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대형마트 입구에 들어서자 머리 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쏟아졌다. 끈적한 더위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마트까지 걸어오는 5분 동안 땀이 비오듯 쏟아진 탓에 마트가 마치 피서지처럼 느껴졌다.
주부 장지영(60)씨가 카트를 꺼내 야채코너부터 돌았다. 마침 마트에서는 양파 3개를 99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최저가 프로젝트 일환으로, 한 알에 300원꼴 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공산품은 물론이고 채소, 과일까지 비싸지 않은 게 없었다. 참외와 돼지고기, 휴지 등 필요한 것만 장을 봤는데도 영수증에는 6만 원 넘게 찍혔다.
'7월은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가다가는 월급날이 오기 전 생활비가 바닥날 게 뻔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도 장씨의 손에는 땀이 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인 24년만에 6%까지 올라서면서 소비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2020=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0% 올랐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더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7.4% 올라 1998년 11월(10.4%) 이후 가장 상승률이 높았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당분간은 물가 상승률이 6%대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싼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노력'은 이제 필수가 됐다.
서울 서대문구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최모(55)씨는 진열대에서 제일 큰 수박을 고르느라 직원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같은 가격이면 큰 걸 사는게 이득이지 않냐"며 "행사를 한다고 해서 마트에 왔는데 싼 게 없다"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서대문구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가격 행사중인 양파를 고르고 있다. 조혜령 기자 주부 정모(62)씨는 "물가가 예전보다 1.5배는 오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장을 보기 전 "여기저기 다 비교해 본다"고 장보기 노하우를 전했다. 그는 "인터넷 쿠팡도 비교하고 동네 마트랑도 비교하고 산다"며 "가격은 비싸지고 날은 덥고, 외식은 부담이고 주부는 더 힘들고 까다로워졌다"고 푸념했다.
아예 집에서 토마토와 쌈채소 등 식용 채소를 길러 먹기도 한다. 주부 김모(64)씨는 "올해 마당에 토마토도 심고 채소를 심었다"며 "마트에서 사 먹어야 하는 비싼 향신료를 심었는데 많이 열려서 채소 가격을 아꼈다"고 뿌듯해 했다. 그는 마트에서 손질된 냉동 생선 한 개만 산 뒤 마트를 나섰다.
고물가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대형마트는 가격 전쟁에 돌입했다. 이마트는 상시 최저가 판매를 목표로 하는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다. 이마트는 매일 가격 모니터링 후 경쟁사인 롯데마트, 홈플러스나 쿠팡보다 비싸게 판매한다면 추가 가격 인하를 실시해 상시 최저가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마트 역시 고물가 시대 물가 안정을 위한 물가안정 TF팀인 '프라이싱팅(Pricing팀)을 운영중이다. 홈플러스도 고추장 등 단순가공식료품 부가가치세 면세 조치에 맞춰 지난 1일부터 해당 품목을 면제세액 이상 할인하고 있다. 이커머스 1위 쿠팡도 오는 11일까지 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가전과 생필품 등 전 카테고리를 대상으로 대규모 할인 행사를 연다.
유통가가 전방위적인 할인 행사를 펼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높다.
마트에서 만난 주부 정모(63)씨는 "이 정부 들어서 좋아질 줄 알았는데 피부로 느끼기에는 좋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정부가 물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가 매운 어려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