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남양주=류영주 기자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프레스킷이 27일 공개됐다. 16쪽 분량의 글에는 '소년공 출신' 이 후보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 인권변호사를 거쳐 대선 후보로 성장하는 과정이 담겼다.
이 후보는 1964년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리에서 5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안동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76년 2월 당시 빈민촌이던 경기도 성남 상대원 시장 꼭대기 월셋집으로 이사해 단칸방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13살부터 6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하다 보니 동네 형 이름을 빌렸고, 하루 12시간씩 3개월을 꼬박 일했지만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는 지문과 후각을 상당 부분 잃고, 100개가 넘는 흉터와 '굽은 왼팔' 장애를 얻었다. 스키장갑 등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한 이 후보는 프레스기에 왼팔 손목 관절을 눌렸고, 1986년 산업재해로 인한 지채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 면제됐다.
이 후보는 열악한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하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와 대입 학력고사 준비에 몰두했다. "죽기, 살기로 하자"는 각오로 낮에는 공장 일을 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니며 그야말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실천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그가 대학시절 목격한 군부독재의 학생 탄압은 이 후보의 사회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 들어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95년 이 후보는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인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게 됐다. 1년여간 진행한 성남시 공공의료설립운동 결과 2004년 시 의회에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상정됐지만, 당시 새누리당 주도로 안건이 부결되면서 현실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낙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등 정치 입문은 녹록치 않았지만, 2010년 51.2%의 득표율로 민선5기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성남시장 재임 시절 3대(청년배당∙교복∙산후조리) 무상복지 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특유의 추진력과 돌파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오랜 꿈이던 공공의료시설 확충도 추진해 현재 성남시립의료원이 탄생했다.
2018년 6월에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으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경기도지사 시절 자신의 대표 브랜드인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발행' 등을 추진하며 경기도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민주당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도약했다.
이 같이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 후보의 정치인생도 수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2%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 윤 정부 시절 '대장동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등으로 다섯 번 기소되면서 수차례 재판에 출석했다.
지난해 1월 부산에서는 목을 칼에 찔려 부산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었지만, 이 후보 가족들의 의사 등에 따라 후송된 서울대병원에서 2시간 가량 긴급 수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