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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났다…직장 내 괴롭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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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났다…직장 내 괴롭힘 '이후'

    핵심요약

    최근 대전에서 연이어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지난 1월, 대전에 있는 산림청 산하의 한 특수법인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이 법인의 임원이었고 피해자는 부하직원이었습니다. 노동당국은 직권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임원의 부하직원에 대한 폭행 혐의에 대해서도 최근 법원에서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어렵게 인정된 이 사건. 하지만 피해자에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남았고, 피해자는 조직을 떠났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받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에도 피해자들에게 남겨지는 이 같은 '현실'은 깊은 고민을 남기고 있습니다.

    ▶ 글 싣는 순서
    ①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났다…직장 내 괴롭힘 '이후'
    (계속)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났다.
     
    올해 초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산림청 산하의 한 특수법인 사례다. 노동당국의 직권 조사,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모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로 이어지지는 못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재발 방지 측면에서도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는 퇴사…경제적·정신적 어려움 시달려
    가해자는 조직 내에서 별도 징계 받지 않아

    지난 1월 대전에 있는 한국산림기술인회에서 임원 A씨가 직원 B씨에게 폭언 등을 가하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산림기술인회는 산림청 산하 특수법인이다.
     
    이 사건 이후 직원 B씨는 퇴사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보복 인사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는 직원 진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 B씨는 "사건일 전에도 지속적인 폭언을 당했고, 이날도 폭행하지 말라고 했지만 폭행이 이어졌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원 A씨는 지난 9월 이 사건에 대해 묻는 대전CBS와의 통화에서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건을 직권 조사한 대전고용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A씨는 B씨에 대한 폭행 혐의로도 조사를 받았고, 최근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임원 A씨에 대해 조직 내에서 별도의 징계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론 내린 대전고용노동청은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강제사항은 사업장에서 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업장인 한국산림기술인회는 노동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 있고 직원들에게 내용을 전파했다고 했다. 하지만 A씨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산림기술인회의 관리·운영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가진 산림청은 이 사건을 '개인 비위'로 보고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개인 비위라고 언급한 것이다.

    조직을 떠난 피해자는 반 년 이상 다른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신과 상담·치료 등도 피해자의 몫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어렵게 세상에 드러나고 관계기관으로부터 인정까지 받은 사건의 '이후'다. 피해자에게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순간의 고통과 함께,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이 더해졌다.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숨어드는 피해자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갑질119 제공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갑질119 제공이 같은 상황은 수많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한다. 어렵게 문제 제기를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은 좌절감을 더한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견디지 못해 회사를 벗어난 이후에는 경제적 문제 등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닥친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갑질 감수성 지표 및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도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 조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주년을 앞두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6월 10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것이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직장갑질119는 140명의 노동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들이 무료로 활동하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조사 결과, 32.9%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경험했지만 '참거나 모르는 척한 경우(68.4%)'가 가장 많았다. 반면 '회사,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4%,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3.0%로 매우 낮았다. 이들이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2.3%로 높았고,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27.2%였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은 1만340건인데, 노동부가 개선 지도를 한 것은 1431건(13.83%)에 그쳤다. 또 노동부가 검찰에 송치한 건은 101건으로 1% 미만이었는데, 그나마 기소 의견으로 올린 것은 30건(0.3%)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두섭 변호사는 "인식 변화와 조직문화가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선 노동부를 비롯한 행정당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모든 사건을 할 수 없다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대표적인 사건들을 엄정하게 조치해 전반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하면 합당한 조사와 조치가 이뤄진다는 사회적 믿음이 형성돼야, 괴롭힘의 '이후'에도 피해자가 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의무화돼있지 않아 중소기업의 경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고 특히 '일터의 약자'들에게서는 더욱 낮은 응답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형식적 교육이 아닌 사업장별 맞춤형 교육과 대응책 마련이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산림기술인회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알려지며 대전지법에는 지역 시민사회계 175명이 작성한 탄원서가 도착했다. 탄원서에는 "피고인은 최소한의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다"며 "본 사건과 같이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건에서조차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호소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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