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왼쪽 두 번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지역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왼쪽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기재부 제공정부가 지방 부동산 시장을 내수 회복 지연의 한 가지 원인으로 꼽고 '지역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내놨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소 회의적이다.
부동산 시장 위축이 지역경기 회복을 저해한다기 보다는, 반대로 인구 감소 등 지역 경제 위축에 따른 자산 상승 기대감이 없는 게 현재 지방 부동산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건설 부양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리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일선 건설 노동자가 외국인으로 교체된 지금은, 건설 투자금이 내수 소비나 예금을 통해 회수되는 데 한계가 뚜렷해진 구조적 변화가 있어서다.
정부는 1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민생경제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지역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회의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 당국자들을 비롯해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과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장 등 관계 기관·협회 관계자들도 다수 참석해 애로사항과 의견을 공유했다.
최 대행은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특히 건설부문은 그간 지방 중심의 수주 감소 영향으로 투자와 고용 부진이 장기화되고 준공 후 미분양이 느는 등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지역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산·대전·안산 철도 지하화 및 용인 반도체 산단 신속 조성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70% 상반기 조기 집행 및 LH의 준공후(악성) 미분양 아파트 3천 호 매입 등 유동성 지원 △공사비 현실화와 정비 활성화 및 사업 여건 개선을 통한 건설투자 유도를 세 축으로 한 보완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줄곧 우리 경제 발목을 잡고 있는 내수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지역 소멸 우려가 맞물린 지역 경제 위축은 지방 부동산 위기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방 부동산 위기 원인은 지역 경제 위축, 부동산 대책으로 경제 못 살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악성 미분양 공공 매입이나 10년 민간매입임대등록 사업 허용, 기업구조조정(CR) 리츠 출시 등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부분은 있다"면서도 현재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는 "단순히 미분양 과잉 현상을 떠나 수요 부재의 문제, 즉 인구 감소와 고령화, 공가 등 장기적으로 고민해 해결할 내용이 많다"고 진단했다.
실제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방 미분양 주택은 2022년 5만 7천 호로 급등한 이후 2023년 5만 2천 호, 2024년 5만 3천 호로 5만 호 수준을 유지 중이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2022년 6천 채, 2023년 8천 채, 2024년 1만 7천 채 등 지속 증가세다.
함 랩장은 "이미 지방 준공후 미분양주택과 인구 소멸지역에 대한 1세대 2주택 특례 세제혜택을 시행하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라며 "지방 주택을 구입해도 자산가치로서의 안전성이 있다는 면을 수요자에게 각인시킬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도세 5년 감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취득세 완화 등의 세제 감면이나 인프라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나온 산단 개발의 경우 "산단이 조성된 뒤 어떤 기업이 유치돼 지역 내 자족 기능을 높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고령화에 대비한 충분한 의료 복지서비스 등 생활 인프라를 갖춰야 정주·생활인구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 지방 부동산 침체와 지역 경제 위축은 단순히 부동산 대책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범국가적 차원의 종합 대책으로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함 랩장은 "장기적으로 국가적 균형발전도 정책 안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19일 발표한 '지역 건설경기 보완 방안' 中 발췌. 기획재정부 제공"과거와 다른 부동산 경기 부양 효과…한계 인정하고 구조조정 용인해야"
과거처럼 경제성장률 전망치만을 끌어와 또 숫자만 올리려는 기재부식 접근이 아쉽다는 시선도 있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1.6~1.7%로 하향 조정한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을 들어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건설대책을 발표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몇십 년 전 옛날하고 지금 건설투자가 미치는 실질적인 경제 효과가 바뀌었다"는 점을 짚었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건설투자를 할 경우 1차적으론 건설사 법인으로 돈이 들어가고, 그 돈이 하도급 업체에 지급돼 다시 현장 노동자들에게 흘러가는 구조다. 과거 현장 노동자가 한국인일 땐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으로 다시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해 돈이 돌고 경제가 순환했지만, 지금은 최종 노동자가 외국인으로 본국에 송금하거나 안 쓰고 모아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아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성장 효과가 과거만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기를 살려야 건설업황도 회복되고,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용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원은 "어떤 산업이든지 등락이 있어 한번 업황이 쇠퇴하거나 했을 때 인위적으로 다시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건설업도 마찬가지"라며 "건설업이 부흥하려면 (인위적 부양보다는) 결국 실질적인 생산 효과를 내는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또 "SOC 조기 집행의 경우도 결국은 토목공사 경험이 있는 업체 위주로 수혜를 볼 뿐, 일단 건설업체 수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긴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부정책 중 LH의 미분양 주택 매입은 "원론적으로 공공의 미분양 매입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면서도 "제한적 물량, 저렴한 매입 가격을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실행하는 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봤다. 시장상황이 바뀌었을 때 가치가 달라질 우량매물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해 향후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한다면 공공매입의 명분이 있고, 결국은 민간부문인 CR리츠도 유사한 맥락으로 집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공공 미분양 매입 신중하게"…건설사 줄도산 막을 책임준공 완화안 내달 발표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지방 미분양은 대출이 안 돼 적체되는 게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확신이 없고 매입했다가 오히려 (시세차익 없이) 세금 부담만 커질 우려에 매수세가 유입이 안 되는 것"이라며 "세제 혜택이 정말 크다면 어느 정도 수요 진작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지방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는 사실상 무리"라고 평했다.
양 수석은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애초 지방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지어진 배경에 정부와 지자체의 무분별한 토지 공급 책임을 짚고, "앞으로의 공급 현황을 감안해 토지공급도 순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에서의 건설사 줄도산 위기 부분에 착안한다면 (시행업계 개편과 함께) 책임준공 부담을 완화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택 공급 등을 담당하는 부동산 PF사업에서 시행사는 그간 1~5%의 자본 투자로도 대개 '네임드(named) 대형건설사'인 시공사의 책임준공(지급보증)으로 금융권 대출을 끌어와 소위 '완판'에만 성공하면 100배 넘는 수익을 거둬 왔다. 이는 부동산 경기 침체 시 금융권과 건설사로 이어지는 연쇄 부도 우려에 경제 뇌관이 되곤 했다.
관련해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30%까지 끌어올리고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유도하는 내용의 '부동산 PF 제도 개선방안'을 지난해 11월 발표했지만, 책임준공 부담 완화 방안은 미뤄진 바 있다.
박상우 장관은 전날 민생경제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PF 사업 추진 시 책임준공 도과 기간에 따라 채무인수 비율을 차등화하는 등 책임준공 개선방안을 3월 중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