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납북자가족모임이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다른 탈북민 단체 등은 여전히 강행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불법적인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가운데 일부 단체들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라는 입장으로 맞서는 상황이어서 향후 양측 간 긴장관계가 고조될 전망이다.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北 주민도 알권리"
납북자가족모임 최성룡 대표는 최근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직접 최 대표에 전화해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설득해서다.
최 대표는 지난 24일 경기 동두천시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 기념탑에서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참배한 뒤 "전날 정부 고위급으로부터 위로 차원의 연락을 받았다"며 "피해 가족들과 논의한 후 대북전단 중단 여부를 결정해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24일 오전 경기 동두천시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 기념탑에서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정 후보자도 일부 언론에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차원에서 협조할 필요가 있다"며 "장관으로 임명이 되면 대북전단 관련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고수하는 단체들도 있다. 탈북민단체 큰샘 박정오 대표는 "대북전단은 개인의 자유"라며 "(전단을) 기회 되면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있는 우리 주민들도 같은 한민족인데, 그 사람들도 알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이민복 대표도 "자유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보장 받아야 하는 가치"라며 "풍향 조건 등이 맞으면 (전단 살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민간인 활동에 대한 것을 정부가 다 규제하는가. 독재 국가나 그렇게 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대북전단을 합법적으로 살포하기 위해서는) 가스를 취급해야 해서 가스 안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며 "(나는) 국가 인증된 차량을 타고 응급 장치인 소화기도 갖췄다"고 전했다. 고압가스관리법에 따르면 고압가스 운반차량은 지자체의 등록이 필요한데 이 대표 측은 이런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를 언론에 공개하는 일이야말로 불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갈등과 긴장감을 형성할 필요 없이, 조용히 움직여 전단을 살포하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주장이었다.
아직 이들 단체들이 언제, 어디서 대북 전단을 살포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장마 기간인 데다, 풍향과 풍속, 우천 등 고려해야 할 기상 요건이 맞아야만 전단 살포가 가능해서다.
文정부 때 대북전단 갈등…재판 넘겼지만 '위헌' 결정
대북전단을 드론에 매달아 공중에 띄우고 있다. 파주=황진환 기자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은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이미 불거진 바 있다. 당시에도 '한반도 평화'를 이유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려 했지만, 일부 단체들은 전단 살포를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3월 30일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했다. 해당 법안은 '대북전단금지법'이라고 불리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시각 매개물 게시, 전단 등 살포를 하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그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이후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2021년 5월 박 대표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박 대표를 불러 약 6시간 동안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2개월 뒤 경찰은 박 대표를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이 북한에 도달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미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2023년 9월 26일 대북전단금지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7명은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이 시행된 지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이후 검찰은 박 대표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당시 검찰은 "헌재가 대북전단 살포 처벌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함에 따라 법원에 공소취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李정부 대책회의…실정법 적용 등 논의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는 이 대통령의 대북전단 엄정 대응 지시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를 효과적으로 예방·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정부종합청사에서 대북전단 살포 예방 및 처벌 대책 등을 놓고 관계부처 회의를 진행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14일 전단 살포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강조한 지 이틀 만에 열린 회의로, 통일부 강종석 인권인도실장을 포함해 총리실과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실무급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위헌 결정이 난 남북관계발전법 외에 항공안전법, 재난안전법, 고압가스관리법 등 다른 실정법을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토부는 2㎏ 이상의 물건을 매달아 비행하는 기구는 무인자유기구로 보고 행공안전법 시행규칙 규제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런 규칙을 내세워 대북전단 살포에 이용되는 풍선을 무인자유기구로 판단해 제지하거나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의 수사 역시 대분전단 살포에 너그럽지 않은 분위기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 13일 인천 강화도에서 대북전단이 담긴 대형 풍선을 북한 방향으로 날린 40대 남성을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수사2계도 지난 24일 지난해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한 60대 탈북민을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 23일 최근 약 1년 동안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관련해 72건을 수사해 13건(4명)을 송치하고, 23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