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잇따라 '관세폭탄' 부과 계획을 밝히는 등 보호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중국이 그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이들 국가와의 관계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뮌헨안보회의서 미국 작심 비판…EU 지도부는 중국에 러브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은 14일(현지시간) 개막한 뮌헨안보회의(MSC) 참석을 위해 독일을 찾았다. 세계 최대 규모 국제 외교안보회의인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통해 왕 부장은 EU 회원국 등 주요국 대표들을 만나 관계개선을 위한 외교전을 펴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중국을 억압하고 봉쇄하려 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며 미국의 일방적인 괴롭힘 행위에 단호히 맞서겠다"면서 "중국의 국가 주권, 국가 존엄, 그리고 발전의 합법적 권리를 단호히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율 관세' 부과 등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견제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일부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맞대응했다.
왕 부장은 이날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첫 회동을 했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이 자리에서 "EU는 무역, 경제 현안, 기후변화와 같은 선택된 분야에서 중국과 대화를 이어가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서, EU내 대표적인 대중 매파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지난달 21일 다보스포럼에서 "중국과 관계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 강경 입장을 취했던 EU 지도부가 중국에 먼저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인 EU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방위비 지출 확대를 강요하는 등 보호주의와 일방주의 노선을 취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 참석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마을에 새로 부임한 보안관'으로 비유하며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 뒤 언론의 자유, 이민자, 방위비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EU 국가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앙숙에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중국-영국…트럼프 효과?
연합뉴스왕 부장은 뮌헨안보회의 참석에 앞서 영국을 공식 방문해 13일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진행했다. 양국간 전략적 대화가 재개된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7년 만이며, 중국 외교 사령탑이 영국을 찾은 것도 10년 만이다.
이 자리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잠시 들르기도 했는데 그는 "양국은 예측 가능하고 실용적인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AP 통신은 영국이 이번 회담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국관계는 지난 2017년 홍콩 민주화 시위 강경 진압, 2022년 영국 공공기관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 의혹 등으로 수년간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지난해 7월 스타머 총리 집권 이후 관계개선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동맹에 대해서도 무차별 관세폭탄을 예고하고 나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간 관계개선 흐름이 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미 대선 이후인 지난해 11월 18일에는 6년 8개월 만에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영국 앤드루 왕자가 중국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는 한 중국인 사업가에게 포섭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보수당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며 양국 관계 개선 흐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스타머 정부는 이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트럼프 관세 위협에 불만 쌓인 미국 동맹국에 '매력 공세'
연합뉴스16일 뮌헨안보회의가 폐막하면 왕 부장은 미국 뉴욕으로 날라가 18일 열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국 자격으로 고위급회의를 주최한다. 또, 오는 20~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도 참석한다.
특히,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G20 외교장관회의에 불참하기로 하면서 이번 회의는 중국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루비오 장관은 주최국 남아공의 정책과 이번 회의 주제 등을 불참 이유로 들었다. 남아공은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 핵심 회원국이다.
영국 방문에 이은 뮌헨안보회의·안보리 고위급회의·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통해 왕 부장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외교·안보 수장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를 서방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중국 외교의 '매력 공세'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 파트너들을 향해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영토 욕심을 드러내면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평판을 제고할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닐 토머스 중국정치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외교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을 시진핑 국가주석은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글로벌 경제와 국제질서의 수호자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에 따라 중국을 대하는 각국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동안 중국에 비판적이었던 영국 공영방송 BBC가 최근 중국에 우호적인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는 점이 거론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3일 보도에서 BBC의 이같은 변화가 트럼프 대통령 미국 국제개발기구(USAID) 폐쇄 명령과 관련됐다고 분석했다. USAID 폐쇄로 BBC 산하 국제 원조 기구인 'BBC 미디어액션'에 대한 지원금이 끊기자 BBC의 보도태도가 바뀌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