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선거 벽보가 훼손된 모습.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제공6·3 대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선거운동원을 폭행하거나 벽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극단적 형태로 표출된 현상이라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온다.
지난 19일 오후 12시 30분쯤 부산 기장군 기장읍의 한 상가 앞. 선거 유세를 벌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거운동원들 앞으로 50대 남성 A씨가 다가갔다.
A씨는 선거운동원들을 향해 "시끄럽다. 다른 데 가서 하라"라며 시비를 걸다가, 급기야 "내 말을 듣지 않는 거냐"며 운동원 2명을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가했다. 선거운동원들은 타박상 등 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산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수모를 당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 사하구 다대동에서 60대 남성이 "선거운동 소리가 시끄럽다"며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선거 유세를 하던 관계자를 폭행해 경찰에 체포됐다. 16일 북구 신만덕교차로에서는 70대 남성이 더불어민주당 선거운동원 2명을 밀치고 경찰관까지 폭행해 검거됐다.
선거 벽보와 현수막도 후보나 정당을 불문하고 곳곳에서 훼손되고 있다. 지난 12일 서구 충무동 사거리에서 민주당 현수막이 훼손됐고, 지난 16일 동래구 낙민동에서는 이재명 후보 선거 벽보가 라이터로 훼손됐다. 같은 날 사상구 학장동에서도 선거 벽보가 찢겨나갔으며, 지난 19일에는 해운대구 중동에 부착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현수막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가 20일까지 파악한 선거 벽보·현수막 훼손 사례는 17건에 달한다. 동래구가 4건으로 가장 많았고, 해운대구와 기장군이 각 3건, 북구와 사상구가 각 2건, 부산진구·강서구·남구가 각 1건이었다. 선관위는 현재까지 파악한 훼손 사례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2일 부산 서구의 한 거리에 내걸린 선거 현수막이 훼손됐다. 부산경찰청 제공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한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정치적 분열로 인한 극단화가 일상에서의 감정 표출로 번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가 가져온 결과다. 이제는 상대 진영의 선거 홍보물조차 참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제거할 정도로 증오가 심해졌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며 "이재명 후보 피습 사건이나 서부지법 폭동 사례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도 모두 같은 흐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사례는 폭력적인 행동인데도 정당화되고 영웅시됐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이 대결을 자극하고 방조해 온 게 축적돼 온 결과"라면서 "각 개인의 생각이나 신념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만큼, 질서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행동에 대한 대가를 명확히 치르도록 '일벌백계'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남일재 교수는 "선거철에 일부 시민들은 경기가 나빠 삶이 힘든 문제 등을 선거와 연동해 풀어내려고 한다. 특히 심리적으로 약한 사람들,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기 어려운 이들이 선거 현수막 등에 화를 표출하고 있다"며 "가장 눈에 잘 띄는 정치적 대상이며 분노를 즉각적이고 손쉽게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부산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인 만큼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듯한 현상에 대한 반감이 존재할 거고, 반대로 보수 진영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도 누적돼 있으니 양측 모두에게서 감정이 과열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