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에게 공무원과 달리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 등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국도관리원 김모씨 등 6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은 국토교통부 소속 각 지방국토관리청과 무기계약을 체결하고 도로의 유지·보수 업무 또는 과적차량을 단속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국가는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가족수당, 직급보조수당, 출장여비 등을 지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이런 수당과 출장여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공무원들과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도 공무원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받지 못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 및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라며 2014년 6월 미지급 수당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들은 공개경쟁채용시험 절차를 거쳐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반면, 무기계약직은 면접시험을 통과하면 채용될 수 있어 채용형태와 절차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운전직 공무원의 주요 업무는 일반국도의 유지·보수에 동원되는 차량 및 장비의 운전·유지관리 등이고, 원고들의 업무는 관할 도로의 유지·보수 업무 등으로, 업무 범위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원고들과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고, 공무원들과 원고들을 달리 처우하는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도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연합뉴스대법원은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 지위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이 원고들의 비교대상 근로자가 될 수 있는지 △원고들에게 각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전원합의체는 이날 재판관 다수(7명) 의견으로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근로자로서의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에 대한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정한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고, 공무원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불리한 처우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피고가 원고들에게 차별적 처우를 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권영준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고, 공무원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차별적 처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서도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므로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유숙·김선수·노정희·이흥구·오경미 등 5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비교대상 근로자는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공무원을 비교대상 근로자로 삼을 수 있고,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근로자라는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으므로 피고는 위 각 수당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전합 판결은 국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공무원을 비교대상자로 삼아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른 차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명시적으로 판단한 첫 판례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차별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일반 근로자에 대한 공무원의 비교대상성을 부정하고, 공무원에 대한 관계에서 무기계약직과 같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제6조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였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판결은 공무원을 비교대상자로 지목한 차별 사안에 관한 판단이고, 공무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를 비교대상으로 하여 차별을 주장하는 사안에 관한 판단은 아니며,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을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도 아니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