반 좋다고 생각했던 포석으로 진행이 돼 잘 풀렸다. 집이 많아 유리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최정과 처음 결승전을 할 때 보다 실력이 늘었고, 운도 따라 줘 이길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최정에 대해서는 "항상 존경하는 사부님이다. 아직까지는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 많이 배우고 싶다"고 대 선배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포부에 대한 질문에는 "여자대회 뿐 아니라 통합기전에서도 성적을 내고 싶다"며 한국 여자 바둑 평정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최대한 버텨서…"라고 밝힌 최정, 버티지 못했다
'하림배' 결승 최종국에서 물을 마시며 고심 중인 최정 9단. 동규기자김은지는 이날 대국으로 최정과의 상대 전적(11승 21패) 격차를 좁혔다. 올해 전적만 따지면 6승 5패로 앞섰다. 타이틀 매치 전적은 여전히 3승 5패로 열세다. 다만 올해 결승 매치는 2승 1패로 앞선다. 또 이달에 최정을 제치고 한국 여자 프로기사 랭킹 1위에 등극했다.
한국 바둑 여자 상금랭킹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누적 상금에서 김은지가 최정을 앞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거침없는 상승세다. 이번 달 최정과의 맞대결에서 4승 2패로 앞선 것을 감안할 때 내년 1월 랭킹에서도 여자 1위를 수성할 전망이다.
그는 올해 열린 국내·외 여자기전 8개 가운데 6개 대회에 출전했다. 이중 오청원배, 난설헌배, 여자기성전, 하림배 등 4개 기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녀 통합 기전인 영재최강전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5개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통산 우승 횟수도 12회로 늘렸다. 김은지가 한국 여자 바둑 1인자임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가 됐다.
바둑계의 한 인사는 "이창호의 시대가 저물고 이세돌·신진서가 왔듯, 여자 바둑에서는 최고 전성기에 돌입한 김은지의 시대가 왔다. 그의 시대가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귀띔했다.
최정은 지난 5월 바둑의 세대교체와 관련해 "언젠가는 김은지가 여자 바둑계를 이끌어가겠지만, 나도 최대한 버텨서 다른 후배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전한 바 있다. 그는 버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