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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응원봉 찾아다닌 그 마음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 집회 참여자 다수 2030 여성
소수자 연대로 확산…"민주당은 성차별에 얼마나 목소리 냈나"
당 물밑에선 '젠더 연구'…여성위원회도 정치권 반영 의지
대선 앞두고 젠더 갈등 의식 여전…"남녀 병렬적으로 갈 것"

결의문 낭독하는 박찬대 원내대표. 연합뉴스결의문 낭독하는 박찬대 원내대표.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아이돌 가수 응원봉을 찾느라 동분서주했다. 탄핵 집회에서 이삼십 대 여성들이 주도한 응원봉 시위 문화에 부랴부랴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 촉구 결의문을 낭독하며 걸그룹 소녀시대 응원봉을 들었고,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상임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 가사를 읊조리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탄핵, 연이은 특검법 처리 시도까지 광장의 여론을 동력으로 움직였다. 2030 여성들은 탄핵 집회의 다수를 차지했고 민주당에도 높은 지지를 보냈다. 

이어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조기 대선까지 동력을 유지하려면 이들이 왜 광장에 나섰고 어떤 요구 사항이 있는지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민주당 일부 의원 사이에선 관련 분석과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광장의 주역인 여성들은 농민들의 트랙터가 막힌 남태령으로 달려가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함께하며 '약자 연대'를 만들어갔다. 

반면 최근 지지율 하락을 겪은 민주당은 중도 확장 전략 차원에서 "기업 주도 성장"이라는 답을 내놨다. 특히 성평등 의제와 관련해선 "젠더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인 가운데 민주당이 광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민주당이 성차별에 얼마나 목소리 냈나"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탄핵'이라고 쓰인 응원봉을 들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탄핵'이라고 쓰인 응원봉을 들고 있다. 박종민 기자
광장에 나온 2030 여성 중에는 소위 '개딸' 등 이재명 대표나 특정 정당의 열혈 지지자가 아닌 '무당층'도 많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한 윤석열 정부 내내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제1야당인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고도 토로했다.

주말마다 열렸던 탄핵 집회에 참여했던 20대 여성 A씨는 "그동안 정부·여당에서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낼 때마다 민주당이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충분히 내줬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이재명 대표는 이삼십 대 여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표로만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이 여성들을 민주 시민이 아닌 정치적 동원 도구로만 바라본다는 지적은 탄핵 집회 과정에서도 제기됐다. 

민주당 박구용 교육연수원장은 지난달 8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젊은 남성들의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집회 현장에)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발언했다가 '여성들은 남성들의 유인책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자 사과했다. 민주당 중앙당은 즉각 전국 17개 시·도당에 '언행 주의령'을 내렸고 박 교수에겐 경고 조치를 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성폭력 사건이나 여성 인권에 있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그동안 민주당이 신뢰를 얻지 못한 배경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칭하면서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 2차 가해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총선 공천에선 '이대생 성 상납' 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후보자가 논란이 되자 사과하면서도 금세 "친명(친이재명)계 후보자라 과하게 공격받는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총선 공약집에선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포함했다가 논란이 일자 "실무적 착오"라며 철회하기도 했다.

당 물밑에선 '젠더 연구'…여성위원회도 의지

다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집회를 사실상 주도한 이삼십 대 여성들을 목격한 이상,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7일과 14일 여의도 국회 앞 집회 인원 중 이삼십 대 여성은 약 30%에 달할 정도였다. 

이들은 처음엔 윤 대통령 탄핵과 체포를 주장하다가 이후엔 농민과 노동자, 장애인 등과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의제를 넓혀갔다.

민주당 내부에선 최근 전진숙 의원을 주축으로 남녀 의원 10여 명이 함께하는 젠더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 비공식 '스터디' 성격으로 전문가를 초청해 정기적인 간담회를 진행하는데, 첫 모임은 2030 여성들의 정치 참여 현상과 배경 등을 분석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모임에 참여하는 한 의원은 "아직 우리끼리 공부하고 이런저런 문제를 들여다보는 단계지만 논의가 숙성되면 공론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도 이번에 집회를 주도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수진 여성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요구한 내용은 민주당이 약자들과 동행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집회에 나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게끔 하는 게 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방식이 이삼십 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작게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선 정책 반영될까…"남녀 병렬적으로 갈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들과 인사나누고 있다. 황진환 기자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들과 인사나누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그러나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당내 움직임이 당 지도부 결정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이재명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민주당이 지지율을 역전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기업 중심의 성장'을 내세웠다.

그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정책이란 어떤 것을 더 우선할지 선택의 문제"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적 방향'에 대한 질문엔 "나중에 답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 내부적으론 성평등 정책과 관련해 여성들을 의식하면서도 지난 대선 때보다도 젠더 갈등이 심해져 여성을 위한 정책을 표방하기엔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2021년 대선 당시에도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2030 남성의 반발을 의식해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펨코)에 인사글을 올리고, 사회적 소수자 이슈를 많이 다뤄온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출연을 취소한 바 있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주당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아직도 존재하고 여성 권익이 더 향상돼야 한다는 가치와 노선을 갖고 있는 정당이지만 그런 문제를 다룰 때 2030 남성들에게 젠더 갈등으로 비화되니 어떻게 접근할지가 숙제"라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책이긴 하기 때문에 남녀 통합적으로 교집합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도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만 하면 남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구조가 돼서 성별을 특정 짓긴 어렵고, 남녀 병렬적인 구조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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