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 첫 경찰청장에 내정됐을 때 주위에서 대부분 "될만한 사람이 됐다"는 분위기였다.
경찰대 7기인 윤희근 청장은 학창 시절부터 성적은 물론 리더십에서 두각을 나타내 선후배는 물론 동기들 사이에서 경찰청장감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윤 청장이 선배들을 제치고 청장이 됐을 때 "왜 하필 지금이냐?" "나중에 해도 언젠가 될 사람 아닌가?"라는 반응이 많았다. '지금은 윤희근 경찰청장의 때가 아니다'라는 얘기였다.
윤 청장은 차분하고 온화한 이른바 충청도 양반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윤희근 경찰청장이 부임한 이후 경찰 조직은 창설 이래 최악의 난맥상과 사기저하에 빠져 있다.
물론 윤 청장만의 탓은 아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검사 출신들이 정부 요직 곳곳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예고된 상황이다.
검사들은 기본적으로 경찰을 자신들의 지휘를 받는 부하이고 구속영장을 신청해달라고 요청하는 기관으로 여긴다.
젊은 검사가 경찰간부로부터 '영감님' 소리를 듣던 시절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불리는 수사권 조정 시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검찰수사권 약화를 검사들이 반길 리가 없다. 그래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필두로 시행령을 앞세운 검수원복이 진행됐다.
경찰은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경찰이 이런 처지를 자초하고 스스로 구경꾼이 된데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책임이 크다.
윤희근 청장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경찰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시종 끌려다녔다.
심지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해 총경회의에 참석한 50여 명의 경찰간부 중에 상당수를 112상황실이나 교육부서 등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윤 청장이 자기 손에 후배들의 피를 묻힐 수 있느냐?" "윤희근이 이럴 줄 몰랐다"라며 아직도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경찰간부들이 많다.
이때부터 윤 청장의 치안총수로서 지휘력과 권위를 상실했다는 지적이 많다.
윤 청장은 또,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조합의 불법 행위에 단호한 의지를 보이자 특별승진 50명 포상을 내걸고 '건폭' 수사에 집중했다.
전세사기 수사 관련자 30명과 보이스피싱 수사 관련자 25명 특별승진자보다 훨씬 많다.
경찰 내부에서는 상식 밖의 특진자 규모라며 윤희근 청장의 '코드치안'의 총화라는 말이 나왔다.
연합뉴스·(주)NEW 제공윤 청장의 코드치안의 백미는 낙마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추천이다.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욕적"이라며 들끓었다.
"현 정권이 경찰을 얼마나 핫바지로 생각하면 이렇게 계속 대놓고 무시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를 모를리 없는 윤 청장은 윤심을 따랐다.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폭 사실 때문에 지명 하루 만에 사퇴했다.
윤 청장이 치안 책임자로서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윤희근 청장은 "사퇴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늘 고민하고 있다"라고 일관되게 답변하고 있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 호우시절(好雨時節)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뜻이다. 국어 교과서에도 소개됐던 시다.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로 우종수 경기남부청장이 내정됐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 출신이 경찰수사를 지휘하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경찰청장인 윤희근 청장의 호우시절은 지금으로 보인다.
언제든 경찰청장감이었던 윤희근 청장이 때를 잘못 만나 경찰청장이 돼 무소신과 무능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면 지금 결단함으로써 경찰의 자존심과 중립성을 보여줄 때다.
이것이 윤 청장의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려야 가뭄에 도움이 되고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아무 때나 내린다고 해서 마냥 좋은 비가 아니다.
때가 아닌 시절에 쏟아지는 비에 우산 역할도 못했다면 윤희근 청장은 어서 비를 피해 물러나는게 옳다. 그때가 윤 청장의 호우시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