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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미싱타는 여자들' 임미경이 본 판사들의 얼굴



영화

    [EN:터뷰]'미싱타는 여자들' 임미경이 본 판사들의 얼굴

    다큐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임미경씨
    1977년 9월 9일, 그날을 기억하다
    <하> 판사 앞에 섰던 그때, 그리고 지금 이야기

    노석미 화가가 그린 임미경 선생님의 초상화. ㈜영화사 진진 제공노석미 화가가 그린 임미경씨 초상화. ㈜영화사 진진 제공"그 판사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그런 표정을 봤을 때 '그래 이건 저 사람들도 어쩔 수 없나봐.' 드라마 같은 거, 뭐 같은 거 보면 막 시켜서 하잖아요. 맘대로 자기가 이게 옳구나, 그르구나 결정을 못 내린다는 걸 그때 그 판사의 표정을 보고 알았어요. 지금 40년이 지났는데도, 참 자기가 어떻게 이걸 판결을 해야 하나 굉장히 고민하는 듯한. 기가 막히고 한심한 듯한. 그 구치소에서 경찰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그런 표정. '뭐야? 얘네들 뭐야?'" _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중
     
    정권의 탄압으로 개관과 동시에 문을 닫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노동교실은 치열한 노력 끝에 1975년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노동자의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1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무엇인지 배우는 것뿐 아니라 평범한 10대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꿈의 공간'이었다. 임미경씨에게도 노동교실은 희망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런 노동교실을 정부는 다시 빼앗으려 했고, 노동자와 노동교실을 위해 싸우던 이소선 여사마저 구속되자 많은 여성 노동자는 이 여사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정부가 노동교실 폐쇄를 예고하자 1977년 9월 9일, 노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동교실로 모였다. 당시 미경씨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16세 미경씨는 주민등록조차 조작된 채 재판을 받고 투옥됐다. 정당한 권리를 위해 투쟁한 결과가 그랬다.
     
    미경씨는 자녀들에게도 대학생이 될 때까지 숨겨 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노동자로서의 치열한 삶을 '미싱타는 여자들'을 통해 처음으로 모든 사람 앞에 털어놨다. 그간 털어놓지 못한 것은 당시를 후회해서가 아니다. 자식들 앞길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미경씨 자녀들은 걱정과 달리 엄마이자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걸 응원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미경씨로부터 여성 노동자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 그리고 '임미경'으로 산 시간과 '미싱타는 여자들'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이 자리에는 이혁래, 김정영 감독이 함께했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임미경 선생님이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임미경씨가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

    "판사들의 얼굴이 보이셨어요?"

     
    이혁래 감독(이혁래) : 선생님, 자제분들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했어요?
     
    임미경씨(이하 임미경) : 우리 사위한테 먼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놀랐어요" 그랬어요. "어머니가 그때 굉장히 어렸는데, 재판 받을 때 판사들의 표정이 보이셨어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궁금했나 봐요. 영화를 다 보고 어머니가 영화 속에서 판사들의 얼굴이 보였다고 했는데, 그게 굉장히 궁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 사위한테 그랬어요. 그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였다고요. 그들에게 우리는 공산당이니까 단독도 아니고 판사가 세 명씩 있었어요. 서로 막 소곤거리는 게 다 보였어요.
     
    김정영 감독(이하 김정영) : 선생님이 하시는 말에 따라 그 판사의 표정도 보이고, 우리가 상상하도록 표현해주셨어요.
     
    이혁래 : 봉준호 감독님이 우리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는데 "혹시 '9·9사건' 재판 기록이 남아있을까?" 묻더라고요. 그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 보고 싶다는 거예요. 임미경 선생님이 정확히 어떤 말을 했고 판사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발언하셨는지 너무 궁금해진다는 거예요. 그 상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진짜 기록이 남아있냐고, 한 번 법원에 가서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임미경 : 전 빛 바란 공소장을 평생을 간직하고 있어요. 이사 갈 때면 가장 소중하게 챙겼어요. 언젠가는 내가 꼭 복수를 할 거야!(웃음)
     
    김정영 : 그래서 법대도 가셨잖아요. 정말 너무 대단해요!(미경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임미경 : 제가 법대를 다니면서 '단'이라는 말이 항상 기가 막혔어요. 무슨 구절이 있으면 '단'이 꼭 있어요. 그게 빠져나갈 구멍인 거죠. '단' 없는 건 하나도 없어요.
     
    이혁래 : 오늘 이렇게 하니까 촬영할 때 기억이 나요. 크레딧에는 감독이라고 저희 두 사람이 올라가지만, 사실은 출연자 선생님들이 이렇게 카메라만 놓으면 다 기승전결이 돼서 모든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게 다 담기는 거였죠.
     
    김정영 : 그런데도 너무 편하고, 이야기가 상상이 되고, 표정만 봐도 눈물이 나고…. 촬영과 조명은 1회 스태프를 구했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인데도 듣고 그 자리에서 다 울었어요.
     
    이혁래 : 그때 오셨던 분이 나중에 또 오고 또 오고 했죠.
     
    김정영 : 우리 현장을 좋아하셔서 전화하면 '당연히 가야죠' 그랬어요.
     
    임미경 : 감독님에게 이렇게 물어봤어요. 영화를 찍으면 한마디로 대박이 나야 좋잖아요. 감독님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대박이 나길 원하는 게 아니고,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요. 진실을 쓰고 싶어서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속으로 '그래, 이런 사람도 있어야지' 했어요. 이건 사실이고, 진실이잖아요. 이런 분들이 많이 있어서 세상은 둥글게 돌아가나 보다 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김정영 :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전 성장했어요. 너무 고마운 분들이시죠.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임미경 : 사실 (제 이야기를) 비밀로 했어요. 제가 감옥 가고 그랬던 걸 알면 애들 출셋길에 지장도 있을까봐 말을 안 했거든요. 우리 사위 보는 것도 좀 민망하고요. 또 사돈 보는 것도 진짜 민망하고. 그래서 말을 안 했다가 애들이 대학 갈 때쯤 이야기했어요. 우리 아들은 영화를 보고 "진짜 지금도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는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이걸 보고 힘을 내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딸이 학교 다니면서 알게 된 언니가 있는데 학생운동도 하고 그랬대요. 우리 딸이 그 언니한테 우리 엄마는 사실 옛날에 미싱 탔는데 투쟁하고 잡혀도 갔다고 말했더니 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만났더니 저한테 "어머니, 너무너무 열심히 살아줘서 감사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이혁래 : 저는 가끔 선생님들이 "이렇게 했는데도 예전과 똑같아"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 더 나빠졌을 거예요. 그걸 그나마 현 상태까지 유지시키신 거죠. 저는 그때 아무것도 안 했던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뭐 있어'라고 말하면 사실 화가 나요. 아무것도 안 했다면 더 나빠졌을 거예요.
     
    김정영 : 그때 선생님들이 그렇게 시간 단축 투쟁을 했을 때, 남대문에서 '너희들 덕분에 우리가 일요일에 쉬게 됐어'라고 했다죠. 선생님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영화를 보고 젊은 분들이 저분들 덕분에 일요일에 쉬고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저기 앉은 아주머니도 그런 분 아닐까 그런 말을 하시면서 나가시더라고요.
     
    임미경 : 저는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게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정의에 앞장서자는 거였어요. 요즘을 보면 우리가 더 열심히 투쟁해야 했는데 못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후손들한테는 아픈 상처 주지 않고, 분배도 잘되고, 그러면 좋겠어요. 전부 다 같이 하나가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부록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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