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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희생에 자라난 '건강하게 퇴근할 권리'[노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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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반

    노동자들의 희생에 자라난 '건강하게 퇴근할 권리'[노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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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표 찍지 못한 노동존중사회④]

    '노동존중사회'를 선언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삶의 문제를 우리 사회 전면에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 고용 안정과 소득 강화는 물론, 노동 현장의 안전보건 강화와 '워라밸'까지 전방위에 걸쳐 모색됐던 정책적 노력은 어떠한 성과와 한계를 남겼는가. 그리고 차기 정부에 남겨진 과제와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한 해법은 무엇인가 짚어본다.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가 앞선 정부들의 노동 정책에 비해 큰 성과를 불러온 분야로 '산업안전보건'을 빼놓을 수 없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물론 정부 조직의 큰 변화가 있었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입법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문제는 차기 윤석열 정부가 과연 이러한 변화를 이어갈 수 있냐는 점이다. 하루에도 2~3명씩 노동자가 희생되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건강하게 퇴근하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산재사망 절반으로 줄인다'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964명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의 969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발주자의 책임 처벌'을 골자로 중대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정책 방향을 밝혔다. 이는 향후 문재인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뼈대가 됐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자살과 교통사고,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산업재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는데도 정작 2018년 산재사망자 수는 971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 때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배경은 안타까운 한 청년의 죽음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고(故) 김용균 씨의 비극은 인간의 목숨보다 이윤을 먼저 좇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사무국장은 "3대 프로젝트를 발표한 당시만 해도 교통안전, 자살에 비해 산재사고 사망 문제는 정부와 언론에서 그리 부각되지 못했다"며 "김용균 씨를 비롯해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이선호 씨, 여수에서 잠수 작업을 하다 숨진 현장실습생 홍정운 군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터져나온 시민들의 분노가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9년 산재사망자 수는 855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면서 2020년에는 882명으로 다시 늘었지만, 지난해는 828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올해 사상 첫 산재사고 사망자 700명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비록 대통령의 약속처럼 절반 수준(500명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동안 줄곧 약 1천명 내외에 못박혀 있던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꺾여 꾸준히 하락세를 보인 것 자체로도 상당한 성과다.

    이 과정에서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산업안전공단이 현장을 순찰하는 '패트롤 점검'을 벌이고, 이를 토대로 위험요소가 있는 사업장을 고용노동부가 집중 관리하는 유기적인 감독 형태를 선보이는 등 정부가 체계적인 변화를 꾀한 것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노동부 안에서 노동행정의 일부로만 머물렀던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지난해 7월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격상·확대한 것도 놀라운 진전이다. 고도의 전문지식·기술이 필요한데도 고용, 노정 문제에 치여 빛을 보지 못해 비인기 부서로 치부됐던 산업안전 조직이 전문성·독립성 확보를 향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노동자들의 피로 문을 열 수 있었던 산안법 전부개정-중대재해법 제정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아들 조형물을 만져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아들 조형물을 만져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더 나아가 김 씨의 죽음은 1990년 이후 28년여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완전히 바꾸어놓기에 이르렀다.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제한, 원청의 책임 강화 등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이른바 '김용균 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개정된 산안법에는 애초 논의 수준과 비교해 사고 책임자 처벌의 하한선이 사라져 산재를 막을 억지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게다가 법 보호대상이나, 도급을 금지한 유해·위험작업 범위도 기대보다 대폭 줄어든 바람에 정작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를 개정된 산안법으로는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반쪽짜리 법 개정'이었다.

    2020년 4월, 38명이나 숨진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방아쇠가 됐다. 결국 지난해 1월, 노동자가 숨지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면서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문제는 완연히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산재사고에 골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교적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직업성 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쏟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2007년 고(故) 황유미 씨의 사망 이후 11년 동안 수백명의 희생자를 낳았던 삼성전자 직업병 집단 발병 사태가 2018년 11월 최종 중재에 성공하는 등 일정 수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유럽은 사고 사망자보다 직업성 질병 사망자가 더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기초적인 안전사고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전근대적 사고라도 잡아내자'는 것은 척박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적절한 접근법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벌써 중대재해법 완화 말하는 尹…"검찰에게 재벌 기소하지 말라는 것"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이런 가운데 윤석열 당선인도 대선 공약에서 '산업재해 취약부문의 산재예방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소규모 사업장·건설현장 등 산재 취약사업장의 산재예방기술 및 예산 집중 지원 △대기업의 기술·노하우로 하청업체 안전수준을 높이는 대·중소기업 상생형 산업안전보건체계 구축 및 지원 강화 △지방고용노동청 등의 산재예방 기술지원 및 컨설팅 역량 강화 등 3개 공약으로, 사실상 새로운 내용이 없는 빈약한 수준에 그쳤다.

    오히려 윤 당선인은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중대재해법에 대해 "(경영책임자) 구속요건이 약간 애매하게 돼 있다"며 "형사 기소 시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중대재해법 시행 직전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고 반복해서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가 중대재해법 가운데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개정하도록 추진하거나, 다소 모호하게 규정된 시행령을 고쳐 처벌 수위를 낮출 것으로 우려한다.

    경영계는 시행령 곳곳에 있는 '필요한', '적절한', '충분한' 등의 표현을 명확하게 바꿔야 기업들이 중대재해를 제대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중대산업재해 판단기준인 '직업성 질병'의 목록 등을 축소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노동부는 이런 경영계의 반발을 "업종과 기업마다 지배구조와 재해 예방 대비 수준이 다른 상황에서 단일한 기준을 딱 잘라 제시하면 오히려 중대재해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 있다"고 반박해왔다.

    '법에 정한 수준의 예방 조치를 마치기만 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책임 면피'보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사업주·경영책임자 스스로 자신의 사업장 상황과 법을 비교해 점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대재해법의 취지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대재해법은 올해 1월부터 시행돼 아직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 6일까지 47명의 노동자가 숨지기까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사업주, 경영책임자가 기소는커녕 구속조차 된 일도 아직 없다.

    중대재해법이 실제 어떤 효과를 거두고,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지 확인하기도 전에 시행령 개정 작업에 나선다면 지금껏 법 제정부터 시행되기까지 겪었던 혼란을 반복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뒤집어 말하면 아직 중대재해법이 현장에 안착하지 못한 현재 시점에서는 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둘러싼 논란보다 윤 당선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고 노동부가 관련 감독을 마쳐서 사건을 송치하더라도, 결국 사업주·경영책임자를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것은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첫 검찰 출신 당선인이 취임 전부터 중대재해법 완화를 역설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몸통'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까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결국 기소를 할 것이냐는 검찰에 달렸고, 법원에서 처벌한다. 중대재해법은 검찰의 문제"라며 "그동안 '무전유죄, 유전무죄', 재벌 봐주기를 반복하며 객관성을 상실한 검찰과 재판부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는데 산업안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우준 사무국장도 "윤 당선인이 중대재해법 완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기업과 검찰에 신호를 주고 있는 꼴"이라며 "더 나아가 최저임금, 노동시간 문제에서 친기업적인 메시지를 보이는 것도, 산업재해 위험에 취약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 넘어 건안법 제정, 산안청 출범으로…남은 과제 산적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박요진 기자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박요진 기자더 나아가 중대재해법을 넘어 산업안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과제가 국회에 남아있다. 지난해 산재사망사고의 절반 이상(50.4%)이 발생한 건설업 현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이 대표적인 과제다.

    대부분의 산업 현장은 노-사가 대립하지만, 건설현장은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발주자와 공사 진행을 감독하는 감리자를 빼놓고 산업안전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지난 1월 현대산업개발(HDC)의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등 건설현장의 대형 사고마다 무리한 공기 단축과 소홀한 감리가 반복해서 지적됐다.

    비록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고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지만, 건설공사의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발주자 책임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기간·비용을 책정하도록 책임을 묻고, 그럼에도 현장의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노동자에게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부여하는 건안법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으로 독립시키는 작업도 빠뜨릴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안전보건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뿐 아니라,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산재의 책임이 있는 '진짜'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찾아내야 하는 등 근로감독 업무의 부담은 한층 커졌다. 독립성·전문성을 갖춘 산업재해 예방·감독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여야는 2023년 산안청을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사업주 처벌만 강조하려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또 기존의 노동부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산업안전공단, 지방고용노동청이나 지자체와 역할을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고 공조 체제를 이룰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 관련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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