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백모(37)씨. 연합뉴스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탄원해왔던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7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백모(37)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년간 위치 추적 장치 부착도 명령했으며, 유족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접근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내용이 포함된 준수사항도 부과했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내용, 방법의 잔혹성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의 정신 상태를 감안하더라도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고 책임이 엄중하다"며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해 자유를 박탈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을 중국 스파이로 의심해, 피고인에게 별다른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직접 중국 스파이를 처단한다는 명목 하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 의도를 가졌다"며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자신이 공격받는 이유조차 알지 못한채 극심한 공포 속에 사망해 더 이상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 유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생활하고 있는 바 피고인의 범행은 사실상 유족들로 하여금 이전에 행복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며 "피고인의 태도를 보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며 진정한 참회와 속죄를 구하고 있는지 재판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본도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남언호 변호사가 7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피의자 백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검찰은 "유족들이 입은 고통이 막대함에도 피고인이 중국 스파이를 처단했을 뿐이라며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 회복 절차도 밟지 않았다"며 백씨에게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피해자의 아내와 어머니는 "아니야"라고 연신 말하며 눈물을 훔치다가 결국 "어떻게 살아",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오열했다. 피해자의 또 다른 유족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침묵을 지키며 선고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유족 측 남언호 변호사는 "피고인은 여전히 재범 가능성이 농후하고 개선의 정이 전혀 없는 바, 사회에 복귀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고 무기징역이더라도 가석방이 있을 수 있는 상태"라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 선고가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선고 직후 취재진 앞에 선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부가 이따위 판결을 내린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유족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유감이 많다"고 분노했다.
이날 선고는 오후 2시 30분에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백씨가 '일신상의 사유'라며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 약 2시간 30분 가량 연기됐다. 결국 오후 5시쯤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백씨는 방청석을 주시한 후 선고가 시작되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땅바닥만 응시했다.
유족들의 오열에도 백씨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선고가 끝나자마자 무덤 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백씨는 지난해 7월 29일 오후 11시 22분께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장식용으로 허가받은 날 길이 약 75㎝, 전체 길이 약 102㎝의 장검을 이웃 주민인 40대 남성에게 수차례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백씨는 2023년 10월께부터 '중국 스파이가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졌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마주치던 피해자가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중국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