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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이주노동자 자발적 이직 가능?" 노동부의 '꼼수 행정'



뒤끝작렬

    [뒤끝작렬]"이주노동자 자발적 이직 가능?" 노동부의 '꼼수 행정'

    "이직 동의서 대신 확인서 받아 자발적 이직"…노동계 "말장난"
    고용주들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 극히 일부" 주장…통계는 정반대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19에 안전한 이유 '고된 노동과 격리된 생활'

    한파경보가 발령된 지난달 19일 캄보디아 출신 31세 이주노동자 속헹(Sokkheng)씨가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 사망한 것과 관련해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여성노동자 비닐하우스숙소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귀국을 며칠 앞둔 한 30살 여성 농업 이주노동자가 지난달 맹추위 속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크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난방조차 제대로 안되는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면서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강요하는 농장의 사례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학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제정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관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장에서는 인력 수요가 유동적인 농업의 특성 때문에 당장 정책을 바꿀 수 없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의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한다.

    학계와 노동계는 이러한 대책을 가로막는 곳이 고용노동부라고 입을 모은다.

    ◇"이직 동의서 대신 확인서 받으니 자발적 이직"…노동계 "말장난"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주노동자가 국내 입국했더라도 부득이한 사정(근로계약 해지·상해 등)이 발생할 경우 이주노동자에게 3년 중 3차례(재고용의 경우 최대 5차례)까지 고용주의 승인이나 동의없이 이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가 이직을 원할 경우 직전 고용주로부터 '확인서'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직을 원하는 노동자가 직전 사업장에서 고용주와 고용계약을 해지했는지 고용주에게 확인하는 문서다.

    고용노동부는 동의서와 확인서는 서로 성격이 다르다고 항변한다. 동의서는 이주노동자가 직접 고용주에게 받아야 하는 문서지만, 확인서는 고용노동부가 고용주에게 받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직전 고용주와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전 고용주가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주노동자의 이직이 전적으로 직전 고용주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노동계는 이 '확인서'가 사실상 '이직 동의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동의서나 확인서 모두 결국 고용주가 제출하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꼼수 행정'이고 '말장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도 노동계의 이러한 지적을 의식했는지 지난해 이같은 내용의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가 몇 달 뒤 슬그머니 내렸다. 고용주의 항의가 많아서라는 이유였다.

    ◇고용주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 극히 일부" 주장…통계는 정반대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이주노동자의 자발적 사업장 이직 설명자료. 행정관서에서 사업장 변경시 사업주의 동의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현재 이 자료는 삭제된 상태다. 주영민 기자

     

    고용노동부는 학계와 노동계의 지적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매년 '자발적으로 이직하는' 이주노동자가 연간 유입되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20%에 육박할 만큼 자유로운데 자신들을 표적 삼아 비판한다는 것이다. 취직하고 3개월가량 지나면 외국인등록증이 나오는데 이 때부터 노골적으로 이직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실상 직전 고용주의 동의없이 이직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도 매년 20%의 이주노동자가 이직을 한다는 건 노동조건이 나쁜 사업장이 많아 이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도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용주들은 난방도 안되는 콘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에 지내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고된 일을 하는 농촌 이주노동자는 소수이고,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적법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건 전체 농촌 이주노동자 숙소의 70%가량이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이라는 정부의 통계다.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농촌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 실태와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국제 엠네스티의 자료를 인용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자료에는 전북지역 이주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10시간(55.7%), 10~12시간(24.1%)이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노동계가 이주노동자들의 이직을 가로막는 기관으로 고용노동부를 지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19에 안전한 이유 '고된 노동과 격리된 생활'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의 고용이 어려운 3D분야에 주로 취업한다. 이들이 없을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러나 아직 이들에 대한 우리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노동계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로부터 안전했다"는 얘기가 있다. 매달 이틀 이상 쉬지 못하고 그나마 쉬는 날도 먹을 것을 사는 것 외에는 모자란 잠을 자는 것으로 보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는 일터인 비닐하우스에서 살지만 고용주는 읍내에 사는 경우가 많아 국내인과의 접촉도 거의 없다.

    다행히 경기도가 농촌 이주노동자의 숙소를 전수조사하고 정부도 관련 대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일회성에 그친 조치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최근 '한국 복지국가와 이민자의 권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강릉원주대 김규찬 다문화학과 교수의 분석은 이러한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결혼 이민자나 영주권자와 비교해 차별을 받는다고 분석한 그는 "정부가 '노동력'과 '배우자'를 초청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이들도 보편적 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노동권과 시민권에 더해 보편적 인권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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