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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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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호주

    [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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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길을 묻다

    1992년 8월 한중수교는 한민족이지만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아오던 조선족과의 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선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국 땅을 밟아 주로 저임금 기피 업종에서 일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했지만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전통적 집거지였던 동북지역을 벗어나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언론재단 지원으로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조선족 길을 묻다'를 준비했다.

    연변 성립 70주년 행사준비 분주
    중앙서 내려온 돈으로 도시 새단장
    68만 인구 중 20여만 명 조선족…곳곳 한글
    韓 음식·패션 등 그대로 투영…한국과 비슷
    간판에 한글 먼저 중국어 나중…곧 역전
    서시장, 수상시장서 조선족 생활상 체험도

    ▶ 글 싣는 순서
    ①한 핏줄부터 우리말 하는 중국인이라는 생각까지
    ②"이거 먹어 봤어?"부터 "한국 좋은 사람 많아"까지
    [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계속)

    한글 간판이 번쩍이는 연변대학 앞 대학성(촌). 안성용 기자한글 간판이 번쩍이는 연변대학 앞 대학성(촌). 안성용 기자
    선양 북역을 경유한 옌지행 고속열차(가오티에·高铁)는 지린성 성도인 창춘을 거쳐 지린시를 지나자 터널을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끝없이 펼쳐지던 평원을 뒤로하고 한반도 지형과 닮은 산악지형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가오티에가 4시간을 달려 옌지(연길·延吉) 서역에 들어서자 내릴 준비를 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연변 억양의 우리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고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도 중국어와 우리말로 나왔다. '조선족의 서울' 옌지시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옌지시내. 안성용 기자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옌지시내. 안성용 기자
    역을 빠져나와 옌지시내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마주한 옌지시의 첫인상은 거대한 공사판 같은 것이었다. 다음 달 3일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 기념일인데 이 날에 맞춰 도시를 새 단장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옌지시내. 안성용 기자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옌지시내. 안성용 기자

    지난달에 연변대학을 졸업했다는 한 여학생은 "10년 단위로 자치주 성립 기념행사가 크게 열리는데 이때 중앙에서 돈이 집중적으로 내려와 도시가 새롭게 발전한다"며 "10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옌지 서역에서 인민공원에 이르는 공원로 주변이 집중적인 정비 대상이었다. 길을 넓히고 보도를 정비하는 공사가 밤낮으로 진행되면서 곳곳이 파헤쳐졌고 공사 소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활력이 느껴졌다. 시내 곳곳의 대형 건물과 공공기관 청사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 축하문구가 게시돼 있었다.
     
    안성용 기자안성용 기자
    시내를 가로지르는 부르하통하 강도 거대한 공사판이었다. 하천 한가운데서는 포클레인이 강바닥에 쌓인 모래를 건져내느라 바빴고 양 옆에서는 산책로 등을 조성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옌지시는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관할의 현급시이자 자치주의 주도다. 2020년 11월 현재 총인구는 68만 명이고 이 가운데 20만여 명이 조선족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로는 194만 명 가운데 30.8%인 59만 7천여 명이 조선족이다.
     
    정겨워 보이는 옌지 상점의 한글 간판. 안성용 기자정겨워 보이는 옌지 상점의 한글 간판. 안성용 기자
    조선족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각 방면에서 위기가 찾아오고 있지만 옌지시의 모습은 중국의 도시보다는 한국의 도시와 더 닮았다. 깔끔하게 단장된 상점 간판은 한글과 중국어 두 개를 병행하는 형태였는데 한글 서체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밤에는 가게마다 건물마다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홍대앞 분위기도 느껴진다.
     
    한국 사람들에게 각인된 조선족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투박하고 거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가 처음 접한 조선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국 땅을 밟은 단순 노무자 위주였던 데다 <청년경찰>, <범죄도시>, <황해> 등에서 조선족을 잔인하고 무섭고 거친 존재로 묘사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옌지는 실제였건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건 간에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빠르게 벗어나 보다 세련되고 보다 깔끔한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음식이나 문화가 상당히 스며든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쉬운 일이어서 볼수록 애정이 생기는 도시이기도 하다.
     
    안성용 기자안성용 기자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지금은 한글이 위에 중국어가 아래에 배치되지만 곧 중국어가 위로 올라가고 한글이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고 말했다. 옌지에서 조선족 숫자가 줄어들고 중국 정부의 중국어 우선 정책이 조선족 사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옌지는 이렇다 할 생산 시설이 없는 대표적인 관광 소비도시다. 백두산(창바이산)을 관광하고 옌지의 먹거리를 맛보기 위해 코로나19 이전에 60만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찾던 곳이다. 한국과 옌지 간에 일주일에 6회의 항공노선이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한국 관광객들이 끊기면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2020년 옌지시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0.4% 감소했을 뿐이고 3차 산업 부가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 사람들 아니어도 중국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여행소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룡테마파크가 생기면서 더욱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옌지는 조선족의 중심도시답게 도시 곳곳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대형건물 지붕이 중국 전통의 시옷자 형태가 아닌 한옥형인 곳이 많이 있고,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복체험관도 있었다.
     
    수상시장과 함께 조선족의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서시장. 안성용 기자수상시장과 함께 조선족의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서시장. 안성용 기자
    옌지 서시장은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1970년대 노천 매대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동북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조선족 전통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고 굳이 한국형, 한국식을 강조하는 옷가게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층 식품, 농산물관, 2·3층 의류관, 4층 가구관, 5층 푸드코트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평일 낮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1층 식품점에서 본 '개탕'은 인상적이었다. 중국돈 30위안(약 6천 원)이라고 하는데 맛있다고 했다.
     
    한국의 전통시장을 빼닮은 옌지 수상시장. 안성용 기자한국의 전통시장을 빼닮은 옌지 수상시장. 안성용 기자
    서시장에서 멀지 않은 하천변에는 수상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재래시장과 비슷하고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김치 등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을 파는 곳부터 떡메를 쳐서 즉석에서 만드는 떡집이 있는가 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당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조선족만 있는 게 아니다. 한족 등 다른 민족도 섞여서 어떤 때는 우리말로 어떤 때는 중국말로 흥정과 실랑이가 오가는 모습이 우리 재래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이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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