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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폭력의 사슬 끊고 스미는 우정, 그 장엄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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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폭력의 사슬 끊고 스미는 우정, 그 장엄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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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

    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 스포일러 주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 중 '지옥의 격언'에는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구절이 있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퍼스트 카우'를 통해 이 구절을 소박하면서도 잔잔하게 스크린에 펼쳐내며 결국 인간의 마음에 웅장함을 선사한다.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 식량을 담당하는 유대인 쿠키(존 마가로)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쿠키와 킹 루는 그곳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한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19세기 기회의 땅 미국에서 유대인 쿠키와 중국인 킹 루가 만나 마을 젖소의 우유를 훔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작품 중 국내 정식 개봉을 앞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퍼스트 카우' 서부극이라는 외피 안에 담겨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서부극 공식을 벗어난 영화다.

    이른바 서부극에는 무법자, 보안관, 방랑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개척시대의 낭만이라 불리는 특유의 감성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영웅과 악당의 이분법적 구도로 영화를 끌고 나간다. '퍼스트 카우'는 이같은 서부극의 주류에서 벗어난다. 즉 서부극의 중심에서 비켜나 그 바깥에 위치한 두 사람을 카메라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렇게 총과 말 대신 비주류 두 남성과 소가 중심에 서서 폭력이 아닌 우정을 이야기한다.
     
    자본을 향한 강탈과 약탈의 역사 속에서 폭력을 밟아나가는 주류 백인 권력들과 달리, 쿠키와 킹 루는 그들만의 삶과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인물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대로를 벗어나 척박한 외딴 길을 걷는 셈이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갇혀서 보지 못했던, 서부 시대 진짜 이야기를 담당했던 인물들을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들을 축으로 만들었다. 이는 서부 개척 시대 못지않은 혼란과 폭력으로 점철된 현대에 필요한 서부극이다.
     
    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서부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곳, 그러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법칙이 적용되는 시공간에서 쿠키와 킹 루는 인종을 뛰어넘어, 생존의 법칙을 뛰어넘어 우정을 쌓아간다. 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난 그들이기에 궁핍한 생활은 물론, 사방의 모든 것이 위협이다. 심지어 그들의 우정 밑바닥에 깔린 건 그들의 목숨이다. 아슬아슬하지만 우정을 지속하며 삶을 살아내려는 그들에게 쿠키가 만든 빵은 유일한 미래이자 동시에 목숨을 위협하는 장치다.
     
    두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넘어 우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일 정도로, 이들은 서로를 걱정한다. 또 함께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 위해준다. 그들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우정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그 마음에 젖어 들어간다.
     
    영화에는 쿠키와 킹 루 사이 우정 외에 또 하나의 우정이 나오는데, 바로 젖소와 쿠키 사이의 우정이다. 쿠키는 밤에 몰래 젖소의 젖을 훔치러 가지만, 젖소를 단순히 자기 자본을 불릴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젖소는 쿠키에게 자신의 젖을 나눠주고, 쿠키는 그런 젖소에게 자신의 다정함과 온기를 나눠준다. 도구로만 이용되는 존재들만이 나눌 수 있는 온기이자 또 다른 결의 우정인 것이다.
     
    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외화 '퍼스트 카우'(감독 켈리 라이카트)이처럼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우정'이고, 이를 그려가는 전개는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잔잔함 속에서도 어쩐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과 이상하리만치 손가락을 오므리게 만드는 긴장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다. 처음부터 차분하지만 단단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인물에 빠져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상황에 몰입하기 때문에 이러한 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차곡차곡 하나씩 쌓이고 쌓여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느덧 마음이 켈리 라이카트의 세계로 가득 채워진 느낌을 받게 된다.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감정을 채워나가는 기술적 요소는 1.37대 1의 화면비와 35㎜ 필름이다. 이는 영화가 가진 매력, 즉 잔잔하면서도 소박해 보이는 매력을 더욱 살려낸다. 특히 디지털화된 요즘, 35㎜ 필름과 만난 라이카트의 서부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에게까지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아날로그 세계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한 감성과 라이카트 감독의 깊이 있는 시선과 만나 두 사람의 우정과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감독의 동화이자 우화 같은 서부극은 마음이 웅장해진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장 잘 느끼게 해준다. 소박함으로 거대함을 이뤄내는 거야말로 위대한 일이고, 이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 알려주는 증거다. 그 어떤 영화보다 스크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이며, 반드시 스크린에서 마주해야 할 영화다.
     
    122분 상영, 11월 4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퍼스트 카우'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외화 '퍼스트 카우'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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