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학교 가는 길'을 낸 엄마…그들을 기록한 감독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 장민희 어머니 <상>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개교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17년째 멈춰 있던 서울 시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끌어낸 용감한 어머니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왼쪽)과 장민희 어머니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2017년 9월, 서울 강서 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한 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다른 어머니들도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은 이유는 단 하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당연한 일에 무릎까지 꿇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아이가 장애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들 모습은 도화선이 되어 사회적 관심을 일으켰고, 지난한 투쟁 끝에 지난해 3월 서진학교가 개교했다. 그 사이사이 시간을 어머니들은 용기 있게, 그리고 연대하며 이겨냈다.

'무릎 사진'의 주인공인, 당시 강서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혜련이 엄마 장민희씨는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이 됐다. 이들을 기록하기 위해 나섰던 대학원생 김정인씨는 이제 영화 감독이 됐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장민희씨와 김정인 감독을 만나 각자 무엇을 위해 투쟁과 기록을 시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들어봤다.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개교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17년째 멈춰 있던 서울 시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끌어낸 용감한 어머니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 아이들을 위해 투쟁에 나선 엄마들…엄마들의 용기를 담아내기로 한 감독

-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어머니들의 투쟁을 뒤따라가며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찬반논쟁과 그 안에 담긴 혐오와 차별,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짚는데요. 어머니께서는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장민희 어머니(이하 장민희) : 정말 잘 만들었어요. 우리 아이도 혜련이가 출연했다고, 자기도 나온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영화에 출연한 모든 분이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작품의 우수성도 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같이 고민해 준 일련의 시간에 감사해요.

- 감독께서는 왜 어머니들 투쟁을 카메라로 담으려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정인 감독(이하 김정인) : 우연히 인터넷으로 단신 기사를 접했죠. 토론회가 무산됐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도 한창 아이(마로)가 자라고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니…. 기사에 9월 2차 토론회 일정이 나와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토론회에 가게 됐어요.

고성이 난무하는 토론회 현장이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부모님들은 너무나 의연하게, 또박또박 생각을 말씀하시는데 굉장히 멋있었어요. 저분들을 주인공으로 뭔가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죠. 처음 인사드리고 어머님들을 뵈러 갔을 때는, 얘가 뭐 하나 한다고 왔으니까 차마 안 된다고는 못하고 한번 해봐라 하는 분위기였죠. (웃음)

장민희 : 감독님이 그때는 대학원생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언론에 순서가 많이 밀렸어요. 학생이라고 하니까 넘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는데 일단 만나나 보자, 학생이 관심을 가져준다는데, 그래 해봐라 한 거죠.(웃음) 그 후에 감독님이 정말 그림자처럼 우리가 하는 투쟁, 장애인 가족과 함께하는 캠프 등 여러 활동에도 다 와주셨어요. 지금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강서부모회 회원이 감독님을 다 알아요. 오랫동안 '정인쌤'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영화 나오니까 정인쌤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고들 해요.(웃음)

-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투쟁에 나서게 된 건가요?

장민희 : 사실 엄마들이 뭉치게 된 건, 저희는 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움에 부딪혀요. 차별도 받을 수 있고, 아이들이 아무래도 능력이 부족하고 표현을 잘 못 하다 보니 치료실 등에 다닐 때 각종 어려움과 고민이 있어요. 그런 고민을 나누다 보니 부모회를 조직하게 됐죠. 그런데 또 학교를 짓는 것만 해도 담당은 어디고, 돈은 어디서 나오고, 교육부에만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국회도 찾아가야 하고…. 이런 걸 하나씩 깨달아 가면서 활동이 커진 거예요.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 서진학교 설립 찬반 속에 담긴 우리 사회 혐오와 차별

- 투쟁을 하시면서 무엇이 어머님을 가장 힘들게 했었나요?

장민희 : 장애인 단체의 시위나 집회, 농성을 좋게 보지 않는 게 있어요. 처음엔 편지도 쓰고, 청원도 했지만 사연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전달이 안 돼요. 뒷전일 수도 있고요. 우리가 제안한 걸 시나 정부에서 들어주면 좋겠지만 거들떠보지 않으니 그런 방법을 채택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사실 발달장애인들은 본인들이 소리를 못 내요. 부모들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듣는데, 발달장애 친구들은 할 수 없는 게 많으니까 부모들이 나서게 되는 거죠.

- 감독께서는 어머님들을 따라다니면서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지켜보셨는데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온갖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난무하는 현장이던데, 당시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김정인 : 저 역시 주민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그분들(반대 주민들)이 너무 거칠고 날카롭게 반응한 건 명백한 실수고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방병원과 학교를 봤을 때, 학교는 옵션으로 하나 더 필요하다는 이런 차원이 아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장소예요. 몇 개 안 되는 것조차 쉽게 이용하기 힘들죠. 학교 설립을 위한 부모님들의 절박함, 절실함은 한방병원 짓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봐요.

2017년 9월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장애 아이를 둔 지역주민이 특수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비단 가양동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감독께서는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들을 무릎까지 꿇게 했다고 보시나요?

김정인 : 그 누구도 특수학교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찬성한대요. 그런데 결국 여기는 안 된다는 거예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고, 다른 곳에 지으라고 하지만 다른 곳에 가더라도 폭탄 돌리기처럼 이어질 일이죠. 어머님들도 그런 부분이 가장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알기로도 무릎을 꿇은 후에 마냥 좋은 소리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모든 걸 다 했는데 이번 2차 토론회도 별 성과 없이 끝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장민희 :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진짜 할 만큼 다 했어요. 당시 김성태 의원께 몇 번 뵙자고도 하고, 교육청에도 찾아가고, 아이들을 교육청에 데려다 놓기도 했어요. 너무 속상했죠. 그런 걸 다 겪고 나니 토론회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절박했죠. 그날은 무서워서 달달 떨면서 갔어요. 언론이 주목하기 전까지는 사실 무서웠어요. 그래서 그날은 가족들에게 이야기도 못 했어요. 나중에 신문 보고서야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죠.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개교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17년째 멈춰 있던 서울 시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끌어낸 용감한 어머니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학교 가는 길' 장민희 어머니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 우리 사회가 반복해선 안 될 실수

- 영화를 보면서 감독께서 단순히 서진학교 반대 주민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지 않도록 노력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인 : 처음 프로젝트를 구상했을 때부터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끝나면 이 작품은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대 주민들은 가양동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고려해달라고 자주 주장하셨죠.

왜 이분들이 반대하실까 공부도, 취재도 많이 했어요.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이분들이 집값이나 님비 때문에 반대했다고 생각하고 끝나면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양동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떠한 불만들이 누적돼 왔는지, 그런 것들을 최대한 담고 싶었어요.

저는 심정적으로 부모님들에게 공감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저 역시 한 발짝 떨어져서 이 사안을 바라보려 했어요. 그래야만 또 더 많은 사람이 부모님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응원해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서진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들이 공부하게 돼서 너무 좋지만 그전에 공진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의 슬픔과 학부모들의 상실감도 우리 사회가 같이 기억하고 같이 반복해선 안 되는 실수라고 생각해요.

(*참고: 공진초등학교는 영구임대아파트인 4단지와 5단지에 주민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개교했다. 이후 공진초등학교 근처에 탑산초등학교가 새롭게 개교하고, 공진초등학교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 감독님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김정인 :

크게 두 가지였어요. 반대 주민들을 어떻게 담아내느냐, 그 수위와 정도를 조정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건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엔딩은 서진학교 개교였어요. 몇 차례 연기 끝에 지난해 3월 학교가 개교했고, 개봉까지 5년이 걸렸어요. 적지 않은 시간인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들이 보셨을 때 '이 정도밖에 못 하냐' 이런 결과물은 아니어야 할 텐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저 자신의 역량에 대해 가장 많이 의심했어요. 조금이라도 사회의 인식이 개선되고 이를 위해 보탬이 됐으면 하는 부모님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데, 그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굉장히 컸어요.

장민희 : 감독님은 너무 예의 바르시고, 어휴, 어머님이 다들 좋아하셨어요.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요.

김정인 : 부모님들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못 만들었어요.

장민희 :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인건비는 나와야 하는데…. (일동 웃음)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