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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노조 유인물이 그렇게 무섭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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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노조 유인물이 그렇게 무섭나요?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5g에 불과한 '종이 한 장'. 하지만 그 무게가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종이 한 장은 간혹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꿉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용접사이자 한진중공업(전 대한조선공사)의 마지막 해고노동자인 김진숙씨의 삶도 '종이 한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1986년, 김씨는 노조 대의원으로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그 종이 한 장으로 김씨는 '빨갱이'가 됩니다. 회사는 김씨를 불순분자라며 해고했고, 결국 김씨는 35년간 복직 투쟁을 하게 됩니다. 사측은 '종이 한 장'이 왜 그리 두려웠던 걸까요.
     
    30년이 넘게 흘렀어도 여전히 '종이 한 장'을 둘러싼 노사간 법정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롯데면세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롯데면세점 김주남 대표(당시 지원부문장) 등은 2018년 4월 롯데면세점 노조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가입하려 하자, 노조 간부들에게 인사 등 처우에 불이익을 예고하며 민주노총 가입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은 노조가 결국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실제로 노조 간부들을 대거 부당 전보 조치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이들은 1심에서 대부분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해당하는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노조 운영에 개입한 사실이 인정된 겁니다. 다만 '노조 소식지'를 배포하는 노조원을 제지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요. 노조 소식지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지난 2일 열린 법정으로 가봅니다.

     

    노조 "민주노총 가입했다" 알리려 했지만…


    지난 2일, 법정은 2018년 4월 26일로 시계를 되돌렸습니다. 롯데면세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된 바로 다음날로요. 증인으로 출석한 노조위원장은 그날의 기억을 찬찬히 되살렸습니다. 그날, 노조위원장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가입 소식을 비롯해 가입 이유와 가입 혜택 등의 내용이 담긴 노조 소식지를 들고 롯데면세점 본사를 찾았습니다.

    2024.05.02.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3부 '롯대면세점 노조 방해 재판' 증인신문 中
    검사 : 증인은 결정 다음날인 4월 26일 상급단체에 가입했다는 결정을 알리기 위해 롯데면세점 본사 22층, 24층에 방문했죠?
    노조위원장 : 네
     
    검사 : 증인은 사무실에 방문해서 노조 소식지를 전달했죠?
    노조위원장 : 네
     
    검사 : (마케팅 부문에서 소식지를 나눠줄 때) 마케팅 부문장 A씨가 증인을 보고 어떻게 했나요?
    노조위원장 : 노조 소식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소식지 나눠주지 말라, 나가라"고 얘기했고 금방 나눠주고 나가겠다고 하니까 "노무 담당 불러" 이렇게 얘기를 했었고 제 팔을 끌면서 나가라고 얘기해서 완력 쓰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검사 : 2018년 4월 26일 이전까지 노조 소식지 배포가 제지된 적이 있었나요?
    노조위원장 :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검사 : 당시 노조 소식지 배포를 10년 동안 제지 당한 적이 없었던 것이죠?
    노조위원장 : 네

     
    노조 설립 이후 만 10년 간 단 한번도 노조 소식지 배포에 대한 제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노조위원장. 민주노총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담긴 노조 소식지 배포가 제지된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그날 노조 소식지 배포를 제지한 롯데면세점 본사 마케팅부문장 A씨도 이날 증인(1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기도 합니다)으로 나와 노조위원장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2024.05.02.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3부 '롯대면세점 노조 방해 재판' 증인신문 中
    A씨 측 변호인 : 롯데면세점 단체협약 11조를 보면, 노조활동은 '근무 시간 외'에 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죠?
    A씨 : 네


    (…)

    검사 : 증인은 (노조위원장이) 배포하는 노조 소식지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왜 (배포를) 하지 말라고 했나요? 회사에 도움되는 필요한 내용일수도 있잖습니까
    A씨 : 근무 시간 중에는 그런 걸 해서는 안 됩니다.
     
    검사 : 증인은 그 전까지 누구도 소식지 배포 제지한 사실이 없었는데 증인이 처음으로 마음먹고 제지한 건가요?
    A씨 : 소식지 배포가 핵심이 아니고, 마케팅 부문의 분위기 술렁이고 시끄러웠던 부분에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조 소식지 배포를 제지한 것은 맞지만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노조위원장과 노조 사무국장이 마케팅 부문 사무실에 와서 소식지를 배포하려 하자,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이를 막으려고 했을 뿐이었다는 것. 또한, 단협 규정상 '근무 시간 내'에 노조활동을 해서는 안 되기에 이를 막은 거라는 논리입니다.

     

    소식지 배포 제지…"조직적 제지"일까 "돌발적 행동"일까


    하지만 노조위원장의 입장은 다릅니다. 노조는 통상적으로 근무시간 내에 노조 활동을 해왔고, 민주노총 가입 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2024.05.02.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3부 '롯대면세점 노조 방해 재판' 증인신문 中
    검사 : 회사 측은 근무 중 노조활동해 제지했다고 하지만 이전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고요?
    노조위원장 : 네 그렇습니다.
     
    검사 : 증인이 제출한 영상 보면 새노조원들도 (근무 시간 중에) 새노조 가입 원서를 받았지만 사측이 제지를 안 했죠?
    노조위원장 : 예 맞습니다.
     
    검사 : 피고인 A씨는 자신의 행동이 우발적, 즉흥적이었다고 주장하는데요?
    노조위원장 : 아닙니다. 이미 민주노총 가입사실이 다 알려진 상태였고, 그와 관련된 소식지 뿌리는 것을 알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 롯데면세점 전체 직원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검사 :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 사건 전까지 사측이 소식지 배포를 제지한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사 빌딩에 갔을 때도 제지당했고 같은날 다른 지점에서도 제지당했습니다. 갑자기 '조직적 제지'를 한 건가요?
    노조위원장 : 예 맞습니다.

     
    검사 : 이는 그 전날 롯데면세점 노조가 민주노총 가입 결정했기 때문인가요?
    노조위원장 : 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 근무시간에 노조 활동을 하면 안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노조위원장 : 전임자는 근무시간에 노조활동 하는 게 맞는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근무시간에 조합원들 만날 때 제지 당한 적 없습니다.


    1심 재판부가 "(A씨의 행동은) '민주노총 가입→상당수 직원들의 동요→가입을 주도한 노조위원장이 가입 결정 바로 다음 날 본사 사무실에서 소식지 배포→사무실 직원들의 동요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나온 돌출적, 혹은 단발적 반응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노조위원장은 '조직적, 전사적 제지'를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떨리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증언을 이어가던 노조위원장의 신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동료들은 박수를 쏟아냈습니다.

     

    '노조 유인물' 제지한 다른 기업들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며, 유사한 사례들의 판결을 되돌아봅니다.
     
    삼성물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삼성물산 노조원들 또한 지난 2011년 7월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같은해 8월에서 9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유인물을 배포하다 제지당했습니다. 하루는 기숙사 현관 앞에서 통근하는 삼성물산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유인물을 빼앗겨 찢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노조원들은 부당한 제지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2018.08.22. 서울동부지법 삼성물산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 中
    피고(삼성물산)의 이 사건 유인물 배포 제지행위는 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에 규정된 부당노동행위로서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인정되고, 이로 말미암아 원고(노조원)들은 단결권을 침해당하는 무형의 손해를 입게 되었으므로, 피고는 위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처럼 재판부는 '노조 유인물' 배포 행위 제지가 돌출적, 단발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노동3권 중 하나인 '단결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삼성물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해당 판결은 서울고등법원에서 2023년 9월 13일 강제조정으로 확정됐습니다.
     
    효성에서도 지난 2011년 사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노조 유인물을 배포한 노조원이 징계처분을 받아, 해당 노조원이 징계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2014.2.11. 부산고등법원 효성 징계무효확인소송 판결문 中
    노조활동에서 유인물 배포는 그 방법을 당해 노동조합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로서 그 배포과정에서 피고 회사의 취업규칙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할 경우 자칫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이는 점 (…) 원고(노조원)의 유인물 배포행위는 노조원을 확보하여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조활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당한 노조활동 범위 내에 속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를 징계처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징계가 무효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해당 결정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됐습니다.
     
    유인물 배포에 있어서 '노조의 자주성'을 인정한 이 판결. "근무시간 중엔 소식지를 배포해선 안 된다"며 단체협약 조항을 거론하던 롯데면세점 사측의 발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과연 롯데면세점 사건을 심리하는 항소심 재판부는 이 '종이 한 장'을 둘러싸고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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