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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종합병원' 수준 몸 상태에도…과로가 일상인 택배 노동자들



사건/사고

    [노동:판]'종합병원' 수준 몸 상태에도…과로가 일상인 택배 노동자들

    • 2020-10-20 05:05

    노조 취합 '신고현황' 따르면 추석연휴 전후로 8건 접수 파악
    협심증 등 외 인대파열·치루증상도…폭증한 업무량도 연관有
    "물량조절 '어불성설'"…"권역배당에 당일배송 원칙으로 '헉헉'"
    대책위, "정부 차원의 대책 없으면 노동자 죽음 계속된다"
    "고용부 근로감독 부실" 지적…오는 21일부터 긴급점검 돌입

    ※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숨진 택배노동자의 마지막 문자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폭증한 배송량으로 인한 '과로사'로 올해 숨진 택배업계 종사자가 12명에 달하는 가운데 대다수(9명)를 차지하는 직군은 택배기사다. 택배노조가 택배물량이 급증하는 추석 연휴 전후로 조합원들 중 택배기사들의 건강이상 실태를 파악한 결과, 적지 않은 인원이 '종합병원' 수준의 건강이상 상태에도 온전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을 찾는 것조차 '사치'였던 이들은 시스템 상 지속적으로 격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을 근본적 원인으로 꼽았다.

    ◇"인대파열·치루"…물량 폭증에 운동량 多 업무 특성도 '한몫'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20일 CBS노컷뉴스가 전국택배연대노조를 통해 입수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위험 신고현황'에 따르면, 추석 연휴 한 주 전인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초까지 건강 이상을 노동조합에 신고한 택배기사들은 총 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던 연휴기간 전후로 각 지부별로 해당 사례들을 취합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CBS노컷뉴스가 보도([단독]CJ대한통운, 과로 택배기사 '꼼수' 보고…국토부는 '경미'로 치부)한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의 협심증·코피 및 하지정맥류 등의 신체 이상을 포함해 인대파열·치루 등의 증상을 호소한 사례들이 새롭게 확인됐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CJ대한통운 분당지회에서 홍모씨는 코로나19로 물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 3월경 어깨 인대가 파열됐으나, 수술 뒤 후유증에도 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같은 회사에서 일해온 15년차 택배기사인 원모씨는 늘어난 배송량을 감당하면서 왼쪽 팔꿈치의 인대가 파열됐지만,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반(半)깁스'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씨는 일할 때는 통증을 감수하고 '반깁스'를 분리했다 집에 가면 다시 이를 착용하는 수고를 감수 중인 것으로 보고됐다. 과다한 중량의 택배를 들 경우, 인대가 아예 끊어질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들은 상태지만 수술을 하면 '3개월을 쉬어야 한다'는 말에 10kg 이상 나가는 물품은 스스로 조심하면서 당분간 수술은 포기한 상태다. 이런 그가 병원을 처음 찾은 날은 정부가 '택배없는 날'로 지정한 지난 8월 14일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하차 및 운동량이 많아 땀 배출이 잦은 업무 특성상 치루 증상을 보인 택배기사도 있었다.

    CJ대한통운 소속 이모씨는 지난달 23일 "며칠 전부터 엉덩이에 종기가 난 줄 알았고, 거부감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서는 건 괜찮지만, 앉는 것도 어려웠고 오후로 갈수록 더 (통증이) 심해졌다"며 "배달구역 내 동네 의원에 방문해 환부를 검사받으니 종기일 수도, 치루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씨는 환부를 절개할 경우 업무가 불가한 점을 감안해 주사바늘로 피고름만을 짜내는 시술을 받았지만, 결국 배송 중 온몸에 오한과 열이 찾아오면서 응급실을 방문했고 지난달 25일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씨는 올 초에 폐렴에 걸렸을 때에도 아픔을 참다 설 당일에서야 응급실을 내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리를 해서라도 일을 계속하는 게 어려울 만치 몸이 악화된 사례도 있다.

    우체국택배 서울 도봉지회에서 근무하는 박모씨는 지난달 8일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롤테이너(물품을 쌓아두는 바퀴 달린 이동식 적재함)에 찧으면서 발톱이 이탈하는 사고를 겪었다. 다음날 수술을 받은 박씨는 이후 정상근무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다만, △여전히 택배노조에 가입조차 안 된 노동자들이 상당수인 점 △특정 기간 자발적으로 택배기사들의 '신고'를 받은 점 등에 비추어보면 건강상 위험신호를 보이는 택배기사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책위가 밝힌 택배노조 가입인원은 약 4천 명(전체 택배노동자 5만여명)으로, 가입률이 약 8%에 불과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이희종 정책국장은 "CJ대한통운이 사실 (업계의) 50%를 점유하고 있는데 조합원으로 데리고 있는 사람은 15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CJ대한통운 전체 종사자가) 1만 8천명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10%밖에 조직이 안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CJ대한통운보다 상대적으로 더 현장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롯데택배 등은 최근에 노조가 조직돼 다음주 중 파업에 들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정책국장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연말, 설날 연휴까지 택배는 계속 성수기이기 때문에 당분간 물량이 줄어서 현장 상황이 정리될 것 같지는 않다"며 "빨리 사회적으로 논의해 대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민관 공동기구 구성 등도 요구하고 있는데 (과정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조건"이라고 토로했다.

    ◇"권역별 배송에 당일배송 원칙"…"새벽배송은 일상"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택배기사들은 건강상 '적신호'를 유발하는 과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위치에 놓여있다.

    먼저 택배기사들은 보통 '구역당' 계약을 맺는데, 해당 구역에 배당된 택배 개수를 기사가 임의로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10년차 택배기사 이모(53)씨는 "대리점하고 계약을 할 때 구역에 400개가 나오면 400개를 쳐야 하고 600개가 나오면 600개를 쳐야 한다"며 "자기 구역에 나오는 물량은 택배 기사가 다 소화를 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택배기사가 '물량'을 조절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매일매일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오늘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면 결국 내일의 몫으로 쌓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오히려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택배기사들이 자비로 외부 용차(일종의 대체인력)를 써서 물량을 해결해야 한다"며 "보통 택배 한건 당 비용이 760원인데 용차는 1500원에서 2000원이 든다. 두 배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그날 받은 물량은 그날 처리해야 하는 '당일배송' 원칙은 과로를 가중시킨다. 택배기사 원모(50)씨는 "지연배송하면 페널티가 엄청나다. 수수료가 0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이 아픔을 참아가며 일을 하거나, 악천후 속에서 배송을 쉴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하다. 진료를 받는 시간만큼, 배송시간이 늦어진다는 부담은 택배기사들을 과로로 이끌었다.

    대리점과 직접 계약을 맺는 입장에서, 대리점 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원씨는 "대리점 소장은 사실상의 갑"이라며 "과로사로 사망한 한진택배 노동자가 16번지 구역이 너무 힘들어 새벽 5시에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묵살당했던 이유도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택배기사들 입장에서는 해당 구역만 사라져도 일하기가 좀 수월할 것 같지만, 소장들은 '하기 싫으면 할 사람은 많으니 나가라' 하면 그만이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는 이중에서도 소위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이 과로의 근본원인이라 주장해왔다. 택배 분류 작업은 대리점 사장의 요구로 택배기사들이 진행해오기는 하지만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는 공짜노동이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은 노동 시간의 43%를 분류 작업에 썼다. 또 코로나19 이후 택배 노동자 전반이 업무량이 30% 정도 늘었는데, 택배 분류작업의 증가율이 35.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책위,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필요"…고용부 '긴급점검' 돌입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지난 12일 과로사로 숨진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신정릉대리점 소속 故김모(36)씨의 동생(가운데)이 슬픔에 잠겨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대책위와 노조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와 택배업계는 추석을 앞두고 '택배 물량 및 택배 종사자 관련 2차 권고안'을 마련했다. 특히 국토부는 서브터미널 분류인력에 당초 계획 2067명을 초과해 1.5배 정도인 일평균 3258명이 투입됐다고 주장했지만, 택배노조는 자체 통계 결과 순수 분류인력은 일평균 350여 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서브터미널에 모인 물건을 선별해 택배차량에 싣는 '분류작업'이 택배사업자의 업무인지, 택배기사의 업무인지 논란이 지속되어온 만큼 국토부는 노사정 협의를 통해 분류업무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를 표준계약서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특수고용직(특고)에 해당하는 택배노동자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전반적 근로 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책위 이희종 정책국장은 다니던 회사가 폐업한 후 신용불량자 상태에서 택배업에 뛰어든 한진택배 고(故) 김모(36)씨와 관련해 "화물·택배업에 종사하는 특고 노동자들 중 그런 분들이 많다. 예전에 CJ 사측을 만나면 (이같은) '어려운 사람들 일자리도 주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는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는 부서라 과로사 관련 실태조사, 법적 제재는 고용부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고용부 또한 '택배사들을 어떻게 규제하고 근로 감독할 건가'에 대해선 정작 잘 논의를 안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고용부는 이달 들어서만 택배기사가 3명 숨지는 등 택배업계 과로사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CJ대한통운·한진택배 등 주요서브 터미널 40개소와 대리점 400개소를 대상으로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과로 등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 긴급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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