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대안학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전현직 외교관 집단인 한국외교협회가 학교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19일 대안학교인 '숲나플레10년 학교(숲나학교)'에 따르면, 외교협회는 주일대사 등을 지낸 22대 이준규 회장 취임 직후인 2020년 1월부터 서울 서초구 협회 건물에 입주해 있는 학생과 교사들을 상대로 정문 출입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했다.
숲나학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이제 운동장마저 쓰지 못하게 하는 등의 수법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며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됐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외교협회 측에서 운동장을 철문으로 막자 화가 난 학생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왼쪽) 다음날 학생들의 메시지가 제거된 모습(오른쪽). 제보자 제공
협회는 1년 내내 학생들을 상대로 갑질과 욕설은 물론 최근에 작은 운동장마저 빼앗았다고 한다. 현재 운동장 입구에는 철문으로 막혀 있어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보다못한 학생들이 나섰다. 한 학생은 '우리가 마음 껏 뛰어놀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을 지켜달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며 항의하고 나섰다. 체감온도가 영하권까지 떨어진 날에도 자발적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의 학부모는 "한사람씩 15분 동안 돌아가면서 목소리를 냈다"며 "처음에 부당한지 몰랐던 아이들이 이제는 왜 우리가 이런 폭언과 멸시 대상이 돼야 하는지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갑질과 욕설을 들은 학생들이 1인 시위에 나선 모습. 피켓 속엔 '우리가 마음 껏 뛰어놀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을 지켜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제보자 제공
◇"계단 이용" 지침에…교사들, 급식 재료 옮기려 20kg 쌀 포대 지고 올라당시 협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라는 이유로 숲나학교 관계자들의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1, 2층을 쓰는 협회 직원들만은 예외였다.
이 같은 지침에 3층 교실과 4층 기숙사에 머무는 백여 명의 학생과 교사들은 계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문제는 급식을 위해 식자재를 가지고 온 택배기사조차 한 대 뿐인 엘리베이터를 못쓰게 한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20kg 무게의 쌀 포대를 메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비업무를 하는 협회 직원이 정문 사용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허용해달라 요구한 학생들에게 욕설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국외교협회 소유이므로 숲나학교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벽보. 제보자 제공
4층의 기숙사생들은 자기 몸집만한 짐가방을 들고 주말마다 올라가야만 했다.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학교 측은 협회에 주말 시간만이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협회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저녁시간 기숙사에서 내려오는 교사와 학생 두 명이 엘리베이터에 40분 동안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후화된 엘리베이터의 비상벨과 인터폰은 작동하지 않았고, 교사와 학생 두 명은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현장에 있던 119대원들은 상황이 종료된 후 뒤늦게 도착한 경비 직원에게 "이 큰 건물에 당직자 한 명도 없고 마스터키도 없냐"고 다그쳤다고 한다. 경비 직원은 되려 화를 내며 직원 수 부족으로 인한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외교협회 본관 3층과 기숙사 건물 일부를 임차한 숲나학교 조형물. 제보자 제공
◇"위안부는 돈으로, 학생들은 갑질로" 한국외교협회장 비난의 화살숲나학교는 지난 2019년 협회 본관 3층과 기숙사 건물 일부를 임차했다. 처음엔 갈등이 없었으나, 지난해 협회 회장이 바뀌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태가 시작됐다는 것이 학교 측 주장이다.
한국외교협회는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비영리 사단 법인으로, 역대 22명의 회장들 모두 외교부 장관이나 외국주재 대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11월 14일 당시 협회장에 나선 이 후보자의 정견발표문 내용에 따르면 "매년 적자 회계를 운영하고 있어 협회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기숙사 문제에 대하여 폐지안을 포함, 근본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외교협회장 이준규 후보자 정견발표문. 외교협회 사이트 캡처
이에 학교 관계자는 "임대기간이 남았음에도 숲나학교가 협회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재정 상태가 어렵다 등의 이유로 건물 내 80여동 기숙사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했다"며 "그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괴롭히고 무시하며 스스로 나가게 만들려는 임대인의 갑질을 노골적으로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회장의 주일대사 재임 당시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회장은 과거 부산 소녀상 이전을 주장하는가 하면, 후쿠시마 수산물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위안부는 돈으로 덮고 학생들은 갑질로 짓누르고 있다"고 적힌 현수막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외교협회 측에 여러 차례 입장을 물었으나 구체적인 해명을 듣지 못했다. 또 관련 민원에 대해 서울시는 "관할이 아니다"라는 짧은 답변만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