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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사랑의 본질을 묻는 낭만적인 이름 '시라노'



영화

    [노컷 리뷰]사랑의 본질을 묻는 낭만적인 이름 '시라노'

    외화 '시라노'(감독 조 라이트)

    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온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의 언어는 수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낭만적인 사랑을 대표하는 이름이자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만드는 이름이 고전 로맨스의 장인 조 라이트 감독의 손을 타고 스크린에 재현됐다.
     
    시라노(피터 딘클리지)는 10명의 자객쯤은 거뜬히 물리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진 군인이자 자신의 마음을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낼 줄 아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시라노가 평생을 사랑해 온 한 여자가 바로 오랜 시간 남매처럼 서로를 위해 온 록산(헤일리 베넷)이다.
     
    사랑을 고백할 용기가 없어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시라노에게 록산은 크리스티앙(켈빈 해리슨 주니어)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첫눈에 반한 록산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소식에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글로 표현하는 게 서툰 크리스티앙을 위해 시라노는 대신 편지를 써주고,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의 편지로 록산에게 마음을 전한다.
     
    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타임리스 뮤지컬 로맨스 '시라노'(감독 조 라이트)는 사랑을 대신 써주는 남자 시라노와 진실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 록산, 사랑의 시를 빌려 쓴 남자 크리스티앙의 대필 편지로 시작된 엇갈린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897)를 원작으로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여러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왔고, 에드몽 로스탕이 이를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옮겨왔다. 그렇게 실존 인물 시라노는 연극과 뮤지컬, 영화를 오가며 시대를 넘어 사랑과 낭만을 전하고 있다.
     
    이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원작이 가진 힘도 크지만, 로맨스 명가 워킹타이틀과 영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 중 한 명이자 고전 로맨스 장인 조 라이트 감독의 만남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감독이 원작에 대한 각색과 고전적인 이미지를 잘 살리는 연출자라는 점 역시 '시라노'를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 중 하나다.
     
    원작 속 시라노는 모든 것을 갖췄지만 거대하고 괴상한 코로 인해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영화는 거대한 코를 '작은 키'로 바꿨다. 그리고 실제로 단신인 피터 딘클리지는 크리스토퍼 플러머,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이 연기한 시라노와 다른 그만의 시라노를 만들었다.
     
    시라노와 록산,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마주하다 보면 사랑이란 무엇이며, 인간을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랑이라 말하는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 록산이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질문과 고민을 함축한 인물이라면,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각각 내·외적인 요소, 실체와 허상, 영혼과 육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록산은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했지만 크리스티앙이 들려주는 시에 매료되며 크리스티앙을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는 크리스티앙이 아닌 시라노의 머리와 마음에서 나온 언어다. 크리스티앙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시의 구절들은 오랜 시간 전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시라노의 사랑을 응축한 언어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은유와 비유로 함축된 언어 속에 담긴 본질인 '사랑'을 읽어냈기에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깊어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깊어져 가고, 깊어져 가는 사랑 사이로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고뇌와 고통도 깊어져 간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시라노는 자신의 실체를,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영혼을 록산 앞에 온전히 보일 수 없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서로에게 부족한 육체와 영혼을 빌려 반쪽짜리 자신을 록산 앞에 내보인다.
     
    이 둘을 통해 우리는 한 존재와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체인지 정신인지, 사랑을 구성하는 것이 과연 외적인 요소인지 내적인 요소인지 등 사랑을 둘러싼 지난하면서도 진부해 보이는, 그러나 우리가 사실은 마음 한편으로 늘 하나의 답을 갈구했던 물음을 고민하게 된다.
     
    이처럼 오래된 질문이자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시라노'는 낭만적인 길을 향해 걷는다. 록산이 오랜 시간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해 온 시라노를 선택함으로써, 비록 시라노가 육체적으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적어도 온전히 내보일 수 없었던 사랑의 주체가 자신이었음을 알리며 자신의 사랑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시라노'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시라노'에서 반가운 지점 중 하나는 평면적이고 수동적으로 그려졌던 록산의 진화다. 이 영화에서 록산은 단순히 두 남성이 사랑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주체로 스크린에 나선다.
     
    여러 장점이 빛나지만 뮤지컬 내지 뮤지컬 영화의 팬이라면 뮤지컬적 요소가 부족한 '시라노'에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뮤지컬적인 색채는 적지만, 연극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또한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리나' 등 시대극에서 뛰어난 미장센을 선보였던 감독은 이번에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풍광에 17세기의 낭만을 입혀 화면 가득 고아한 신들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시라노를 연기한 피터 딘클리지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사랑을 읊는 피터 딘클리지는 '시라노'에 운율을 부여한다. 매 작품 자신만의 언어로 영혼을 불어넣어 온 딘클리지가 '왕좌의 게임' 시리즈를 통해 에미상을 거머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음을 '시라노'는 거듭 확인시킨다.
     
    마이클 고든 감독의 '시라노', 장 폴 라프노 감독의 '시라노' 등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속 서로 다른 시라노를 비교해 보는 것도 '시라노'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124분 상영, 2월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시라노'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외화 '시라노'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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