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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가야…가야는 문화·기술·해양강국이었다"



경남

    "우리가 몰랐던 가야…가야는 문화·기술·해양강국이었다"

    [인터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 가야사 복원사업
    삼국사기 문헌에 등장 않는 가야
    땅속에서 가야의 가치를 찾는 중
    국정과제 선정이후 학술조사 400% 증가
    경남 18개 시군 전역에 가야유적
    가야는 문화, 기술, 해양 강국
    가야사 복원, 경남의 뿌리, 정체성 찾는 일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막바지, 관심 절실

    통영 팔천곡 고분군은 통영시 유일의 가야시대 봉토고분군으로서 남해안의 가야 해양세력이 조성한 유적으로 밝혀졌다. 경남도청 제공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제작 : 윤승훈 PD, 이윤상 아나운서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김수환 학예연구사 (경상남도 가야문화유산과)

    경상남도 가야문화유산과 김수환 학예연구사.

     

    ◇김효영>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직후 선정한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사 복원사업이 포함됐죠.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외면받아온 가야사를 복원하는 사업. 어느정도 진척이 있는지, 가야사의 중심지죠. 경상남도에서 가야문화유산을 담당하고 계신 분입니다. 김수환 학예연구사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수환> 예. 안녕하세요. 김수환입니다.

    ◇김효영> 가야사 복원사업, 전반적으로 잘 되어가고 있나요?

    ◆김수환> 예.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학술조사에서 가야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내용들이 발굴 현장에서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김효영> 학술조사라는 게 뭔지...

    ◆김수환> 가야는 문헌기록이 부족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이 삼국사기인데 이 기록에는 가야가 실제로 거의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땅속에서 가야의 가치를 찾아낼 수밖에 없는데, 학술조사라고 하는 것은 땅속의 문화재,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는 겁니다.

    ◇김효영>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는 것. 그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 선정 이후에 비로소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겁니까?

    ◆김수환> 국정과제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집니다.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유적들이 아니면 실제 조사를 거의 수행하지 않았었습니다. 지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효영> 예산이 없어서?

    ◆김수환> 네. 그러다보니까 1년에 가야유적이 조사된 게 국정과제 이전에는 10건 미만 정도 였고, 더더군다나 국가나 도에서 지정하지 않은 문화재는 전혀 대상이 되지 못해서 한 해에 1-2건 정도였었습니다. 그런데 국정과제 이후 40건에서 50건 정도의 학술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3-400%이상의 증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주 수정봉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가야유적으로는 처음 발굴됐지만,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 탓에 고분을 재발굴해 원형 복원의 근거를 마련했다. 경남도청 제공

     


    ◇김효영> 그렇군요. 지역은 우리가 짐작하는 대로 경남 김해지역이 많습니까?

    ◆김수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가야는 영호남에 걸쳐져 있습니다. 특히 경남의 18개 시군 전체에 다 가야유적이 있습니다. 전국에 2,465개의 가야 유적이 있는데 경남에 1,669개, 67%정도 되죠.

    ◇김효영> 그런 유적들 중 대부분이 빛을 보지 못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비로소 발굴을 하게 된 것이군요.

    ◆김수환> 예. 특히 비지정 유적들, 조사기회를 얻지 못했던 유적들이 1,600군데 정도가 되는데, 3년째 발굴을 해 보니 꽤 좋은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영의 팔천곡고분군에서 소가야문화권의 해양세력들이 만든 무덤군, 봉토군이 확인이 되었고요. 경남 고성에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송악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물자교환이나 정치적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서 가야시대 때 드나들었던 만이 있었던 곳인데, 산지에서 가야시대 토성이 새롭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보존상태도 좋아서 앞으로 아마도 국가문화재까지 지정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지정 유적들 속에서 정말 의미있는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효영> 그렇군요. 그런 걸 발굴했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하하.

    ◆김수환> 상당히 희열이 있죠. 직접 손으로 흙을 털어나가는 과정은 아마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정도죠.

    ◇김효영> 그 시대에 살았던 선조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겠습니다.

    ◆김수환> 맞습니다.

    ◇김효영> 좀 성급한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조사한 것들을 토대로 봤을 때 가야는 어떤 나라였다고 보십니까?

    ◆김수환> 교과서에서 6가야 라는 것을 배웁니다.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연맹국가 수준에서 멸망한 나라.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가야가 존재했던 것은 기원전으로부터 대가야 멸망기까지 562년입니다. 조선왕조 500년이라고 하듯이 가야도 500년 이상 존재를 했었던 나라고요.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들이 발굴조사, 학술조사를 해보면 곳곳에 최고지배자들의 고분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거대한 가야에 여러 나라가 존재한, 경남의 18개 시군 각지에 1-2군데 정도는 대형 고분군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는 '가야는 6가야가 아니라 20개, 또는 30개 까지도 나라가 존재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라, 백제처럼 하나의 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기는 좀 어려운 그런 나라들이었지만. 그리고 해양세력으로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문화교류, 교역을 주도했었던 그런 세력들이 되겠습니다. 또 문헌기록을 보면 전투를 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야는 통합을 할 필요가 없는, 물자도 풍부하고 충분히 교역이나 교섭을 통해서 세력을 유지를 할 수 있는 그런 평화로운 나라들이었는데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의 확장, 백제의 확장에 있었어 멸망해갔다. 이렇게 보시는 학자도 계십니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더 학술조사를 통해서 더 밝혀야 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효영> 밝혀지면, 역사교과서부터 추가되거나 변경되는게 곧 현실이 될수도 있겠군요.

    ◆김수환> 네. 국민들이 역사를 접하는 것은 결국 교과서가 가장 기본이지 않습니까? 그동안 교과서에서 가야는 내용이 많이 부족했는데, 앞으로 연구성과, 발굴성과들이 교과서, 또는 책에 많이 반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갈 것입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끝으로요. 먹고살기 바쁜데, 그 옛날 가야사가 뭐라고, 국정과제로까지 삼아서 돈을 들여서 꼭 해야 하느냐? 그렇게 묻는 분은 없어요? 하하.

    ◆김수환> 그 질문을 상당히 좀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남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또 하나, 가야는 문화강국, 기술강국, 해양강국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가야의 시대정신이 현대의 경남 도정, 현대 산업과도 연결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할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경남의 향후 100년 먹거리를 가야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효영> 뿌리와 정체성을 찾는 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습니까?

    ◆김수환> 우리는 뿌리를 모르고, 역사를 모르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야라고 하는 것은 500년 이상 우리 경남의 정체성으로, 뿌리로서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지금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이 거의 막바지입니다. 심사과정 중에는 주민들의 가야유적에 대한 인식, 이런 것도 계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저희들이 더 힘을 내서 꼭 성공적인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효영>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김수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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