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장수경로당을 찾은 지역 어린이집 아동들이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유보통합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구현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저의 궁금증은 유보통합에 대한 학부모들의 정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학부모들은 유보통합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3세 직전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을 택하는 비율이 높은데요. 만약 학부모 대상 유보통합 홍보가 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일부러) 이동하는 유아가 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난달 13일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조직법 개정 이후, 유보통합 R&D 발전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나온 한 학부모의 발언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유보통합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알려줬다.
'12·3 내란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정책 동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집권 초부터 가장 힘을 실어 온 교육개혁이 유보통합이었음을 고려하면 당사자들의 인지도는 아직도 낮은 편이다.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유보통합'은 쉽게 말해, 어린이집(0~5세, 보건복지부)과 유치원(3~5세, 교육부)으로 이원화된 0~5세 보육·교육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정책이다. 앞서 김영삼 정부 당시 발의됐다가 폐기된 '유아교육법안'(1997)을 시작점으로 본다면 벌써 30년 가까이 '묵은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아이는 스스로 어디를 다닐지 선택할 권리가 없는 데 반해, 소속기관에 따라 지원금과 서비스 질에 편차가 생기다 보니 모든 영유아에게 표준화된 양질의 돌봄·교육을 제공하자는 게 근본적 목표다.
교육·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취지는 바람직하나, 당초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던 구체적 실행안 발표가 밀리면서 유보통합은 언제 정식 시행이 가능할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남북통일보다 어렵다'는 유보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정부의 구상과 진행현황, 걸림돌 등을 일문일답(Q&A)으로 살펴본다.
지난해 2월 7일 서울 강남구 못골한옥어린이도서관에서 열린 '서당에서 만나는 설날' 어린이 예절 학교 행사에서 유치원생 어린이들이 인절미를 자르고 있다. 박종민 기자Q. '초저출생' 시대 아닌가. 아이 수 자체가 적은데 이같은 '대공사'가 필요한 이유는?A: 정부의 시각은 오히려 그 반대다. 이분화된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길러 온 제도적 한계가 현재의 저출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다. 2023년 기준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0.72명)이 회자되던 지난해 6월 말 정부가 내놓은 '세계 최고 영유아 교육·보육을 위한 유보통합 실행계획(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교육부는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조사 결과('아이를 믿고 맡길 기관·사람이 있다면' 출산의향 증가 응답 76.4%)를 들어
"학부모가 원하는 시기에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질 높은 교육·보육 환경 조성은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영유아수 급감으로 잇따른 어린이집·유치원 폐원이 양육환경의 불안을 낳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2018~2023년) 영유아 인구는 241만 명에서 146만 명으로 39%나 줄었고, 유치원·어린이집도 같은 기간 22% 쪼그라들었다(4만 8192곳→3만 7395곳).
소위 '영유'(영어유치원) 등 과도한 사교육을 방지하고 아이들의 건강한 인지적·정서적·신체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정책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Q. 유보통합이 난제였던 이유 중 하나는 '소관부처 단일화' 문제 아니었나.A: 그렇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유보통합을 국정과제로 채택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배경 중 하나기도 하다. 예전에는 '보육이 먼저냐, 교육이 우위냐' 식의 부처(교육부-복지부) 간 알력 다툼이 정책 진전을 막는 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지난해 중앙 단위
영유아 보육사무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첫 단추는 확실히 뀄다.
Q. 교육부가 약 7개월 전 내놓은 추진 로드맵의 핵심은 뭔가.A: 우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서,
양 기관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배제한 제3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운영시간과 프로그램, 시설 기준, 교사 자격 등이 다 상이한 기준을 통일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5대 상향평준화 과제로는
△충분한 이용시간 및 일수 보장 △교사 대 영유아 비율 개선 △단계적 무상교육·보육 실현 △통합연수체계 마련 △수요 맞춤 교육·보육프로그램 강화를 꼽았다. 가령 이용시간의 경우, 하루 8시간 이상인 유치원과 12시간 이용 가능한 어린이집 간 차이를 '기본운영 8시간 및 맞춤형 돌봄 4시간'(일 12시간)으로 단일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내놓은 '유보통합 실행계획' 중 발췌. 교육부 제공교사 대 영유아 비율은 0세반 기준 1 대 3에서 1 대 2를 목표로 개선하고, 3~5세 또한 현 1:12에서 1:8을 목표로 학급 과밀화를 해소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맞춤형 직무연수'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연간 연수시간을 2027년 60시간까지 늘리겠다고도 했다.
Q. 보통 시범사업을 중간단계로 많이 활용하던데.A: 맞다. 정부는 작년 9월부터 전국 유치원 66개와 어린이집 84개 등 150개 기관을 유보통합 시범학교 격인
'영·유아학교'로 운영 중이다. 정책 효과를 현장에서 미리 구현해 보고, 전면확대를 위한 보완·개선점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지역별로는 대구(43곳)와 경북(20곳)이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간 교육부 관할 '밖'에 있던 어린이집과 교육청 간 행정지원체계를 모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현장에서는 각 지자체(시·도)에서 유보통합 업무 협력 등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시범사업은 내달 종료 예정이었으나 4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Q. 결국 최대 쟁점은 통합기관의 교원 자격과 재정 문제 아닌가.A: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 현재 유치원 교사는 (전문)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정교사 자격증이 나오는 반면 보육교사는 전문학사 이상 학위 또는 평생학습기관 등에서 필요학점을 따면 자격이 부여된다.
교육부는 2027년부터 학사학위(영유아교육과)를 토대로 신규 통합교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 방법론은 공란이다.
통합자격을 영유아 정교사(0~5세) 단일안으로 할지, 영아(0~2세)와 유아(3~5세) 정교사로 구분할지도 결정을 못 내렸다.
통합교원 자격·양성 개편 주요 방향. 교육부 제공
정부는 지난달 통합기관의 유형과 입학기준, 교원 자격 등과 관련해 공청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 등의 반발로 인해 행사를 취소했다. 한어총 측은 "교육부가 보육현장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이대로면 어린이집 80%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원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 교사처우 개선과 시설 개비만 해도 상당한 예산 소요가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대략적인 추계치도 내놓지 못했다. 큰 틀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활용하겠다는 방침 외 시도교육청이 관련 부담을 다 떠맡을지, 국고를 투입할지도 미정인 상태다.
최근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숭실대 경제학과 부교수)과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건비를 중심으로 통합기관(표준학교) 비용을 산정한 연구 결과,
"어린이집 규모 중 가장 대표적인 50인 규모에서 영아·유아 정교사를 따로 배치할 경우 40%, 영유아 정교사로 일원화할 경우 약 49%의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저출생으로 영유아 수가 감소하고 있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영유아 1인당 상당한 인건비 증액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며
"부처통합으로 시작된 유보통합이 실질적 유보통합으로 완성되려면 적절한 유보통합 표준학교 모형에 따른 항목별 추가재정 소요 산출, 필요 예산 확보방안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5년도 업무보고 시 유보통합 관련 타임라인을 제시하지 못한 교육부는 일단 작년 로드맵에 따라 통합기준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