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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뒤태 예쁘네" "뱃살 빼야지"…줄지 않는 직장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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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뒤태 예쁘네" "뱃살 빼야지"…줄지 않는 직장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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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갑질119, 486건 사례 분석
    89% 위계관계 속 피해 당하고
    가해자가 사용자인 경우도 29%
    "솜방망이 처벌 규정도 바꿔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2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전체 직원이 4명인 중소기업 막내 사원으로 입사했다. 재무회계 담당이었지만 매일 30분 일찍 출근해 사무실 청소를 했다.

    바닥 쓸기, 대걸레질, 책상 걸레질은 유일한 여성인 김씨의 몫이었다. 김씨는 하루 평균 4~5잔의 커피를 탔고 설거지를 했다. 직원들은 김씨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고 안마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뒤태가 예쁘네", "관상을 보니 남자들이 좋아하겠다"는 등 성적 농담을 하기 일쑤였다. 김씨의 팔뚝과 허리 등을 툭툭 쳤다.

    견디기 힘들어 해결방안을 찾아보았지만 사내 해결을 원칙으로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소규모 사업장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2년은 버텨야 했다. 참고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전태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2019년의 직장 풍경이다. 김씨는 2019년 6월 직장갑질119에 이메일을 보냈다. 직장에서의 갑질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단체 직장갑질119에는 하루 평균 10여 건의 이메일이 들어온다.

    오픈 카톡방 상담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다.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모든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는데, 그중 가장 어려운 사안이 직장 내 성희롱이다. 동시에 흔한 사안이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직장갑질119에 지난 3년간 들어온 이메일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상담 486건(전체의 4.8%)을 분석한 결과, 제보자의 83%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처럼 성희롱과 성차별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 고정관념 및 여성 비하와 같은 성차별은 성희롱과 구분된다. 그러나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성희롱도 증가했다.

    "엄마보다 나이가 어린 관리소장이 저희 엄마한테 '김여사는 뱃살 좀 빼야겠어요'라고 합니다. 평소에도 관리소장은 여성 미화직원들이 사용하는 탈의실, 화장실에 마음대로 드나듭니다. 사물함도 잠그고 다니지 말라고 했답니다."

    제보자의 어머니는 60대 여성이고 가해자는 그보다 어린 남성이었다. 미화직원을 하대하는 조직 문화와 관리소장부하 직원의 위계가 성희롱의 유발요인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권력에서 구조적인 성별 위계가 원인이었다. 여성들이 청소, 미화 업무를 담당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다.

    위계 관계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메일 중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위계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는 324건으로 피해 확인 제보 건수의 89%를 차지했다.

    가해자가 사용자인 경우도 107건으로 29.4%를 차지했다. 가해자가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고 상위 직급인 경우처럼 위계 관계가 중층적으로 형성된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런 권력관계는 같은 직장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원청회사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 간에도 존재한다.

    제보자 중에는 원청회사 직원으로부터 "여자라면 말을 좀 사근사근하게 해야지. 너는 그런 맛이 없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는데, 평소 이 직원은 제보자에게 "너는 머리가 비었어"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혼용했다.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이 성희롱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력관계의 아래에 놓인 남성도 성희롱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전체 제보자 중 12.9%는 남성(4.1%는 성별확인 불가)이었다.

    김씨와 같은 시기에 인턴으로 제조업 공장에 취업한 박모씨는 인사 담당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왔다. 인사 담당자는 인사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인턴들과 계약직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가해자는 박씨에게 성관계 여부를 집요하게 묻고 박씨의 여자친구까지 비하했다. 가해자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인격 모독도 서슴지 않았다. 걸핏하면 박씨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 이 돌대가리야", "죽여버린다"라고 말했다.

    여성 직원을 성희롱하는 사람은 남성 부하 직원들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성희롱이 존재하는 사업장에는 괴롭힘도 존재한다. 성희롱 외에 다른 괴롭힘도 동반한다는 제보는 68.7%에 이른다.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도 22%에 달한다.

    이런 점에서 직장 내 성희롱은 '괴롭힘의 리트머스'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간에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권력관계 및 성별 위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다. 동시에 권력관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렵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사업주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조사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주는 피해자보다 가해자와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신고에도 불구하고 묵인, 방치 등 조치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제보 건수는 41.5%에 이른다.

    심지어 직장 내 성희롱 신고 후 징계, 따돌림 등의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제보는 전체의 58.5%에 이른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2018~2019년 2년간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2380건임에 반해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20건밖에 되지 않는다. 처벌조항이 사문화된 셈이다.

    사내 해결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솜방망이 처벌 규정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법을 정교화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계적인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성 평등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 기사(글)은 11월 9일 나온 <전태일50> 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전태일50> 신문은 전태일 서거 50주년을 맞아 오늘날 전태일들의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들과 사진가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 이제그만, 직장갑질119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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