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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꼬리표 버리고 시치미 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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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론/칼럼

    [칼럼]꼬리표 버리고 시치미 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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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씨의 '통일교 청탁 의혹' 당사자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김건희 씨의 '통일교 청탁 의혹' 당사자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1990년대 후반 기자 초년병 시절 검찰을 출입하면서 썼던 기사에 빈번히 사용한 단어가 있다. '뭉칫돈'이다.
     
    7,80년대 '자백은 증거의 여왕'이니 '조지면 다 분다'는 중세적 수사 관행을 뒤로 하고 수사 기관들이 물증 찾기에 힘을 실을 시기였다.
     
    특히 정치인과 고위 관료, 재벌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에는 '뭉칫돈'만큼 강력한 물증이 없었다.
     
    사회적 거악일소(巨惡一掃)를 입에 달고 살던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는 뭉칫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계좌추적에 밤을 새우곤 했다.
     
    사업가 A가 고위 관료 Z에게 1천만원을 직통으로 입금해 주었다면 뇌물죄 수사가 얼마나 쉬울까만은 현실은 두 사람 사이에 B부터 Y까지 무수한 중간 단계들이 등장한다.
     
    중간 단계를 거치며 돈이 쪼개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고 Z에 이르기 전에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계좌 추적 전에 압수한 수년 치 장부와 전표와 영수증, 메모 등과 일일이 맞춰 보며 미심쩍은 대목에서는 사건 관계인들을 불러 돈의 출처와 성격 등에 대해 밤샘조사를 밥먹듯이 했다.
     
    뭉칫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일단 전모를 파악하기만 하면 정권 실세도 중진 정치인도, 재벌 회장님도 잡아 넣을 수 있었던만큼 검찰은 뭉칫돈의 '꼬리표'를 찾는데 온힘을 기울여왔다.
     
    이런 검찰이 최근 뭉칫돈의 꼬리표를 잃어벼렸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건진법사' 전성배 씨 비리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남부지검이 전씨의 집에서 압수했던 관봉권 5천만원의 스티커와 띠지를 몽땅 분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직원이 뭉칫돈을 세기 위해 스티커와 띠지를 제거한 뒤 잃어 버렸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관봉권(官封券)은 '관청이 봉인해 둔 돈'으로, 한국은행이 5만원권 신권을 100장씩 띠지로 묶고 이런 돈다발 10개를 합쳐 비닐 포장한 뒤 스티커를 붙여 금융기관에 공급하는 뭉칫돈이다.
     
    관봉권의 스티커와 띠지에는 검수 날짜와 담당자, 취급 기관 등 뭉칫돈의 흐름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정보가 담겨 있다.
     
    뭉칫돈의 꼬리표 찾기에 진심인 검찰이 이를 잃어버렸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명을 누가 믿을까?
     
    관봉권은 한국은행이 검수를 마쳐 봉인한 것이라 사실 세어볼 필요조차 없다.
    검찰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뭉칫돈 그 자체 보다 꼬리표다.
     
    그런 꼬리표를 금융범죄 수사를 주특기로 하는 서울남부지검이 단순 분실했다는 검찰 설명은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공교롭게도 건진법사와 김건희 씨 관련 인물들의 분실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건진법사 전 씨는 김 씨에게 줄 명품 목걸이 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또 김 씨에게 명품 시계를 사 준 사업가 서 모씨 역시 최근 휴대전화를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바다에 빠트려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관봉권 스티커를 분식하고도 해당 직원을 징계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관봉권 스티커 분실 사건은 내부 감찰 보다 수사가 더 적절하다.
    마침 대검찰청이 서울 남부지검 수사관 등을 입건해 정식 수사에 나선것은 당연하다.
     
    '검찰이 설마 일부러 그랬겠어?'하는 일말의 동정론도 일지않을 정도로 검찰은 신뢰를 잃었다.
     
    그동안 검찰은 건진법사와 김 씨를 둘러싼 수사에 평소 검찰답지 않게 허술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특검이 발견한 건진법사 '비밀의 방'도 그냥 흘렸고, 김 씨의 주가 조작 의혹 관련 녹취록도 특검 수사 와서야 본격 발굴되고 있다.
     
    검찰이 건진법사에 대해 두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모두 기각하기도 했다.
     
    관봉권 스티커 분실 사건 수사가 당연하지만 그 주체가  같은 검찰인데다 윤석열 정부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을 받는 대검 감찰부 라인이어서 과연 윗선까지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뒤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을 경찰 등 다른 수사 주체에 맡기는 편이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오히려 높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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