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AI(인공지능) 인프라 프로젝트다. 향후 10년간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 선전 포고는 AI 분야에서도 유효했다. 취임 이튿날 미국 내 AI 인프라 건설에 5년 내에 총 5천억달러(약 720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갈 수록 커지는 AI 기술 투자 격차에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AI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당선 후 세 번의 기업인 동반 기자회견을 보면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16일(현지시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지난 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억만장자 후사인 사지와니 다막부동산 설립자와의 만남, 그리고 21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참석한 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한 발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지켜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등 3개 회사가 '스타게이트(Stargate)'란 합작사를 설립해 미국 각지에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초기 자금으로 즉시 1000억 달러(약 144조원)를 투입하고, 미국 남부 텍사스를 시작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기술, 일본·중동의 자본을 결합해 AI 산업의 핵심 기반 시설을 미국에 설립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스타게이트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재정적 책임과 더불어 회장직을 맡고, 오픈AI는 운영 책임을 맡는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 AI 펀드인 MGX와 오라클도 자금을 대고,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MS, 엔비디아는 기술 파트너로 참여한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 직후 대규모 투자 카드를 공개한 건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AI 기술 굴기를 미국이 꺾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국은 정부가 주도해 AI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이후 지난해까지 정부 투자 435억 위안(약 8조2000억원)을 포함해 총 2000억 위안(37조7000억원)을 투입해 전국 8곳에 국가컴퓨팅허브를 구축했다. 기술력도 상당히 올라왔다. 지난해 8월 미국 경제·혁신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혁신재단(ITIF)은 "중국의 AI에 대한 추진력과 전략적 투자를 보면 미국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경고했다.
한편 우리 정부도 2조원 규모의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또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착수하고 AI 스타트업과 성장 기업을 위한 정책펀드를 올해 8100억원 목표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미국 등에 비해 AI 경쟁력이 뒤처진 데다 투자 규모 역시 턱없이 작다. 민간도 투자 부문도 글로벌 시장에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를 앞세워 글로벌 AI 시장을 확보하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AI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은 3년간 6조원 수준이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AI 경쟁에서 지속적인 경쟁을 유지할 '실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전선에서 이탈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AI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하고 우수한 인재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미국처럼 한국 역시 AI 규제를 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이성엽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은 검색, 이커머스에서 독자적인 플랫폼이 있어 IT 강국으로 불려왔지만 AI 분야에서는 인프라나 서비스 등 자체적인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AI 관련법으로 발목을 잡으면 안 될 것이고 지원도 더욱 더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