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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뉴스]누가 판사가 돼야 하나…법조계 흔든 법관선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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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뉴스]누가 판사가 돼야 하나…법조계 흔든 법관선발 논란

    "어떤 재판을 원하나…법관 선발 전 논해야"

    이한형 기자이한형 기자내년부터 법관 자격 요건이 법조경력 7년 이상인 사람으로 늘어난다. 법원에서 예상하는 2022년도 신규 법관 임용 인원은 40명. 매년 150명 이상을 선발해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재판 현실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대법원은 현행 법원조직법을 고쳐 '법조경력 5년'으로 선발 자격을 고정하려 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4표 차로 부결됐다. 당장 내년 초부터 선발이 시작될 경력 7년 법관을 어떻게·얼마나 뽑을 것인지를 두고 법원 안팎의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법원행정처는 법조일원화제도 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수습에 나섰다.
       
    누구에게 판사의 자격을 부여할 것인가. 결국은 우리 사회가 '어떤 재판을 원하는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 법조일원화 취지 몰각하고 현실 안주만…'비판'

    최근 '법조경력 5년' 고정을 목표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 시도에 대해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가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 경험을 충분히 한 법조인,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본 경험이 있는 법조인을 판사로 뽑아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 시민사회에서 최종적으로 합의한 '경력 10년'이란 기준에 다다르기도 전에 중도에서 멈춘다는 것이었다.
       
    경력 5년인 변호사의 경우 재판연구관이나 군법무관, 국선전담변호사 등 사실상 법원의 영향권 내에 있는 경력만 가지고도 법관으로 선발될 수 있어 다양성 측면에서 의미가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법조일원화를 통해 없애고자 했던 법원 내의 관료주의와 서열주의 문화를 해소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법원은 현실적인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일단 10년 차 변호사 수가 법조일원화 제도를 설계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매해 2500명의 변호사가 법률시장에 공급되는 것으로 예상하고 현 제도를 설계했지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정원은 늘지 않았고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도 1500명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지난 8월 '법조경력 단축, 왜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로스쿨을 도입하며 변호사 시장 자체를 키우려던 목표가 정책적으로 실패한 가운데 법원의 방침은 이같은 실패를 개선하기보다는 간단히 덮어버리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 소송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점차 법관 개개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등 법관직의 매력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 점에 대해서도 "법원은 법관 개개인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고 묻기도 했다.
       

    '좋은 판사'란?…법원의 고민 있었나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특히 이번 법원의 개정 시도는 '바람직한 법관의 상'에 대한 고민을 뒤로하고 여전히 법원이 현실과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안긴 것으로 보인다.
       
    학창시절 내내 1등만 하다 서울대 재학 중 소년 급제하는 판사가 이전의 모델이었다면, 법조일원화를 통해 바꿔보고자 한 판사의 모습은 헌법과 인권 옹호, 소수자 보호 역할에 충실한 종합적인 사고와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법조 경력을 5년으로 유지하는 것은 재판연구관이나 군법무관 경력이 있는 우수한 로스쿨생을 선발하는 식으로 '성적우수자 우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다만 한 고위 법관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이 원하는 판사의 상이 바뀌었다지만 최근 도리어 역행하는 모습도 보인다"며 "재판에 참여하는 법률가들은 물론이고 재판 받는 국민들도 1등이 아닌 판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정말로 돼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경력 10년의 판사를 뽑게 될 경우, 이미 로펌 내에서 자리를 잡은 실력 있는 변호사가 아닌 낙오된 지원자들만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은 법원의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다.
       
    당장 내년 법관 선발을 앞두고 법원행정처는 선발기준을 다시 어떻게 매만질지 고심 중이다. 현재 1차 관문인 필기시험은 법률서면작성시험으로 기본적인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Pass/Fail' 방식이고 통과율도 70~80%에 이른다. 일종의 자격시험 성격으로 필기시험 성적은 이후 진행되는 판사 임용 절차에도 반영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각에선 필기시험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자기 사건을 매우 꼼꼼히 심리받기 원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원하는 판사와 배심제가 기본인 미국 국민이 원하는 판사의 상이 다르다"며 "선발 기준을 다소 주관적인 요소로 다양화하거나 이를 통해 선발인원이 늘어나게 됐을 때 과연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어떤 재판, 어떤 판사' 원하나…사회적 합의 없어   

    이한형 기자이한형 기자결국 '어떤 판사를 뽑을 것인가'하는 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가 '어떤 재판을 원하는가'에 대한 숙고가 없었던 점이 이번 논란을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분쟁을 해결해주는 것인지, 법이 무엇이라고 선언하는 절차인지, 결과중심적인지 과정중심적인지 등 사회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재판의 의미와 효과가 모두 다르다"며 "여기에서 재판에 대한 과도한 실망과 사법불신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형사재판과 관련해 흔히 올라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과거 판례와 비교해 지나치게 형이 가볍다'(일관성 중시)거나 '과거 판례에만 매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개별적 정의)는 비판이 공존한다.
       
    빠른 재판을 중시하면서도, 부실한 판결문 등 판사가 숙고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재판에 대해선 지적이 잇따른다.
       
    신속·정확하게 법률을 그대로 적용할 판사가 필요하다면 일정한 기준의 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성적 우수자'가 판사로 적합할 것이고, 여러 가치관이 부딪히는 복잡한 사안에 대해 숙고할 판사가 필요하다면 심리학자, 생물학자 등도 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부장판사는 "지금 우리 국민은 판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획일성이 떨어져서 인지 다양성이 없어서인지 어느 쪽으로든 선택이 필요한 때"라며 "대법원에서 '빠르고 좋은 재판' 양쪽을 모두 지지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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