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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김지훈이 '실장님'이길 거부한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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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꽃' 김지훈이 '실장님'이길 거부한 속사정

    [노컷 인터뷰]사이코패스 동명이인 살인마 백희성 역으로 연기력 인정
    "이미지 한계 짓기 싫어 유사한 작품들 고사하니 일이 없었다"
    "역할 크기 상관없이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는 게 기쁨"
    "장발 스타일, 분위기와 멋 좋아…한 번 길러볼 예정"

    tvN 드라마 '악의 꽃'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희성 역을 연기한 배우 김지훈. (사진=빅픽처엔터테인먼트 제공) 확대이미지

     

    어딘가 성마른 얼굴, 장발 사이로 보이는 핀트가 엇나간 눈. 코마상태에 빠졌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복귀는 '악의 꽃' 후반부를 뒤흔들었다. 이준기·문채원 두 사람의 조합이 중심에 있었다면 김지훈이 맡은 백희성 역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주말드라마 실장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운 '악의 꽃'은 김지훈의 재발견이었다. 비록 후반부 절반 분량이었지만 '진짜' 살인마 백희성의 몸짓 하나, 눈짓 하나에 시청자들은 소름을 느꼈다. '다시 봤다. 이 갈고 준비한 게 느껴진다'. 어느 댓글에 쓰여 있던 김지훈 연기에 대한 평가다.

    이 정도 결실을 맺기까지 김지훈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거듭했다.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들 속 연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한계 짓지 않기 위해 이전과 비슷한 배역들은 거절했다. 그러자 일이 점점 줄어갔다.

    쉽고 익숙한 관성을 깬다는 것은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들에게도 어렵다. 약간의 변주만 줄 뿐, 실제 이를 깨는 배우들 역시 많지 않다. 그러나 김지훈은 기어코 '바벨'과 '악의 꽃'을 거쳐 스스로 다채로운 캐릭터의 2막을 열었다. 단골 주연이었던 그가 온전히 조연부터 쟁취해낸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결과다.

    다음은 코로나19로 인해 서면으로 이뤄진 김지훈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촬영 중단이 되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악의 꽃'을 무사히 마친 종영 소감 부탁드린다

    = 먼저 드라마 '악의 꽃'을 많이 사랑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제가 연기한 백희성 역할도 나쁜 짓 참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랑과 관심 주셔서 감사드린다. 봄의 시작에서 여름의 끝까지, 코로나와 싸우며 함께 고생한 스태프 한 분 한 분 그리고 배우 한 분 한 분께도 이 자리를 빌어 고생 많으셨다고. 많이 감사하다고 인사 드리고 싶다.

    지난해 12월에 처음 백희성 역할을 하기로 결정하고 백희성은 어떤 아이일까 고민했던 시간도 길었고, 힘들었던 시간도 길었지만, 그럼에도 늘 촬영장 가는 일이 가장 기대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 중반부에 등장했지만 백희성은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였다. 이미 많은 작품에 있었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김지훈만의 느낌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 초반에는 등장하지 않고 등장해서도 한참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다가 후반부에 들어서 활약을 하게 되는 캐릭터인데, 사실 그게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시놉시스에 나온 역할과 다른 역할이 되는 경우도 많다. 8회까지 백희성은 의식이 없지만 나온 대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고, 또 감독님과 제작사에 대한 믿음도 있어서 나름의 모험을 결심 했는데 다행히도 성공적인 모험이 된 것 같다.

    기나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말하고 걷게 되기까지의 과정 표현이 관건이었다. 유튜브로 코마환자들 영상을 찾아봤더니 실제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고, 너무 갑작스러운 회복력이 극에 몰입을 방해할 수 있어 씬마다 철저히 계산해서 회복 속도를 부여했다. 이후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광기와 압도감을 표현해내는 게 과제였는데 역대급 악역이 나오는 영화는 다 찾아본 것 같다. 한 작품, 한 작품 다 모여서 백희성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지 않았나 싶다.

    tvN 드라마 '악의 꽃'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희성 역을 연기한 배우 김지훈. (사진=빅픽처엔터테인먼트 제공) 확대이미지

     

    ▷ '악의 꽃' 촬영 감독님이 "마치 호아킨 피닉스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고 극찬했는데 본인은 본인 연기에 만족을 못할 것 같지만 소감을 듣고 싶다

    = 참 몸둘 바 모르겠는 극찬이었다. 가볍게 농담하시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 칭찬을 내가 들어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당연히 속으로는 한쪽 입꼬리가 실룩 올라가기는 했었다. 살면서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런 칭찬을 들어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소리를 농담으로라도 들어볼 거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는데, 막상 들으니까 뭔가 짜릿하면서도 민망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호아킨 피닉스한테 왠지 송구스럽고 그랬다.

    ▷ 배우 김지훈하면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 능글맞으면서도 남성스러운 캐릭터가 대표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고착화된 이미지로부터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것 같다

    = 사람들이 제게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너무 답답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TV를 통해 제 이미지를 갖게 되니 제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고, 연기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알 수가 없으시겠지만 실제와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서 늘 속이 상했다. 배우로서 생각해 봐도 주말드라마 실장님 같은 이미지들이 제 한계를 자꾸 좁혀갔고, 더 많은 걸 보여줄 준비가 돼있는데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왔다 장보리'라는 대표작이 생긴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다. 더 이상 제 한계를 스스로 좁히는 선택을 하면 안될 것 같았고, 이대로는 내가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꿈에 조금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역할들을 고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없어지더라.

    ▷ 실제로 오래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내려놓는 배우가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선택이다.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을텐데 힘들지 않았나

    = 힘들었다. 프리랜서가 일을 안하게 되니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랬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넘쳐 나는데, 어떤 역할이든 잘해낼 수 있는 자신감도 가득한데, 연기할 일 없이 백수처럼 하루하루 보낸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그나마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운동을 하면서 정신건강을 유지했던 거 같다. 저처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도 지속적인 스트레스 앞에선 이렇게 무너질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얘기되는 작품에서도 역할이 전에 비해 작아지기 시작했지만 그건 아무렇지 않았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작년 겨울에 '바벨' 이라는 작품을 했고, 또 일년 넘게 기다려서 '악의 꽃'이란 작품을 만나게 됐다.

    tvN 드라마 '악의 꽃'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희성 역을 연기한 배우 김지훈. (사진=빅픽처엔터테인먼트 제공) 확대이미지

     

    ▷ SNS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장발 스타일이 잘 어울리더라. 장발 특유의 분위기를 잘 내기가 쉽지 않은데 스타일링에 본인 의견도 반영이 된 건가

    = 머리는 확실히 짧은 머리가 편하다. 머리가 긴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지 정말 몰랐다. 여자분들에게 리스펙트를 보낸다. 머리 감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샴푸도 많이 들어가고 말리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빠지기도 많이 빠지는 것 같고 특히 여름에는 너무 너무 덥다. 머리가 내 목과 귀를 덮고 있다는 게 이렇게 더울 줄도 몰랐다. 확실히 장발 머리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들이 있어서 옷을 입는데도 제약이 생긴다.

    하지만 짧은 머리로는 만들 수 없는 분위기와 멋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단점들을 참아낼 수 있었다.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것도 장발 스타일의 공로가 적지 않다 생각한다. 일단은 반드시 잘라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길러볼 예정이다.

    ▷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SNS상의 정치적 소신 발언으로도 주목 받았었는데 여전히 그런 사회적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 배우는 사회적으로 크던 작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지 않나. 어떠한 행위를 하거나 SNS에 글을 올렸을 때 기사화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늘 생각을 많이 해야 하지만 적어도 누가 봐도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제가 연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고 이념적인 문제도 아니다. 제가 가끔 용기 내어 소신을 밝히는 경우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을 벗어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전 지구적 환경을 위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잣대로 절 좌우프레임 안에 가두려 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제 스스로 진짜 옳은 일을 추구한다는 확신이 들면 앞으로도 소신은 숨기지 않을 생각이다.

    ▷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결단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김지훈이라는 배우의 '배우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엇일까

    = 일단은 다음 작품을 신중하게 잘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저 스스로도 즐겁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잘 선택해서 또 멋진 역할을 만들어 내고 싶다. 배우로서 목표는, 사람들에게 기대감과 궁금증을 계속해서 줄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좋은 메세지와 가치관을 전달하는 선한 영향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

    데뷔 20년, 이제 40이라는 나이인데 무엇 하나 실감나는 게 없고, 어느 하나 내 것 같은 게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늘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연기하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는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함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니까. 스스로의 한계를 끊임없이 깨 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물론 한계를 깬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그만큼 배우로서 만족하고 게을러지면 안된다는 얘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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